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광화문 이순신 동상과 학자들 게으름

김훤주 2008. 8. 16.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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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에 가서 광화문에서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 학자들의 게으름이 떠오릅니다.(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남들이 사소하다는 데에 오히려 더 크게 관심을 쓰는 편입니다.)

광화문에 자리 잡은 이순신 장군 동상은, 이미 잘 알려진대로 오른손으로 칼을 들고 있습니다. 칼이 오른손에 들려 있으면 뽑아 휘두를 때는 왼손을 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순신 장군 동상(1968.4.27~)은 왼손잡이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제가 알기로 이순신 장군(1545.4.28~1598.12.16)이 왼손잡이라는 증거는 있지가 않습니다.

경남도민일보 사진.

제가 짐작하기에는 만약 이순신 장군이 왼손잡이였다면 관련 기록이 남아 있어야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왼손잡이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난 존재이므로, 아니 그 때는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별난 존재였으므로.

1.
이순신 장군이 살던 조선 중기는 유교가 지배 이데올로기로 흔들리지 않게 자리를 잡고 있었던 시절입니다. 왼쪽 천대와 오른쪽 우대도 제도로 확립돼 있었을 것입니다.

나아가 온갖 관혼상제와 갖가지 의전에서 왼손을 절대 쓰지 못하도록 굳어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양반 사회에서는 왼손잡이를 금기시하는 풍토가 아주 뚜렷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조선 중기 사회가 동상에 표현된 대로 관직이 삼도 수군 통제사에 오른 장군이 왼손잡이였고 나아가 만인 앞에 그것을 나타내도 되는 정도였다면 관용(寬容)이 풍부한 편이었다 여겨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2.
제가 배운 바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어쨌든 당시가 그렇게 관용이 넘쳐흐르는 세상이었다면, 한 치만 어긋나도 서로를 용납하지 않았다는 붕당정치는 예외라고 간주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보기에는 당시 사회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띠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관련 학자들은 이순신 장군이 왼손잡이였는지 아닌지를 밝히는 연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이순신 장군이 왼손잡이였다 판단이 서면, 조선 시대 왼손잡이에 대한 차별 또는 관용이 어느 정도였는지도 더불어 따져야 하겠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재미있는 사회문화사를 하나 더 갖게 될 것입니다.

3.
그 연구에서 이순신 장군이 왼손잡이가 아니었다고 결론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대사의 영역으로 옮아와야 하겠지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사실과 달리 만들어진 까닭이 무엇일까를 따져야 할 것입니다.

조선 중앙 동아는 그런 대수롭지 않은 일에 눈길두느냐 짜증을 내겠지만, 가장 먼저 권력의 영향이 어떠했는지 확인해야겠고, 다음은 이 동상이 어느 방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도 잘하면 재미있는 현대사가 한 편 엮일 것 같습니다.

광화문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http://www.choongmoogong.org/)에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1968년 4월 27일 당시 정부산하 단체였던 ‘애국선열 조상건립위원회’와 서울신문사 공동 주관으로 건립됐습니다.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일본 사람이 가장 무서워할 인물의 동상을 세워라.”고 지시했습니다. 설계와 제작은 조각가 김세중(당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이 했습니다.

4.
김세중 기념사업회가 만든 이 홈페이지는, 이순신 장군 동상 오른손에 칼을 들린 까닭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저 개인은 거의 억지다, 여깁니다만). 어쨌거나 학자들은 이런 내용이 합당한지 여부까지 따져야 하겠지 싶습니다.

“충무공이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는 것은 충무공의 역할과 의지가 그의 칼이 상징하는 실천적 힘과 조국수호에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기념비적 동상들의 자세에 있어서 두 손, 특히 오른손은 그 인물의 역할과 의지를 대변하는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곤 합니다.

이순신장군 동상은 가까이 적을 대면하여 마악 칼을 뽑으려는 동세의 형상을 지니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적을 물리친 역사적 승리자의 기념비로서 목숨을 바쳐 조국에 충성한 수호자적 인물의 상징적 자세와 모습을 지니도록 제작된 것입니다.”

창원 용남초등학교 이순신 장군상.

5.

전국 이순신 장군상 가운데 왼손잡이로 표현된 것은 제가 알기로는 서울 광화문의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이 전국 모든 것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처음 거북선을 내어보내 전투를 승리로 이끈 경남 사천시 용남면 선진리 성 사천해전 전적지로 가는 들머리 이순신 장군상도 오른손잡이로 돼 있습니다.

그리고 제 아들과 딸이 졸업한 경남 창원 용호동 용남초등학교 교정에도 오른손잡이 이순신 장군상이 있을 뿐입니다. 칼을 왼손으로 들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쯤 되면 이순신 장군도 자기가 왼손잡이인지 아니면 오른손잡이인지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학자들이 남 먼저 따지고 밝혀야 할 부분이 아닐까 저는 여깁니다만…….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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