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동네 촛불집회를 낱낱이 기록해야 하는 까닭

기록하는 사람 2016. 11. 25. 09:03
반응형

지금 우리는 그야말로 피플파워(People Power·민중의 힘)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 민중항쟁의 결과가 어떻게 기록될 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지금까지 일어난 일 만으로도 또 한 번 대한민국 역사의 변곡점을 만들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지역신문과 기록의 중요성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1987년 6월민주항쟁 20주년이 되던 지난 2008년, 80년대 경남의 민주화운동 역사를 26회에 걸쳐 <경남도민일보>에 연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절실히 느꼈던 것이 ‘지역신문은 당대의 역사기록물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80년대 경남지역 신문에선 별 도움이 되는 자료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정권의 충실한 애완견이었던 그 신문 지면을 통해 당시 기득권층과 기회주의자, 아부꾼들이 민중의 반대편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를 알 수 있었던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었습니다.

11월 19일 창원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80년대 민중의 활동기록은 지역신문이 아닌 서울지역 언론(이른바 ‘중앙지’)과 외신, 대학의 학보, 교지, 민주단체의 소식지와 유인물, 성명서, 그리고 당시 구속 기소되었던 사람들의 공소장 등을 통해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지금 경남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20년 후 한 역사학자가 기록하려 한다면 과연 어디서 자료를 구할 수 있을까요? 80년대와 달리 대학생 운동은 퇴조했고, 대학 학보나 교지는 지금의 사회상황을 다루지 않습니다. 서울언론의 서울 집중과 지역 무시는 강화되었고, 유인물과 성명서는 디지털 텍스트 문자로 바뀌었습니다. 사진 또한 인화지로 남기지 않습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라온 수많은 글과 사진, 웹자보 등은 휘발성 강한 SNS의 특성상 몇 년 만 지나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결국 지역신문에 보도된 기록물 말고는 20년 전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남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역신문의 지면과 웹사이트가 중요합니다. SNS와 달리 웹사이트는 수십 년 후에도 디지털 아카이브로 백업되어 보관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역신문이 현 시국 곳곳에서 일어나는 촛불집회와 시국선언 등 시민들의 활동을 빠짐없이 취재 보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그런 점에서 각 지역과 단체별로 시국선언문을 채택하고, 이를 명단과 함께 <경남도민일보> 지면에 게재하는 시민들의 자발적 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고 대단한 일입니다. 시민들이 스스로 역사기록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죠.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말이 바로 이렇게 실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자들은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쓰는 기사 한 줄이 대한민국 역사의 사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역사의 흐름에서 반대편에 선 사람들 또한 충실히 기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11월 24일 진주에서 ‘진주호국안보단체총연합회’라는 단체가 연 ‘대통령 하야 반대 시민결의대회’ 같은 집회가 그렇습니다. 그들이 발표한 기자회견문과 발언, 주최측 대표들의 이름과 직책도 낱낱이 기록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후세들이 ‘역사의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부끄러운 이름으로 역사에 남는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경남의 정치인들, 시장·군수들은 이 시국에 어떤 입장을 취했고 어떤 행보를 보였는지도 기록해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역사가 됩니다.

이번 주말 경남에서 열리는 촛불집회 일정 by 경남도민일보

날이 많이 추워졌습니다. 역사 속의 오늘을 살고 계시는 <피플파워> 독자 여러분! 건강 잘 챙기시고 자랑스러운 역사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 달에는 더 정의로운 대한민국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편집책임 김주완 드림

※월간 피플파워 12월호 독자에게 드리는 편지로 쓴 글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