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배설 장군의 행동은 도망일까? 후퇴일까?

김훤주 2017. 1.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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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엄청나게 관객이 몰린 영화가 <명량>이다. 한국영화 관객 동원 1위를 지금도 지키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다룬 이 영화에는 배설도 나온다. 

경상우수사 배설은 영화에서 시종일관 비열한 이미지로 나온다. 칠천량해전에서부터 싸울 생각 없이 도망친다. 이순신이 통제사가 된 뒤에도 사사건건 반대하고 심지어 이순신을 암살하려고까지 한다. 명량해전 직전에는 거북선을 불지르고 달아나다 부하 안위한테 화살에 맞아 죽는다. 

대중들의 역사관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이 교과서와 드라마나 영화다. 1700만 명이 넘게 <명량>을 봤으니 배설은 빼도박도 못하게 비열한 인간으로 낙인이 찍힌 셈이다. 

영화 <명량>에 나오는 배설의 모습.

그렇다면 진짜 역사 기록 속에서 배설은 어떤 모습일까? 배설은 칠천량해전에서 전선 12척(또는 8척, 나머지 4척은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가 될 즈음 전라우수사 김억추가 수습했다는 얘기가 있음)을 이끌고 빠져나와 본진 한산도에 들렀다. 

한산도에서 식량·무기와 건물·시설을 불질러 없애고 백성들을 뭍으로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식량·무기·건물·시설에 불을 지른 이유는 아마 왜군이 점령해도 쓰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지 싶다. 배설이 정신없이 달아난 도망자였다면 앞뒤 돌아보지 않고 그냥 줄행랑만 쳤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행동을 두고 도망이라 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좀 더 정확하게는 그의 행동이 도망은 아니고 후퇴라고 보아야 맞을 것 같다. 

또 한 가지, 당시 배설이 보전했던 전선 12척(또는 8척)은 "이미 바다는 왜적에게 빼앗겼으니 바다를 버리고 육지에 올라 싸우라"고 선조가 명령했을 때 이순신으로 하여금 그 유명한 명언을 남길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배설이 전선 12척을 보전하지 못했어도 이순신 장군이 선조에게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남아 있나이다. 죽을 힘을 다하여 막아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수 있사옵니다. 비록 전선은 적지만 신이 죽지 않은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었을까? 

실제로 이순신은 12척을 기본 역량으로 삼아 명량에서 대승을 이룩하게 된다. 배설의 후퇴가 그래도 나름 조선 수군의 역량을 그나마 보전할 수 있게 하였고 이순신의 명량 대반전이 이에 크게 기대고 있음은 뚜렷한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배설이 용감하고 현명한 장군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칠천량해전 이후 싸우기를 피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달아나고 말았다는 기록이 <선조실록>에 있다. 전선이 모조리 깨지고 2만 가까운 장병이 몰살당한 칠천량해전에서 엄청나게 트라우마를 받은 탓이 아닐까. 

또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에는 배를 타면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워지는 증세를 핑계로 몸조리를 하겠다고 배설이 말했다는 내용과 '오늘 새벽에 경상수사 배설이 도망갔다'는 사실도 적혀 있다. 

배설은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해 결국 잡혀 죽게 된다. 선조가 그렇게 명령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반전이 흥미롭다. 선조는 죽은지 6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배설을 선무원종1등공신으로 삼았다. 선조가 이상한지 배설에 대한 평판이 잘못되었는지 정말 헷갈린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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