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후보자는 물론 언론사 기자도 꼭 알아야 할 선거판 이야기

기록하는 사람 2017. 12. 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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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수경의 책을 읽었다. 석수경은 나와도 두어 번 만나본 적 있는 여성이다. '여의도에서 보기 힘든 여성 컨설턴트'라는 설명과 함께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스무 살 때이던 1988년 당시, 부산에서 첫 출마한 노무현 국회의원 후보의 선거운동본부에서 처음 선거를 배운 이후 지금까지 30년 동안 수백 건이 넘는 각종 선거를 치렀다. 조직과 지역정서에 의존하는 안일한 선거보다는 홍보와 이슈파이팅에 주력하는 '전투적 선거'를 좋아하며 지리를 모르면 선거를 못한다는 신념으로 선거를 치르기 전에 운동화를 신고 선거구를 돌아다니는 버릇이 있다."

이런 그가 <나쁜 남자가 당선된다>는 책을 썼다. '후보가 알아야 할 실전(實戰) 선거의 기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권력은 착하고 순박한 모범생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전제가 이런 책 제목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석수경의 나쁜 남자가 당선된다

곧 지방선거를 앞둔 시기인데다 실제 선거판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책을 펼쳤다. 기자도 선거판을 알아야 하고, 후보 캠프를 상대로 후원회 광고나 후보자 배너광고 영업을 해야 할 신문사 영업 파트 사람들도 선거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책은 후보편, 준비편, 공천편, 전략편, 홍보편, 조직편, 선거캠프편, 선거운동편 등 8개편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동안 나도 기자로 많은 선거를 취재해봐서 익히 아는 내용도 있었지만, 인상적인 몇몇 대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무능한 후보의 유형=실제 선거에서 유권자를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후보들이 의외로 많다. 이때문에 후보들 중에는 선본 사무실을 열심히 지키는 사람들이 많다. 밥은 무조건 선거구 안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먹으라고 아무리 간청을 해도 자기가 친한 사람들, 편한 사람들하고만 먹기도 한다.

후보가 의심이 많아서 겪는 문제들도 많다. 어떤 캠프에 가보면 '보안을 지킨다!'는 이유로 후보 스케줄 같은 기본적인 정보 공유도 잘 안해 캠프가 계속 삐그덕 거리는 경우가 있다. 

지역 선거에선 우리 캠프에 들락날락하면서 동시에 다른 캠프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많다. 후보는 이런 사람들조차 용인하고 받아줄 수 있어야 한다. 간첩을 색출하겠다며 캠프를 뒤집어 놓는 것은 선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후보는 언제나 잘 된 일은 주변사람들 덕으로 돌리고 '안 되는 일은 내 책임'이라는 겸손한 화법에 익숙해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후보들을 능가하는 최악의 후보는 권력의지가 빈약한 후보다.

*SNS는 온라인 선거사무소=대중 앞에 나서 후보에게 '자기매체' 확보는 선거운동의 기본이다. 블로그나 페이스북 같은 SNS는 온드미디어(owned media)로써의 의미를 지닌다. 선거운동을 하려면 일단 후보 자신이 100% 편집권을 갖고, 공식 입장을 피력할 수 있는 자기매체가 있어야 한다. 온드미디어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바이럴마케팅의 최초 거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관심이 갈 경우,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인물 검색부터 해보는 것이 최근의 풍조다. 이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면 유권자는 후보에 대한 추가 정보를 얻지 못하고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 온라인에 홍보 거점을 꼭 만들어 둬야 할 이유다.

블로그의 경우 한물 간 매체쯤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포털사이트 검색에 노출된다는 커다란 장점이 있다. 페이스북이 소통에 무게 중심이 있다면 블로그는 콘텐츠 생산자 위주의 플랫폼이다. 따라서 블로그를 홈페이지 대용으로 사용하라. 

*출판기념회와 책광고의 중요성=후보 입장에서 볼 때 우선 저서 출판은 자신의 개인적인 홍보자료를 집대성하는 효과가 있다.

자서전 작성 과정에서 후보 스스로 자기 홍보의 논리를 가다듬는 효과도 있다. 이 과정에서 함께 작업에 참여한 참모들 역시 후보의 인물 정보를 깊이 있게 학습하고 공유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출판기념회는 조직 점검의 성격도 갖는다. 그간 조직이 잘 구성되었는지, 잘 가동되는지 중간 전력점검을 해볼 수 있는 훌륭한 기회인 것이다.

책이 완성되면 출판사 측과 협의하여 서점에 포스터를 붙이거나 지역언론에 광고를 내는 식으로 책 광고를 하는 것이 좋다. 책 광고를 통해 저자의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631 법칙=선거는 구도가 60%, 인물이 30%, 선거운동이 10%를 좌우한다는 개념이다.

만약 해당 선거가 5% 이내의 격차 범위 안에서 당락이 결정되는 치열한 게임이라면 1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선거운동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네거티브의 필요성과 효과=후보가 직접 네거티브를 하는 것은 여러가지로 바람직하지 않다. 후보는 되도록 좋은 이미지만 추구하면서 다른 경로로 네거티브를 실행하는 것이 좋다. 후보가 남 욕하는 사람으로 보일 경우, 실제로는 네거티브를 실행한 우리보다는 제3의 다른 쪽으로 표가 넘어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기관이 직접 제기하는 네거티브야말로 최고의 네거티브라고 할 수 있다. 후보가 직접 하기 보다는 선본이 하고, 우리 선본이 하기 보다는 다른 선본에서 하는 게 좋다. 더 좋은 것은 제3자로 구분되는 외부의 시민단체나 언론기관이 문제를 제기해주는 상황이다.

하지만 TV토론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후보가 직접 경쟁상대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등 예의를 갖추면서도 과감한 네거티브 공격을 감행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종종 의외의 성과가 나오기도 한다. 상대방이 변명을 한답시고 얼결에 우리가 모르는 정황까지 설명해주는 경우다. 이럴 경우 해당 동영상을 캡처해서 유세차 영상으로 돌리기도 한다.

*슬로건의 요건=좋은 슬로건은 9자 이내여야 한다. 선거전략에 부합하는 슬로건이어야 하고, 후보의 약점을 강점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후보 입장이 아닌 유권자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쉬워야 한다.

*홍보물 제작 주의할 점=선본에서 제일 많이 하는 실수 중에 한 가지는 용량초과형 홍보물을 만드는 것이다. 담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여백 없이 터져나갈 것처럼 빽빽하게 만든 홍보물이다.

또한 세련된 디자인이 무조건 먹히는 것도 아니다. 디자인 문제는 감각의 차이에 불과한데 세대별로 디자인 감각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선거홍보물은 디자인 콘테스트가 아니다. 파격은 지양해야 한다. 획기적이고 아름다운 홍보물을 만들겠다면서 유권자의 기존상식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포맷을 시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한다.

튀는 공보물을 만들겠다면서 특이한 접지를 구상한다거나 만화처럼 만들겠다면서 얼굴도 알려지지 않는 후보의 캐릭터를 사용하고, 그림을 잔뜩 밀어넣는 등 괴이한 시도들은 주로 아마추어들이 해보려다가 포기하는 일들이다. 

정치광고는 창의적이기 보다는 기본에 충실함을 생명으로 한다.

*조직선거라는 허상=조직선거의 시대는 저물었다. 아무리 뛰어난 조직가라 해도 수백표를 온전히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설사 모임의 대표가 어떤 후보를 지지했다고 해서 회원들이 모두 회장의 정치적 선택을 따라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필자가 여러 캠프를 다니면서 많이 듣던 말 중의 하나는 "상대는 조직이 쎈데 우리는 약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막상 그 강하다는 조직을 가보면 실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캠프 사무실에서 몇 박스씩 후보 명함을 들고 나간 대단한 조직가들도 알고 보면 차에서 핸드폰으로 여론조사 결과나 뒤적거리는 경우가 많다.

*SNS홍보의 중요성=과거 조직의 의미가 인원동원형 조직이었다면, 현재는 SNS 콘텐츠 유통조직으로 그 핵심의미가 변모하고 있다. 조직은 후보의 콘텐츠와 결합했을 때 강한 생명력이 발생한다. 후보는 다양한 홍보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캠프는 이를 배포하기 쉽도록 재구성하며, 조직원들이 상시적으로 SNS에 접속해 배포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만약 캠프에서 SNS 콘텐츠 생산을 못하거나, 생산된 콘텐츠의 유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선본은 성공적인 바이럴을 할 수 없고, 껍데기뿐인 조직이 된다.

*선거캠프의 민주주의?=선거는 전시에 비교된다. 전시에는 민주주의를 해서는 안 된다. 선거판에서 민주주의를 하면 배가 산으로 가게 된다.

*갑질하는 회계책임자=경험이 없는 회계담당자들은 조금이라도 선거자금을 아끼기 위해 매우 짠돌이처럼 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선거 때 발생하는 모든 외부의뢰는 득표와 관련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나치게 물건 값을 깎다 보면 오히려 수주처가 후보를 욕하고 다니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때로는 선본 실무자가 까다로운 발주 관리를 하다가 인심을 잃는 경우도 있다. 갑 행세를 하기 보다는 수주업체도 모두 유권자로 간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후원회는 후원 이상의 의미가 있다=후보에게 후원금을 낸 사람은 누구보다 강력한 지지자들이다. 그들에게 각종 논리와 홍보 포인트를 공감하고 지속적 지원을 요청하는 등 비중있는 관리를 해야 한다.

후원회 간판 또한 선거운동 수단이다. 후원회 사무실 외벽에 통상적인 크기의 간판을 설치할 수 있다.

후원회는 신문에 후원을 요청하는 광고를 실을 수 있다. 이 광고 역시 후보의 인지도를 높이는 방법이 된다. 후원회 발주 광고를 통해 이후 대언론 관계를 원만히 풀어가는 계기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일단 후원회 광고부터 하고 선거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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