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진보여, '뻥' 치는 버릇부터 고치자

기록하는 사람 2008. 8. 5.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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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17대 대선 직후 한 무크지에 ''잡탕' 개혁세력과 선을 긋고 '실력'을 키우자'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200자 원고지 80여 매에 이르는 장황한 글이었지만, 요약하면 이런 말이었다.

1.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쳐오는 동안 '진보·개혁세력'은 온갖 사이비와 기회주의자들이 뒤섞인 '잡탕'이 돼버렸다.

2. 그런 잡탕 속에서 세력다툼에만 몰두해온 진보는 강자독식주의(소위 신자유주의)자들의 '선진화' 전략에 대항할 진보적 대안을 내놓지 못함으로서 '실력없음'마저 들통나고 말았다.

그 후 7개월이 지났고 전국을 뜨겁게 데운 촛불집회 열기가 식지 않고 있지만, 지금도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운동권의 주도성이 철저히 배제된 촛불집회야말로 진보세력의 '들통난 실력없음'과 '잃어버린 신뢰'를 여실히 증명한 사건이었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거대한 촛불대열에 감격해하며 진보의 반사이익을 기대하던 사람들을 향해 '니 무능부터 깨달아라'고 쫑코를 먹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촛불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오해와 함께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맥빠지게 한다'는 핀잔도 들었다.


"언론노조, 9월 총파업 진짜 할 겁니까?"

4일 전국언론노조 김순기 수석부위원장이 내가 일하고 있는 경남도민일보에 왔다. 그는 사장 이하 간부와 전 사원이 모인 가운데 이명박 정권의 언론장악 시나리오를 주제로 강연을 한 뒤, 언론노조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9월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했다.

강연이 끝나자마자 내가 물었다. "총파업, 그거 진짜 할 거냐"고.

그렇게 질문한 이유가 있었다. 언론노조 조합원이자 한 때 중앙집행위원까지 지낸 나부터 언론노조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걸핏하면 파업하겠다고 찬반투표를 한 것만 벌써 몇 번인가. 세어보기도 귀찮고 짜증스럽다.

민주노총도 마찬가지다. 실컷 조합원 동원해 찬반투표 가결해놓고 제대로 파업 한 번 한 적이 있는가. 민주노총과 언론노조의 총파업 경고가 나에겐 양치기 소년의 '늑대가 나타났다'는 말로 들린다.

내친 김에 좀 더 심한 말도 덧붙였다. "지금까지 언론노조는 입만 살아있고 몸은 없는 것 같았다. 성명서 발표하고 기자회견은 잘 하지만, 진짜 단 몇 일만이라도 신문 제작거부하고 전면파업해본 적이 있느냐. 이번엔 정말 본조 집행간부 모두 감방 갈 각오하고 전면총파업할 자신 있느냐."

"한 가지 더 묻겠다. 한국언론재단 지부가 이명박 정권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임원들을 상대로 물러나라는 성명서를 냈다. 이건 언론노조의 입장과 완전 배치되는 건데, 왜 언론재단 지부를 징계하지 않느냐?"

이에 김순기 수석부위원장은 "과거 정권 땐 입으로만 해도 어느 정도 통하는 게 있었지만, 현 정권에선 전혀 통하지 않는다"며 "하지 말라고 해도 파업으로 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대답했다.

또 언론재단 지부에 대해서도 "이명박 정권을 상대로 투쟁방향을 틀지 않으면 징계하겠다는 방침을 이미 통보해놓은 상황"이라고 했다.

나는 진보세력이 대중으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해선 가장 먼저 '뻥 치는 버릇'부터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 정권에서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자기 조합원도 믿지 않는데, 정권인들 믿을 리가 있겠는가. 투쟁할 힘도 없으면 있는 척, 집권하면 잘 할 실력도 없으면서 있는 척 뻥 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면 이미 잃은 신뢰를 되찾기는커녕 영원히 버림받을 거라고 예상한다.

그 다음엔 진보를 잡탕으로 만든 사이비와 기회주의자들을 가려내 그들과 결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앞에 나서서 활동하는 진보의 쪽수가 아니라 그들의 '진정성'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스스로의 실력없음을 자인하고 겸손한 자세로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실현가능한 진보적 대안을 만들어 내놔야 한다.

언론노조 조합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9월 총파업만은 제발 '뻥'이 아니길 간절히 빌어본다.

※미디어스(http://www.mediaus.co.kr/)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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