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생각-김주완

진보는 어떻게 자기 발등을 찍는가

기록하는 사람 2008. 7. 30. 13:40
반응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금 전 서울에서 광고업에 종사하신다는 분의 전화를 받았다. 블로그에 올린 글 '진보주의자가 읽어야 할 두 권의 책'을 읽고 공감하는 마음에 전화한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우리 신문사에 전화하여 내 자리의 번호를 물어본 모양이었다.

그는 우리나라 운동권단체들이 내세우는 구호나 주장들이 너무 어렵다고 했다. 반면 한나라당과 기득권층이 내세우는 구호와 주장은 이율배반적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간단명료하단다. 또한 조선일보는 제목달기를 참 잘하는데, 한겨레는 제목부터 너무 딱딱하고 어렵단다.

그러면서 몇 가지 좋은 제안도 해주셨다. 요즘 많이 쓰는 '공기업 민영화 반대'라는 구호는 '공기업 재벌사유화 반대'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미FTA 반대'도 '한미 불평등협정 반대'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썼던 한 글에서 '한미노예협정'으로 부르자는 제안을 했던 적이 있다.) 그는 또 몇 년 전 운동권단체가 외쳤던 '자이툰부대 파병 반대'도 '침략전쟁 들러리 반대'로 바꿨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소개한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조지 레이코프는 인지언어학의 관점에서 이런 언어를 잘 만들어내는 것이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보수주의자들이 만들어낸 '민영화'라는 언어를 그대로 받아 진보주의자들이 '민영화 반대'라는 말을 쓰는 순간 보수의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그는 경고한다. '자기 발등을 자기가 찍는 격'이라는 거다.

또한 수전 조지는 [Another world]라는 책에서 진보적 사상가였던 그람시의 '문화적 헤게모니' 이론을 잘 따르고 있는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진보지식인이 아니라 우익진영이라고 꼬집는다.

문화적 헤게모니뿐 아니라, 프레임의 중요성도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촛불의 힘에 밀려 두 번째 사과를 하면서도, 바로 그 사과문에서 '공기업 민영화'에서 나아가 '공기업 선진화'라는 말로 다시 한번 프레임 전환을 시도했다.

'학교 자율화 조치'도 마찬가지다. 인지언어학의 입장에서 '자율화'라는 말은 좋은 느낌을 준다. 따라서 이걸 반대하는 사람들은 '학교 자율화 반대'를 외치면 안된다. 그 말 속에 숨은 본질을 드러내는 다른 언어로 바꿔내야 한다.

나는 수전 조지의 책을 읽으면서도 내내 불편했던 게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언어였다. 이 책은 ' 폭압적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실천적 제안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새롭다는 '신(新)'과 '자유'는 얼마나 좋은 말인가. '새로운 자유주의'를 왜 반대해야 하는가. 앞에 '폭압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긴 했지만 미진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라는 말의 정치경제학적 의미를 모른다.

그래서 내가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다른 언어를 여러 번 제안한 바 있다. '시장제국주의' '시장만능주의' '무한경쟁주의' '강자독식주의' 등이 그것이다. 생각이 짧아 이런 말 외에 더 좋은 대체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제 진보진영도 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생활을 적극 고민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수전 조지의 Another World - 10점
수전 조지 지음, 정성훈 옮김/산지니

1부 <더 나은 세계를 위한 현실인식>에서는 세계화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일부터 시작한다. 세계화라는 애매모호하고도 불분명한 표현이 어떤 거짓말로 이어지는지, ‘기업주도’나 ‘금융권 중심’,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말로 그 의미를 명확히 하는 일이 ...

관련기사 : 2008/07/29 - [이런 저런 생각/김주완] - 진보주의자가 읽어야 할 두 권의 책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