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쉽게 써 본 창원의 역사 ⑦이순신의 빛나는 승전지

김훤주 2018. 6. 17.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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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유신기념탑과 현대문화유산


흑백다방도 사연이 있어요. 6·25전쟁이 남긴 흔적이지요. 지역화가 유택렬(1924~99)1955년부터 운영한 흑백다방은 지금은 다방 영업을 접고 이름도 문화공간 흑백으로 바꾸었어요. 그러니 근대가 아니라 현대 문화재라 할 수 있어요


진해로 피란을 왔던 이중섭·윤이상·조두남·유치환·김춘수·전혁림 같은, 친구들은 잘 모르지만 어른들한테는 많이 알려진 예술인들이 이곳에 모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곳으로 유명해요


원래 가난한 예술인들이 전쟁을 만나 더욱 가난해졌어요. 그래서 어디 모여서 이야기라도 나눌 공간조차 변변찮았어요. 그 때는 두런두런 나누는 얘기가 바로 일감으로 이어지고 삶의 활로로 이어지곤 하는 시절이었지요. 정보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방법이 그런 것뿐이었으니까요. 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고 한편으로는 창작의 산실이기도 했다고 생각하면 맞아요.

근처 중국집 원해루(元海樓)는 맛보다 스토리텔링으로 더 유명한 집이랍니다. 흑백다방과 마찬가지로 6·25전쟁의 산물이어요. 당시 북한군·중공군 포로수용소가 거제도에 있었어요. 휴전을 하면서 포로들은 자기나라로 돌아가든지 우리나라에 남든지 아니면 제3국을 선택하든지 그랬지요


짜장면집 이야기하다 갑자기 포로 이야기를 하니 좀 뜬금없다 싶지요^^ 다 까닭이 있어요~ 당시 중공군 포로였던 장철현씨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남아 장사를 시작한 곳이 바로 원해루니까요. 보통은 고향에 돌아가게 마련인데 이역만리 남의 나라에 남은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때는 이름도 영해루(榮海樓)였고 지금은 주인이 바뀌어 있답니다어쨌거나 이승만 대통령이 종종 찾은 단골집이라고 알려지면서 스토리는 더 풍성해졌어요. 처음으로 돌아가 복습 복습~!! 역사적인 장소에 스토리가 더해지면 훨씬 힘이 쎄진다, 그 얘기를 기억하는 친구들이 있나요? 기억하는 친구들은 완전 짱~!!!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원해루랍니다.

중원로터리에는 시월유신기념탑도 있답니다. 지금까지는 외환(外患)으로 겪었던 역사적인 흔적들을 살펴봤다면 시월유신기념탑은 내우(內憂)로 인한 역사 흔적이라 할 수 있어요


친구들 외환과 내우를 합치면 어떻게 돼요? 외환내우요~? 푸하하~^^ ‘내우외환안에서 생기는 근심과 밖으로부터 받는 고통을 합친 말이지요. 우리의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안과 밖에서 다 일어날 수 있어요. 일제로부터 고통을 받았던 우리 국민들은 안에서 일어나는 시련도 견디면서 살아야 했어요.


우선 시월유신이 뭔지부터 알아야 될 것 같아요. 1972년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평생 대통령을 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였어요. 이승만이 계속 대통령을 하고 싶어서 부정선거를 하는 바람에 일어난 것이 3·15의거, 4·19혁명이다 그 정도는 이제 우리 친구들 다 알고 있지요~^^ 그러고 보면 다~~그 놈의 욕심이 문제군요!! 


지금부터는 시월유신, 유신헌법에 대해 자세한 설명 들어갑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법은 국회에서 의결을 해서 통과를 해야 효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국회의원들의 힘이 무지 쎈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찬성이든 반대든 자유롭게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박정희는 국회의 3분의2를 대통령당이 차지하도록 바꿨어요. 만약 내가 평생 대통령을 하겠다 대통령이 그런 법을 만들고 3분의2 국회의원이 찬성하면 평생 대통령을 할 수 있다 이거지요. 이런 엄청난 독재가~~!!!!


이왕 시작한 거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해요. 사법부는 대통령의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해요. 그래야 공정하게 판결할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대법원장과 일반 법관들까지 대통령이 자기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임명을 할 수 있으니 어떻게 독립성을 가질 수 있겠어요


유신헌법을 비판하면 감옥행~ 반대 또는 개정을 주장하면 무기징역 또는 사형~ 이런 특별조치법까지 만들었다니~ 무슨 이런 일이~~!!! 고대나 중세시대도 아니고 말이지요. 결론은? 아주 나쁜 헌법이다~ 친구들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됐나요~^^


시월유신기념탑은 창원시아이세상장난감도서관 앞마당에 세워져 있어요. 가만 쳐다보면 형상이 박정희 유신독재를 제대로 상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신헌법도 최소한 양심은 있었는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문구가 들어 있기는 해요. 그런데 정작 기념탑을 보면 헌법이 주인이고 국민은 종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국민이 헌법을 받들어 모시는 형상이거든요


게다가 유신헌법을 떠받들고 있는 네 사람은 모두 남자입니다. 시민·학생·군인·노동자 중에 여자는 없어요. 세상의 절반이 여성이잖아요. 하긴 이런 찌질한 헌법을 치켜세우는 데 여성을 빠지게 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긴 하지만요~ㅋ 


이 탑을 깨부수어야 한다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러나 이렇게 서 있는 건 참 다행이에요~ 왜냐구요? 이제 그쯤은 친구들도 다 알잖아요. 그걸 보면서 다시는 이런 나쁜 헌법을 허용하면 안 되겠다 되새길 수 있으니까요.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시월유신기념탑은 정원수에 가려서 얼핏 보면 잘 보이지 않아요. 그래도 마음을 내서 꼭 한 번 살펴보도록 해요.


이순신장군의 빛나는 전승지


남원로터리 중앙에는 아주 특이하게 생긴 조형물이 하나 있어요. 언뜻 보면 무덤 입구에 세우는 길쭉한 돌 모양 같기도 하고 일본 신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사람도 있어요.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이 남긴 친필 시비랍니다


, 친구들~ 이순신장군과 백범 김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일본과 싸운 분들입니다~ 와우~칭찬칭찬^^ 맞아요!! 두 분은 시기는 달랐지만 일본의 침략에 맞서 싸운 훌륭한 분들이지요. 그야말로 자기 목숨을 걸었던 분이지요.


해방된 이듬해인 1946년 진해를 찾은 백범 김구가 이순신장군의 한시 진중음(陣中吟)’에 나오는 誓海魚龍動 盟山艸木知(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를 불글씨로 남겼답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 궁금하지요? 네네~^^‘ 바다에 맹세하니 고기와 용이 움직이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 구나…….’ 


선조 임금이 중국 접경 지역 의주로 피란할 정도로 나라의 장래를 장담할 수 없는 위기 앞에서 이 한 몸 기꺼이 바치겠다~ 그런 맹세였지요.(흑흑^^::) 350년 세월을 뛰어넘어 두 영웅의 감동 어린 만남이 이루어진 곳이 바로 남원로터리랍니다.

그렇다면 북원로터리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순신장군 동상이 모셔져 있답니다. 이순신 동상은 여러 곳에 서 있지요. 하지만 북원로터리 이순신 동상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1952년 우리나라 처음으로 만들어진 동상이거든요


최근에 만들어진 동상들이 너무 과장되게 하여 지나치게 뻐기는 모습이지요. 대표적으로 서울 광화문에 서 있는 이순신장군 동상을 들 수 있어요. 가슴을 왜 그렇게 뻗치고 있는지요? 게다가 칼을 오른손으로 잡게 해서 왼손잡이로 둔갑시키는 잘못까지 저질렀어요.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이 이순신 동상은 한편으로 당당하면서도 거만한 서슬은 없답니다. 앞으로 두 손을 모아 장검을 짚은 모습이 인간다운 면모도 느끼게 하지요. 게다가 전쟁 중이어서 고달픈 시절이었는데도 나랏돈이 아니라 민간돈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뜻깊은 동상이어요.


이밖에 중원로터리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진해군항마을역사관’도 한 번 들러볼 만해요. 지금까지 살펴봤던 유적지 안내해 주고, 이 마을 사람들이 겪었던 근대 역사도 갈무리해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잘 정리를 해 놓았거든요!


김훤주

 

2017년 경남도민일보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재정 지원을 받아 창원 지역 역사 책자 '나고 자란 우리 창원 이 정도는 알아야지'를 펴냈습니다. 창원에서도 마산합포구에 있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에게 나누어 줬는데요, 블로그에 몇 차례로 나누어 싣습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 주어진 원고 분량을 채워야 하다 보니 허술한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다시 보니 부끄러울 정도로 구성이 산만합니다. 모두 제 잘못이고 한계입니다. 앞으로 대폭 고칠 기회가 온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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