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훤주

오른손으로 밥 먹는 왼손잡이

김훤주 2008. 8. 13.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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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는 왼손잡이입니다. 그렇지만 글을 쓸 때는 오른손을 씁니다. 왜 그렇게 됐느냐 하면, 어릴 적 오른손으로 쓰지 않는다고 엄청 두들겨 맞았기 때문입니다.

교실에서 ‘저요!’ 하고 드는 손은 반드시 왼손이어야 했던 대신 오른손은 반드시 연필을 쥐고 있어야 했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 2학년 때 저는 그리 못했다고 꽤 맞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왼손잡이이면서도 밥과 반찬 집어먹을 때 쓰는 수저는 오른손으로 다룹니다. 마찬가지로 밥상머리에서마다 걷어채이고 구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아침에 두레상에다 막내인 제가 수저를 놓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은 어머니가 들어오셔서는 지청구를 하시면서 오른손잡이 식으로 ‘바로’잡으셨습니다.

2.
공을 차거나 던질 때는 왼 발 왼손을 씁니다. 무엇을 칠 때도 왼 발 왼손을 씁니다. 그러니까 수저와 필기구만 오른손으로 다루고 나머지는 원래 태생대로 왼손을 씁니다.

저는 제가 왼손잡이여서 싫은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릴 적에 왼손잡이여서 당하는 고통이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학교 3학년으로 그것은 끝이었습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불편은 여전히 많았지만, 왼손잡이가 예전처럼 차별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탁구 선수로 뽑혔기 때문입니다.

왼손잡이 탁구 선수는 여러모로 쓰임새가 좋았습니다. 오른손잡이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왼손잡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상대를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복식 경기에서, 왼손잡이가 오른쪽에 서고 오른손잡이가 왼쪽에 서면, 탁구대에 좀더 손쉽게 집중이 될 수 있어서 효과적이었습니다.

3.
국민학교를 졸업하면서 탁구 선수 생활을 그만뒀지만, 그 때부터는 왼손잡이여서 겪어야 하는 차별이나 고통이 별로 없었습니다.(불편은 있었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저는 오른손잡이 세계에 절대 동화하지 못합니다. 어릴 적 낯설었던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억압받은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리 냄비. 왼손잡이에게는 불편합니다.

날마다 치르는 일상도 동화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단추와 지퍼와 찻잔과 물병과 주전자와 국자와 수도꼭지와 낫과 가위와 문짝과 등등이 죄다 불편한 오른손잡이 위주입니다.

4.
당연히 ‘다름’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다른 사람과 제가 다를 때도 그랬습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과 제가 같을 때도, 다른 사람과 다른 사람이 어딘가 꼭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다름’을 알게 되면서, 같음도 있고 다름도 있음을 알게 되면서, 세상을 다르게도 보는 방법을 알게 됐습니다.(똑같이 보는 방법은 교과서 따위에서 엄청 잘 가르쳐 줍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남에게는 당연한 것이 내게는 아주 잘못된 무엇일 수도 있구나, 거꾸로 내게는 아주 고마운 것이지만 상대에게는 그다지 달갑지 않는 것일 수도 있구나…….

5.
저는 이것을 오른손잡이 세상에서 그들과 다르게 볼 수밖에 없는 왼손잡이의 숙명으로 여깁니다.
후배가 이런 우스개를 들려주더군요. 실제 있었던 일은 아니겠습니다. 웃음이 나오는 한편 가슴이 저려왔습니다.

어떤 왼손잡이가 강도를 당했습니다. 강도가 칼을 꺼내들고 “꼼짝 마!” 했습니다. 그런데 강도당한 왼손잡이가 반가워하면서 웃었답니다.
손을 번쩍 들다가, “아! 왼손잡이다.” 하면서 말입니다.

강도가 칼을 든 손이 왼손이었던 것입니다. 동병상련입니다. 자기 비슷하게 당한 경험이, 강도에게도 있으리라 여깁니다. 상대 동병(同病)이 자기를 해칠지라도 상련(相憐)을 하고 마는 모습입니다.

6.
단지 다를 뿐인데도 그 때문에 비정상으로 취급받는 존재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무시당하고 사소하게 여겨지는 그런 것들에게서 저는 제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왼손잡이의 일생은 대체로 비극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아도, 왼손잡이는 일생이 비극일 개연성이 높습니다. 2006년 단행본으로 나온 <아름다운 우리 몸 사전>은 왼손잡이를 다룬 23쪽 결론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자폐증 환자나 동성애 남성에 왼손잡이가 많으며, 물건이나 기구가 대부분 오른손잡이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왼손잡이가 사고를 더 많이 당하기 때문에 왼손잡이가 수명이 짧다.”

거꾸로, 맞으면 아프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이들도 있습니다. 맞지는 않고 주로 때리는 이들입니다. 왼손잡이는 대체로 당하는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왼손잡이에게는 그 설움이 유전자처럼 복제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7.
‘왼손잡이의 날’이 있더군요. 8월 13일이랍니다. 올해로 열일곱 번째랍니다. 문득 생각이 나서 이리 한 줄 걸쳐 봅니다. 왼손잡이라, 어릴 적부터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었음을 진짜 다행으로 여기면서 말입니다.

김훤주

&lt;b&gt;아름다운 우리 몸 사전&lt;/b&gt;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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