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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이런 소원팔이는 좀 심하다

김훤주 2017. 6.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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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산신령을 모시는 국사단


합천 가야산 해인사에 가면 국사단(局司壇)이 있다. 가야산 산신령을 모시는 전각이다. 천왕문(=봉황문)을 지나면 오른편에 앉아 있다. 우리 토속신앙에서 산신령은 산에 있는 모든 생명과 무생물의 질서를 관장하는 신령이면서 동시에 토지에 관한 모든 것을 관장하는 토지신이다


국사단은 외래종교인 불교가 우리 토속신앙과 타협한 자취가 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해인사를 짓기 위하여 땅을 빌리는 대신 가야산 산신령을 국사대신으로 모셨던 것이다


국사단은 원래 해인사 중심 전각인 대적광전의 왼편 학사대 전나무가 있는 아래 언덕에 있었다. 200711월 그 자리에 대비로전이 들어서면서 지금 자리로 옮겨 왔다



대가야와 가락국 임금의 어머니


통일신라시대 해인사에서 세상을 떠난 고운 최치원 선생은 생전에 가야산 산신령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름이 정견모주(正見母主, 정견은 불교에서 상당히 높은 경지인 있는 그대로 바로 본다는 뜻이다.)인 여자 산신령인데 천신(天神) 아비가와 감응하여 아들 둘을 낳았다


첫째 뇌질주일(惱窒朱日)은 대가야(경북 고령)를 건국했고 둘째 뇌질청예(惱窒靑裔)는 가락국(경남 김해)를 세웠다. 주일은 맏이답게 붉은 태양을 뜻하고 청예는 막내답게 새파란 후예를 뜻한다대가야 건국신화가 서려 있는 국사단은 팔만대장경과 더불어 해인사만의 독특함을 보여준다


지금은 해인사가 국사단에다 할머니를 모셔놓았지만 고작 10년 전만 해도 수염이 더부룩한 할아버지가 국사단의 주인이었다. 해인사가 대가야 건국신화에 무지했던 탓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뒤늦게나마 바꾸었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국사단에 모셔져 있는 정견모주.


소원지 한 장에 1만원


61일 합천 원경고 친구들과 우리 고장 사랑 역사문화탐방으로 해인사를 찾았다. 이런 사연들을 되새기며 반가운 마음으로 국사단을 찾았다. 국사단 정견모주는 내가 마지막 찾았던 2014년 가을 당시 모습 그대로였다


풍경과 분위기는 달라져 있었다. 2014년에는 이런 게 없었다. 거기 나무 한 그루가 소원나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이곳에 소원을 적고 국사단에 간절히 기도하시면 소망하시는 일이 꼭 이루어질 것입니다.” 운운 안내판이 있었고 둘러싼 줄에는 소원을 적은 종이가 빽빽하게 걸려 있었다


얼핏 훑어보아도 최소 1만 장은 넘을 것 같았다. 소원지는 하나같이 사랑표 모양을 하고 있었다소원지는 바로 옆 초나 향이나 쌀 같은 공양물을 파는 간이건물에서 한 장에 1만원씩 팔고 있었다


나도 원래는 그런 데 있는 소원문을 재미나게 살펴보는 편이다. 건강·승진·월급·사업·진학·합격·결혼·사랑 등등 우리 시대 즐거움의 구체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하고 때때로 기상천외한 표현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날은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았다. 소원지 하나가 1000원도 아니고 5000원도 아니고 1만원이라니. 거기 걸려 있는 소원지가 그냥 보기에도 1만 장은 넘어보였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적어도 1억원은 넘는다


물론 어떤 이는 소원을 빌고 또 그것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1만원이 무엇 아까우랴 할 수도 있다. 1만원 주고 소원을 적고 빎으로써 많은 사람이 위로를 얻고 격려를 받는 현실을 아니라고 부정할 생각은 없다


빈자일등으로 돌아가자


그러나 소원지 한 장에 1만원은 지나친 독점 가격이다. 부처님을 독점하는 해인사 같은 절간이기에 가능한, 밑천 별로 들지 않는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다. 가야산 산신령 정견모주가 옛 기록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기 때문에 가능한 측면도 있다.  


얻은 이윤을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쓰는지도 밝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이런 식으로 소원팔이를 하는 해인사가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합천 해인사가 순천 송광사와 양산 통도사와 함께 갖고 있는 삼보사찰이라는 품격에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


좀 바꾸어 보면 어떨까?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 했다. 등불은 석가모니 생전에서부터 부처님을 위한 공양물이었다. 그런데 임금이 밝힌 등불은 100개나 되었어도 다 꺼지고 말았지만 가난한 여인 하나가 종일 구걸해 얻은 동전 두 푼으로 밝힌 등은 하나뿐이었지만 밤새 꺼지지 않았다


나는 해인사도 이런 정신을 되찾아 너무 돈에 메이지 않으면 좋겠다. 소원나무를 두고 말하자면 누구든 소원지에 바람을 써서 매달 수 있도록 배려하면 좋겠다. 대신 1000원이든 5000원이든 아니면 1만원이나 10만원이든 비는 사람이 알아서 돈을 낼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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