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한국현대사

마산에 전국적 노동운동가가 있었지만 묻힌 까닭

기록하는 사람 2016. 3. 2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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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昭潭) 노현섭(盧玄燮) 풍천 노 씨


곡안리 민간인학살사건|마산 민간인학살 진상 규명운동|마산 여양리 민간인학살지


1921 구산면 안녕마을 출생

1944 일본 중앙대 법대 졸

1946 마산보통상업학교 교사

1950 마산부두노조위원장

1952 마산고등공민학교 교장

1954 전국자유연맹 위원장

1955 마산시 교육위원

1956 마산노동병원 병원장

1960 양민학살 전국유족회장

1991 사망


[정의]

1960년 4·19혁명 직후 마산에서 처음으로 양민학살유족회를 결성하여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에 나섰으며 전국유족회장을 맡았으나 1961년 5·16쿠데타 직후 연행되어 용공 혐의로 징역 15년을 받고 복역한 사회운동가이자 항운노조의 전신인 자유노련을 이끌었던 노동운동가.


[가계]

아들 노치웅(전 경남에너지 총무·기획이사) 씨 등 5남 1녀를 두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학살된 형 노상도 씨의 아들 노치수 씨는 2009년부터 민간인학살창원유족회 회장을 맡고 있다.


[활동 사항]

아호(雅號)가 소담(昭潭)인 노현섭(1920~1991) 씨는 마산시 구산면 안녕마을 출신으로 일본 중앙대 법과를 졸업한 인텔리였다.


해방 직후 마산보통상업학교(현 마산상고)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그는 한국전쟁 이후 3개 부두노조를 통합한 단일지역노조인 대한노총 자유연맹 마산부두노조를 결성,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이와 함께 그는 마산자유연맹 위원장과 전국자유연맹 위원장(1954년 12월 14일~1955년 6월 4일)으로 한국 노동운동을 주도했으며, 노동자 자녀를 위한 마산고등공민학교와 노동병원을 설립, 직접 운영하기도 했던 마산노동운동의 아버지와 같은 인물이다. 마산시 교육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형무소 복역 중 병보석으로 풀려나와 있던 시절의 노현섭.


그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일본 와세다대학을 나온 친형 노상도 씨를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으로 잃었으며, 자신도 트럭에 실려 끌려가던 중 달리던 차에서 뛰어내려 필사의 탈출을 한 끝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는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한 직후 마산에서 처음으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에 나섰다. 당시 그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60년 5월 24일(화) 구름, 맑음. 상오 11시부터 하오 1시까지 '정부는 6·25 당시의 보련(保聯=보도연맹) 관계자의 행방을 알려라!! 만일 죽였다면 그 진상을 공개하라!!'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김용국 군과 단 둘이서 침묵의 시위를 온 시내로 하였다."


노현섭씨는 바로 그날부터 대자보를 시내 곳곳에 써 붙이고 유족신고를 받기 시작했다. 6월 12일 마산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마산지구양민학살유가족회를 결성하고 회장을 맡았으며, 8월 27일 소복을 입은 유족 1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마산역 광장에서 마산지구 합동위령제를 열었다.


1960년 마산상공회의소 강당에서 열린 마산유족회 결성식에서 울부짖는 유족들.


다음날인 8월 28일에는 부산상공회의소에서 경남유족연합회를 발족했고, 10월20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전 자유당 중앙당부 회의실에서 전국유족회를 결성했다. 전국유족회장도 노현섭 씨가 맡았다.


전국유족회는 양민학살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특별법 제정’을 공식 요구사항으로 내걸고 활발한 활동에 들어가게 되지만, 1961년 박정희의 5·16쿠데타로 모든 핵심간부가 혁명재판에 회부되고 증거자료는 모두 압수되고 말았다.


그를 처벌한 ‘특수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법’은 일단 연행하여 구속한 이들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소급입법이었다. 노현섭 씨는 15년형을 선고받고 8년 정도 복역하고 나서 주거 제한 조건으로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옥살이 후유증에 시달리다 1991년 사망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 제정됐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나섰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09년 10월 21일 유족회 사건에 대한 재심을 권고했고, 2010년 6월 노현섭 씨 등 유족회 간부들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


무죄 선고를 받은 그 해 10월 마산에서는 '소담 노현섭선생 기념사업회'(회장 이순항)가 발족했다.


[묘소]

고향인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안녕마을 선산에 있다.


[참고 문헌]

김주완, <토호세력의 뿌리>(도서출판 불휘, 2006)

마산·창원지역사연구회, <마산·창원 역사읽기>(도서출판 불휘, 2003)


※디지털창원문화대전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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