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 작가/대한민국 네트워크 종결자들

3화. 4대강 문제 파헤친 최병성 목사 네트워킹

기록하는 사람 2016. 5. 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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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네트워킹 종결자들 3화


사회 구성원은 누구나 네트워킹을 한다. 돈을 빌리고, 어울려 놀고, 일을 맡기고 모두 네트워킹이다. 시민단체가 정부를 상대로 현안에 대한 연대 성명을 내는 것도 이른바 '사회적 네트워킹'이다.


내 첫 작품인 <부러진 화살>은 2007년 1월 발생한 '석궁 사건'이 배경이다. 당시 이 사건이 터지자 인권운동사랑방, 구속노동자후원회, 교수노동조합 등 단체들이 모였다. 이후 굵직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 단체들은 모였다. 


이들을 지켜보면서 생긴 의문은 '확장성'이었다.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itter) 같은 소셜네트워크 (Social Network Service) 기반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확장성을 보장한다.  이런 네트워킹 기반은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운동이 확장성을 지니지 못한다면 이는 기술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문제를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어느 순간 네트워킹을 한정하는 게 편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매트릭스> 주인공 네오처럼 삶에서 불쑥 의문은 들지만 우리가 얼마나 갇혀서 생각하는지는 스스로 알 길이 없다. 네오도 모피어스가 건넨 '빨간 약'을 삼키고서야 진실을 마주하게 됐다. 나는 이 글이 독자에게 모피어스가 건넨 '빨간 약'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서형>



MB '녹조라떼' 찍으려고 패러글라이딩까지


글 서형 작가 | 그림 공갈만


최병성 네트워킹 ⓒ 원주신문


심규상 기자가 네트워크를 설명하는 마지막 두 단어는 긍정과 공명이다. 공명은 강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퍼지는 현상이다. 관계에서 공명은 누군가를 이해하고 그 사람과 함께하려는 것을 말한다. 


긍정적인 요소가 공명을 일으킨다는 주장은 심규상 기자만 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칭찬, 유머, 희망 같은 긍정적인 요소를 지역에 투영하고자 노력하는 대표적인 지역신문이 <원주투데이>다. 


특히 <원주투데이>가 진행한 '1004운동'은 인상적이다. 원주시는 '모든 시민이 천사'라는 전제로 1004원 기부 운동을 펼친다. <원주투데이>는 기부자 명단은 매주 신문 광고란에 공개한다. 1004 운동은 기부가 주는 즐거움을 깨닫게 하는 선순환 구조로 유지된다.


1004 운동 기부자 명단 공개. ⓒ 원주신문


심규상 기자가 대전·충남지역 시민기자를 움직이는 힘도 여기서 나왔다. <오마이뉴스>는 시민기자들이 자신의 사는 이야기를 뉴스로 송고할 수 있다. 심규상 기자는 결혼기념일 내용이면 전화로 축하했고, 누가 아프다면 위로했다. 관계 속에서 힘을 북돋우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박대용 <뉴스타파> 기자도 긍정과 공명 현상을 잘 이해한다. 박대용 기자는 SNS를 하면서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느끼는 촉이 생겼다고 했다. 사람들은 좋은 정보나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내용을 제공하니 구독자가 많이 늘었다는 것이다.


심규상 기자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노력이 결과적으로 나를 위하는 것이며 집단으로 보면 '공익 추구'라고 했다. 하부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중앙집권적 사회구조 속에서 심규상이 제시하는 네트워킹은 특별하다. 예를 들어보자.


주변부 강화 ⓒ 공갈만


2012년 12월 대전에 있던 충남도청이 내포 신도시로 옮겨졌다. 새 청사가 생기면서 기자실이 도마에 올랐다. 일부 언론사 출입기자들이 기자실 독점을 선언했다. 심규상 기자는 다시 네트워킹을 가동한다. 


우선 <오마이뉴스>에 이 문제를 비판하는 기사를 올린다. "충남도청 새 청사 기자실은 독점-폐쇄형", "볼썽사나운 세종시청 기자실 자리다툼"이 게재됐다. 충남 지역신문도 이 기사를 그대로 게재하면서 연대했다. 


충남 지역언론은 달마다 간담회를 하거나 하반기에 연수모임을 한다. 이때 심규상 기자도 모임에 참석해 고민을 듣는다. 서로에게 에너지를 꾸준히 보내는 노력은 결국 자신을 위하는 것이다.


심규상 기자가 가동하는 네트워킹은 에너지를 자기 중심으로 빨아들이는 게 아니다. 주변부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이는 MB 정부 시절 4대강 투쟁에서도 빛을 발했다.


최병성과 친구들, 네트워킹으로 4대강 사업 저격하다



최병성 네트워크 ⓒ 공갈만


최병성 목사는 4대강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친 블로거이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유명하다. 4대강 사업은 전국에 걸친 문제였기에 투쟁을 함께 할 연결망이 필요했다. 


최병성 목사는 그 연결망을 통해 자료를 입수했다. 그중 하나가 이명박 현대건설 사장이 1983년 4월 연천군에 댐 건설 허가를 신청하면서 댐으로 인한 홍수 피해를 모두 책임지겠다고 쓴 각서다. 


하지만 연천댐은 1996년 7월 31일, 경기 북부지역 폭우로 한 차례 무너졌고, 1999년 8월에 다시 붕괴된 후, 결국 철거됐다. 당시 지역주민들은 이 각서를 근거로, 현대건설로부터 보상을 받고자 했으나, 현대건설 측은 홍수 피해가 천재지변이라 주장하고 나섰다.


이 각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4대강 건설을 한다'는 명목을 비판하기 적절한 자료였다. 강에 모아둔 많은 물이 오히려 거대한 물폭탄이 되어 4대강 지역에 홍수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관련기사: '이명박 사장' 각서 쓴 연천댐도 2번 붕괴 4대강 사업 강행하면 더 큰 "물폭탄 재앙") 이 자료는 경기도 연천지역언론인 <연천닷컴>에서 제공했다. 


당시의 각서. ⓒ 연천닷컴 제공


최병성 목사는 연결망을 조직화 하는 과정에서 아쉬운 점을 발견한다.


"지금은 감각적인 시대잖아요. 아름다운 강이 파괴되는 현장을 사진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사람들이 사진을 찍지 않는 거예요."


그렇지 않은 단체도 있었다. 최병성 목사는 먼저 부산지역 환경단체인 '습지와 새들의 친구'를 꼽았다. 이 단체 회원들은 2010년부터 패러글라이딩을 타며 공중에서 사진을 찍었다. <시사인> <주간경향> <한겨레21> 등 매체에서 4대강 사업을 비판하고자 낸 사진 대부분은 이 단체에서 제공했다. 2010년 금호강과 낙동강 합류지에 내려온 검은 흙탕물 사진, 2012년 강에 녹조가 퍼진 사진 등이 모두 이 단체 작품이다.


2012년 6월 13일 촬영한 합천보. ⓒ 습지와 새들의 친구 제공


최병성 목사는 '습지와 새들의 친구'가 보인 열정을 높게 평가했다.


"낙동강 하구 새들을 관찰한 경험 덕에 생명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있어요. 그래서 분노했고 이 분노를 제대로 드러내는 방법을 찾으려는 열정이 있지요."


이와 더불어 최병성 목사는 정수근 대구환경연합 사무국장과 충남 공주에 있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김종술을 열정 있는 활동가로 꼽았다. 어떤 요소들이 이들을 4대강 사업 문제에 매달리게 만들었나? 부산, 대구, 공주 이 지역에서 네트워킹이 가능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 부분을 짚어보자.


최병성 네트워크의 핵심, 카메라



용인 '부아산지킴이'로 활동 중인 최병성 목사. 지난해 7월 답사차 부아산을 방문했을 때 모습. 한쪽 어깨에 카메라가 걸려있다. ⓒ 김병기


도로를 닦는 토건사업 대부분은 관급공사다. 관급공사는 현금 확보에 가장 유리한 사업이다. 그리고 관급공사 인·허가권은 대부분 시·군 자치단체장 몫이다. 대구 MBC는 2004년 신년보도특집 '도로 공화국'에서 재원 배분이 항만이나 철도가 아닌 도로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현실을 드러낸 바 있다. 이런 개발을 가장 비판하는 목소리는 환경단체에서 나왔다.


1993년 부산에서는 낙동강 하구를 가로지르는 을숙도대교 사업이 추진됐다. 사업이 발표되자 환경단체들이 반발했다. 하굿둑이나 낙동강대교가 있는데 굳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을숙도대교를 건설할 이유가 없다고 맞섰다. 


이 과정에서 환경단체들은 개발논리에 맞서려면 더 치밀한 연구·조사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2000년 결성된 '습지와 새들의 친구'는 그런 고민이 낳은 단체였다. 2002년부터 이들은 매월 낙동강 하구를 탐사하며 철새 사진을 찍었다. 


식생 변화나 지형 변화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사진이었다. 이 같은 활동 경력은 4대강 사업 반대 활동에서도 빛을 발한다. 


'습지와 새들의 친구' 결성 배경은 부산지역 난개발이었다. 부산과 가까운 경남 양산시는 2003년 3월 스님 지율이 단식 투쟁으로 맞섰다.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공사 노선 변경과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를 요구한 것이었다. 


이제 대구로 가보자. 훗날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는 정수근은 2005년 대구를 대표하는 앞산에서 진행하는 터널공사를 반대하는 움직임을 주도했다. 대구가 교통이 열악한 지역이 아니라는 게 반대 이유였다.


경남 양산시에 살던 스님 지율도 한 곳에 머물지 않았다. 2008년 연말부터 낙동강 답사를 시작한 것이다. 천성산 도롱뇽 투쟁이 끝나면서 자연스럽게 4대강 개발이 진행될 낙동강으로 발길을 돌렸다. 바로 이때 정수근은 낙동강을 답사하는 스님 지율을 만나게 됐다.


지율은 큰 카메라를 둘러매고 다녔다.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하면서 낙동강 사진을 찍었다. 정수근은 지율을 차에 태워 낙동강을 함께 다녔다. 지율은 사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4대강 사업 전후 사진을 찍어 비교 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2011년 대구환경녹색연합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정수근은 블로그에 대구 주변 낙동강 사진을 올렸다.


4대강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친 최병성 목사도 그랬다. 2000년 초반 강원도 영월 서강 근처에 쓰레기 매립장이 생기는 것을 반대하면서 서강을 돌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언론에 제공하면서 꾸준히 이슈를 만들어 매립장 계획을 백지화시켰다. 2007년 4대강 사업에 관심을 보이면서 그 습관은 그대로 이어졌다.


이제 금강이 파괴되는 과정을 사진으로 남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김종술로 넘어가보자. 전라도 장성 출신인 그는 충남 공주에 살고 있다. 김종술은 공주에서 <백제신문>이라는 지역신문을 할 때 심규상을 만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가입했다.


그가 쓴 가장 유명한 기사 시리즈 중 하나는 '금강 물고기 떼죽음 13일간의 기록'이었다. 4대강 사업으로 금강에서 60만 마리가 넘는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고 이를 관찰한 것이다.


금강에서 물고기가 죽기 시작한 것은 2012년 10월 18일이었다. 김종술은 10월 21일부터 취재를 시작했고, 심규상 기자와 보도 방향을 의논했다. <오마이뉴스>에 "금강서 136cm 초대형 메기도 죽었다"는 기사가 떴을 때는 심규상은 김종술에게 메기 사진을 저작권 주장 없이 모든 언론에 제공하자고 제안한다. 10월 26일 이후 방송과 <한겨레>, <경향신문> 등에 이 사진이 보도된다.


보다시피 네트워킹은 어느 순간 중앙이 요구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지속적으로 그 공간 안에서 사람들 간 교류와 성장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축척된 지역 에너지가 중앙과 결합하면서 폭발력이 생긴다. 선순환 구조를 갖추려면 반드시 중앙에너지는 다시 하방으로 흘러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연결고리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 정치·경제·문화 등을 지배하는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고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것은 바로 '중앙집권적 체제'이다. 이러한 순환 구조에 대한 개념은 약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나의 네트워킹이 얼마나 선순환적인 흐름을 갖고 있는지 뒤돌아보게 됐다. 우선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즐길 줄 몰랐다는 생각이 앞섰다. 사법피해자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어느 순간 황폐해진다는 느낌만 더했다. 하지만 사법피해자는 사법개혁 과정에서 첨병이 되는 귀한 차원이다. 심규상 기자를 보면서 인맥이 공공성을 갖출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회에서 알게 된 사람은 개인 소유가 아니라 사회 소유였다. 마침 그 시점에 '정보공개청구강의'를 하러 다니는 박대용 기자를 알게 됐다. 박대용 기자는 사법피해자에게 정보공개청구 방법을 강의하고자 했다. 


곧 서울에 있는 지역 MBC 노조 숙소를 빌려서 강의를 진행했다. 이후 '정보 비대칭성'을 극복하고자, 사법피해자를 위해 법원에 탄원서를 냈던 언론인에게 재능기부를 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이강택 KBS PD가 강의했다. 한 사법피해자가 물었다.


"우리 같은 사람은 왜 뉴스에 안 나오나요?"

"중앙집권주의라서 그렇지요."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시스템


지역목소리를 유통시킨 오마이뉴스 시스템 ⓒ 공갈만


자기가 사는 공간이나 주변에 관심을 두고 문제가 생기면 언론에 널리 알리고 해결하기에 지금같은 중앙집권적 시스템은 버겁다. 언론이 서울 발 목소리만 담아내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변화를 만들려면 좋은 기사만 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이것이 잘 유통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역 목소리를 담을 수 있었던 <오마이뉴스> 시스템이 몰고 온 영향은 크다. 


또 다른 조짐이 있다.


2003년 네이버가 블로그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개인이 콘텐츠를 생산하는 영역이 부쩍 넓어진다. 미디어 산업은 생산과 유통을 구분해야 정확하게 볼 수 있다. 블로그는 생산 수단이며 뒤에 등장하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콘텐츠를 유통하는 역할을 한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등장하기 전 미디어다음은 시사성이 짙은 블로그 콘텐츠를 한 곳에 모아 유통하는 실험을 시작한다. 2004년 통신원 제도로 시작한 작은 게시판은 2005년 '블로거 뉴스'(나중에 '다음뷰')로 발전한다.


블로거 뉴스를 대중이 인식한 계기는 '미디어몽구'(필명)가 만들었다. 미디어몽구는 2005년 뉴스에서 황우석 박사 입원 소식을 접한다. 황우석 박사가 입원한 서울대병원은 미디어몽구가 사는 동네와 가까웠다. 미디어몽구는 산책 삼아 병원으로 간다. 


그리고 휴대전화로 병원 입구에 늘어선 방송 중계차를 찍어 블로그에 올렸다. 미디어몽구가 올린 동영상을 흥미롭게 여긴 다음 편집자는 이 콘텐츠를 첫 화면에 노출한다. 동영상 조회 기록은 10만 회를 넘긴다. 미디어몽구는 며칠 뒤 특종 상금으로 10만 원을 받았다. 포털이 제공한 유통 공간에서 블로거는 콘텐츠만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


이른바 '파워블로거'가 출연한 것이다. 그중 한 명이 김주완 <경남도민일보> 기자다. 그는 처음 웹 개발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일을 저질렀다. 블로그를 처음 만든 웹 개발자는 개인이 자유롭게 떠들다 보면 그 안에서 저절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완성할 것으로 기대했다. 


따지고 보면 인터넷에서 지역성을 찾기는 어렵다. 국내에서 지역 담론은 그다지 응집력이 없다. 초창기 웹 설계자 역시 지역성을 고민하지 않았다. 한국 근현대사는 지역성을 약화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김주완은 '갱상도 블로거'라는 조직화를 통해 인터넷에서 지역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그뿐 아니다. 2011년 말 사이판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다. 사이판을 관광하던 경상도 사람이 총격을 당했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이가 없었다. 중앙매체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김주완 기자는 인터넷에서 '동맹 블로거'를 조직해 이 사건을 이슈화했다. 


김주완 기자는 이런 네트워킹을 어떻게 생각해낸 것일까? 김주완 기자 삶 속에서 네트워킹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다음4화-김주완 네트워킹) 서형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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