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함양 동호정을 개떼처럼 유린한 산악회

김훤주 2017. 7. 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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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일 전 716일 마침 시간이 나기에 함양으로 걸음했다. 8월 초순 몇몇과 물에 발 담그는 약속을 했는데 함양 화림동 골짜기가 알맞은지 알아보자는 생각이었다


화림동 들머리 농월정은 주차장에 늘어선 대형 버스들을 보고는 질려버렸다. 줄잡아도 50대는 넘을 것 같았고 자가용 승용차도 적지 않았다. 주차장만 보고도 콧잔등에서 다른 사람 땀냄새가 났다


물론 이렇게 농월정을 지나친 것은 화림동 상류 동호정·거연정·군자정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자들은 농월정처럼 엄청난 인파가 몰릴 수 있는 지형이 못되었던 것이다



생각은 틀리지 않아서 농월정처럼 사람이 많이 몰려 있는 정자는 없었다. 그러나 서너 사람이 물에 발 담그고 쉴만한 장소는 한 군데도 없었다몇몇(그래도 100명은 넘어 보였다)들이 정자 주위를 통째로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호정도 거연정도 군자정도 그랬다


동호정을 통째 점령한 어느 산악회


동호정 바로 옆에는 대형 버스가 몇 대씩 있었다. 버스번호판이 전남 전북 광주 또는 경남 부산 울산 것은 아니었다. 경북 번호판도 아니었다. 정자에 잇대어 그늘막을 쳐놓고 있었다. 그늘막 일대 자리와 동호정 둘레에는 무슨 금줄이 쳐져 있었다. 자기네 판 벌이는 영역을 알리는 표지쯤 되겠지. 


그늘막 아래에는 사람들이 그득했다. 사람들은 간이 탁자를 펼쳐놓고 음식들을 먹고 있었다. 돼지고기 수육도 있었고 김치도 있었고 국수도 있었다. 물론 소주와 막걸리도 있었다. 공간이 너른 편인데도 사람들 시끄러운 소리가 왁자하게 들려왔다.



앰프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음악 사이사이로 ○○산악회의 이번 행사에 찬조하신 이들의 존함과 금액이 울려퍼졌다. “8대 아무아무 회장님 30만원 내셨습니다.” “아무아무 고문님 20만원 내셨습니다.” “아무아무 직전 회장님 10만원 내셨습니다.” “아무아무 회장님 50만원 내셨습니다.” 운운


그 때마다 앰프는 팡파레를 울렸고 사람들은 손뼉을 쳐댔다그런데 ○○산악회가 무슨 행사를 벌이고 있는지를 알리는 플래카드는 걸려 있지 않았다. 스스로도 쪽팔리는 노릇인 줄은 아는가보다



문화재 바로 옆에서 불까지 피운 산악회


동호정 조금 위쪽에는 드럼통을 잘라 만든 화덕이 있었다화덕 위에는 커다란 양은솥이 놓여 있었다연신 국수를 삶아내는 모양이었다때로는 불길이 화덕 밖으로 붉게 날름거리기도 했고 때로는 매캐한 연기를 내뿜기도 했다


동호정 근처 팻말에는 이곳은 문화재로서 화기엄금 구역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동호정은 나무로 만든 목조건물이다금방 잘라낸 생나무가 아니라 오래 묵어 잘 마른 나무다불길 날름대는 화덕은 동호정과 직선거리로 10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동호정이 2층은 온전했던 까닭 


아래가 이렇게 시끌벅적한 반면 동호정 2층에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저런 기세라면 정자 2층 계단에 음식물 반입 금지라 적혀 있다 한들 신경도 쓰지 않을 존재들일 텐데……


웬 일인가 싶어 올라가 보았다2층의 외로운 존재는 함양군에서 나온 감시원이었다. 감시원이 이렇게 지키니 2층이나마 온전한 모양이었다


동호정 건물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동호정이 서 있는 대지와 일대는 사유지일 것이다. 문화재는 당국으로부터 관리도 받고 통제도 받지만 땅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재산권이 행사되는 개인 소유일 수 있다. 이는 누구나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싸가지 없는 개떼 산악회


물론 그런 사유지에서 장사하는 함양 현지인과 ○○산악회 사이에 무슨 거래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 대가 없이 저렇게 막 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이것은 그런 사정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다. 또 제재할 방법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다


기본 싸가지가 문제다. 문화재를 보호하려는 생각이 있고 없고가 문제다. 동호정과 일대 빼어난 경관을 혼자 독점하겠다는 욕심이 문제다. 동호정 찾아 노닐고 싶어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문제다


이런 기본 싸가지가 개꼬리만큼이라도 있는 인간이 ○○산악회에는 하나도 없는 모양이다. 그 탓에 문화재가 유린되었고 다른 사람들의 제대로 쉴 권리도 함께 유린되었다. 개떼만도 못한, 개떼 같은, 개떼보다 더한 산악회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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