지역에서 본 언론/뉴미디어

진보 활동가에게 블로그는 필수다

기록하는 사람 2008. 8. 2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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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역사문화연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만순이라는 분이 있다. 충북지역 근·현대사를 연구하면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에 애쓰고 있는 분이다. 두어 달 전 박 위원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한국전쟁 당시 상부의 지시를 거역하고 보도연맹원들을 탈출시켜 살려준 경찰관의 공덕비가 충북 영동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한국판 쉰들러를 발굴하게 되는 셈이었다.

언론사만 좋은 일 시킬 필요 있나

박 위원장이 내게 전화한 것은 그 사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언론을 통해 알릴 수 있을지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박 위원장이 힘들여 취재하고 발굴한 사실을 왜 언론사에 넘겨주려 하느냐. 그렇잖아도 게으른 직업기자들에게 손안대고 코푸려는 심보만 키워주게 된다. 박만순, 당신이 기자다. 당신이 직접 써라."

그러면서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와 1인미디어로서 블로그의 효용성에 대해 일러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박만순 위원장이 쓴 첫 포스트.


마침내 6월 21일 '블로거 박만순'의 첫 포스팅이 이뤄졌다. '한국에서 하나뿐인 경찰관 공덕비'(
http://local-history.tistory.com/7) 라는 제목의 포스트는 '지역현대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지공사)' 팀블로그의 일곱 번째 기사였다.

글이 오른 지 얼마 안돼 다음블로거뉴스 베스트에 걸리더니 추천만 139건, 조회수는 2만4000회까지 올라갔다. 댓글도 48개나 달렸다. 다음 이외의 다른 메타블로그를 통한 조회수까지 합치면 훨씬 많을 것이다. 기사의 주인공이 된 이섭진 지서장의 자제분들과 외손녀가 이 블로그를 찾아와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조회수 2만4000회가 뭐 그리 대단한 거냐고? 사실 잘나가는 지역일간지 인터넷신문에서 하룻동안 가장 많이 읽힌 기사 중 1000회가 넘는 건 손에 꼽을 정도다. 하루 150건이 넘는 기사가 업데이트되는 인터넷 지역신문의 방문자 수도 하루 1만~3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단 한 개의 블로그 기사 조회수가 2만4000회라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또한 이 블로그를 통해 이섭진 지서장을 알게된 신문·방송사 기자들의 취재협조 요청이 박만순 위원장에게 쇄도했음은 물론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박만순 위원장이 발굴한 내용을 받아 보도한 한겨레 기사. 사진도 박 위원장이 제공한 것이지만 출처표시가 없다. 이런 걸 보면 한겨레도 양심이 없다.


이처럼 블로그는 한국에서도 이제 당당히 1인미디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특히 촛불집회 정국에서 보여준 블로그의 위력은 대안언론으로서도 확실한 효용성과 영향력을 입증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바꾸려는 모든 진보단체의 활동가들은 필수적으로 블로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동안 입으로 진보를 외쳐온 자칭 진보주의자나 운동단체들이 정작 사회의 변화에는 둔감했다는 사실이 이번 촛불집회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또한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쳐오면서 스스로 진보라는 사람들이 알고 보니 실력도 별로 없었고, 공부도 거의 안한다는 사실이 들통났다.(참고 : '잡탕' 개혁세력과 선을 긋고 '실력'을 키우자 http://2kim.idomin.com/23)

조·중·동의 여론독과점에 반대한다면....

나는 블로깅을 하면 이런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우선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할 수 있고, 자기가 갖춘 실력과 콘텐츠 경쟁력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자각할 수 있게 된다. 그걸 깨닫게 되면 스스로 공부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또한 블로그를 통하여 대중과 소통하는 법도 배울 수 있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진보가 뭘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국의 수백, 수천, 수만 명의 진보활동가와 논객이 블로그라는 대안매체를 진지로 삼아 스스로 언론활동을 벌인다면 조·중·동의 여론독과점을 깨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미 블로그를 활용하고 있는 시민단체도 생겨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같은 단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단체 명의의 블로그보다는 그 단체에 소속된 활동가 하나하나가 블로거가 되어 자기 실력과 콘텐츠를 드러내보이고 기존 언론사 소속 직업기자들과 경쟁해야 한다. 조·중·동 기자들도 자기 실명으로 매일 기사를 쓴다. 명색이 진보활동가라는 분들이 조·중·동 기자들보다 못할 건 없지 않은가.

※미디어스(http://www.mediaus.co.kr)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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