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한 컷

97년 여름, 훈 할머니를 기억하시나요?

기록하는 사람 2008. 8. 2.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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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독도 문제로 나라 안팍이 떠들석합니다. 각 정당은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차원의 독도 방문 이벤트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경남 창원시는 모두들 다 방문하는 독도보다는 차라리 대마도에 가겠다고도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지난 7월 24일 오후 마산시의원 19명 등 일행 28명은 독도(서도) 선착장에 도착해 성명서를 발표하고 땅에 입을 맞추는 퍼포먼스를 했습니다. /경남도민일보

물론 일본의 파렴치한 주장에 대해 규탄하는 것은 좋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잠잠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합니다.

언론의 '떼거리 저널리즘' '냄비 저널리즘' 때문입니다. 또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땐 적극적이다가도 언론의 관심이 식으면 슬그머니 발을 빼버리는 사람들과 단체도 문제는 있습니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언론과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던 한 할머니의 사진을 소개합니다. 바로 '훈 할머니'로 알려졌던 '이남이' 할머니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 사진은 아마 당시 경남매일 김구연 기자가 찍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왼쪽이 훈 할머니, 가운데가 조선애(올케) 할머니, 오른쪽이 이순이 할머니입니다. 그 뒤 뿔테안경 낀 사람이 접니다.

엿을 고아 팔던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 남동생과 함께 경남 마산시 진동면에서 살던 할머니는 16세 소녀의 나이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습니다.

온갖 치욕과 고통의 세월 속에 해방을 맞았으나 할머니는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캄보디아 원주민들 사이에 숨어 연명했습니다.

그러다 1997년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사업가에 의해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조선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세계 언론의 관심 속에 그해 8월 4일 한국을 방문하게 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할머니들이 신문에 난 사진을 함께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세기가 넘도록 이국땅에서 캄보디아인으로 위장해 살아온 할머니는 한국말은 물론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조차 기억해내지 못했고, 할머니의 혈육찾기는 난관에 부딪히게 됩니다. 한국에 온지 보름이 넘도록 가족을 찾지 못하자, 언론은 "조선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자칫 할머니를 데려온 사업가와 할머니는 희대의 사기꾼으로 매도당한 채 캄보디아로 되돌아가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결국 탈진한 할머니는 혈육찾기를 포기하고 되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인천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던 8월 26일 [경남매일]이라는 한 지역신문에 1면 머릿기사로 '훈 할머니 혈육 찾았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저를 포함한 취재팀이 73일간 추적 끝에 내놓은 결과물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날엔 할머니가 살던 진동면의 생가를 찾아 보도했고, 28일에는 훈 할머니의 여동생으로 확인된 이순이씨와 올케 조선애 할머니의 인터뷰를 내보냈습니다.

마침내 29일 오전 8시 인천 길병원에서 자매 상봉이 이뤄졌습니다. 할머니들의 마른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며 저도 따라 울었습니다.

이후 대검의 유전자 감식과 국적회복 절차를 거쳐 할머니는 영구귀국을 할 수 있었고, 저희들이 시민모금으로 마련한 성금으로 경북 경산의 한 마을에 새 집을 지어 장조카 가족과 보금자리를 찾았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98년 여름 경북 경산에 마련한 새 보금자리를 배경으로 훈 할머니와 장조카 가족, 그리고 저와 당시 사회부장이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그 때부터 한국 언론의 '위안부'에 대한 관심은 멀어지기 시작했고, 기후와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지 못한 할머니는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가 2001년 2월 가해국인 일본의 사과 한마디 듣지 못한 채 한 많은 삶을 쓸쓸히 마감했습니다.

훈 할머니 말고도 또 떠오르는 할머니 한 분이 있습니다. 지난 2월 나눔의 집에 계시다 세상을 떠나신 지돌이 할머니입니다.

지 할머니 역시 저와는 각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98년 중국 동북3성에 남아 계시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갔을 때 처음 만난 후, 2000년 나눔의 집 도움으로 귀국해 부산을 방문했을 때 두 번째로 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태종대 앞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시는 지돌이 할머니. 한참동안이나 이러고 계셨습니다.

그때 부산 태종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앉은 채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계시던 할머니의 뒷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일제에 의해 잃어버린 삶을 되돌아보고 계셨던 것일까요?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말을 못해 저희들과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은 탓에 '무슨 생각을 하셨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문제로 떠들석한 요즘, 일제에 의해 인생을 송두리째 망치고, 힘없는 조국에까지 버림받은 이들 할머니들에게도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훈 할머니의 진동 생가에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창원의 한 식당에서 점싣을 먹은 후 식당 주인과 종업원의 요청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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