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재일동포 국적 문제와 조선학교

김훤주 2015. 12. 2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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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출신 재일동포들을 초청하는 방안을 알아보려고 올 가을 일본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저는 일본 정부와 사회의 차별·멸시에 맞서고 견디며 64년을 살아온 재일동포 2세 이상재 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국적이 한국이었고, 우리 역사를 공부하고 우리말을 익힌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어린 시절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른이 돼서 머리와 입이 굳어버린 조건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대 한반도 도래인(渡來人) 공부도 했습니다. 재일동포 사학자 박종명 지도 아래 세 사람이 교토도래인연구회를 무어 연구했고 그 결과로 <교토 속의 조선(京都の なかの 朝鮮)>(1999)이 단행본으로 나왔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은 이 책을 보고 뱀무덤을 찾아가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뱀무덤은 교토를 개척한 신라계 도래인(진하승)의 것으로 알려진 커다란 고분인데요, 요즘 들어 유홍준 저작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당시 이 씨는 학자가 아니었고 그냥 회사원이었다고 했습니다. 이 또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상재 씨는 한국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이럴 수 있었지 싶습니다. 이 씨는 어린 시절 민족교육을 받을 수 있었는데 여기서 비롯된 바 또한 작지 않을 것입니다. 


그이는 교토조선제2초급학교와 교토조선중급학교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자기 모교인데, 갈수록 쪼그라들어 이제는 전교생이 저마다 60명 40명 수준이라 했습니다. 차별이 심해져서 줄었느냐 물었더니 다른 더 큰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교토조선제2초급학교 교정에서. 가운데가 김영주 교장, 오른쪽이 이상재 선생.


조선학교는 그냥 버림받은 존재였습니다. 일본 정부가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버렸습니다. 식민 지배와 전쟁 동원으로 조선 사람을 일본으로 끌고 와서 재일동포를 만들어 낸 원죄가 있는 일본인데도 그랬습니다. 


보기를 들자면 다른 일반 학교에는 다하는 무상의무교육이나 무상급식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학교 운영비나 인건비 지원도 거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선학교는 학부모 부담이 엄청 많습니다. 선생님은 월급을 제때 못 받고, 학부모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청소 같은 자원봉사를 해야 합니다. 


조선학교는 남과 북의 조국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았습니다. 한때 도움을 줬던 북한은 자기 손발(조총련)조차 망가졌으니 이제 다른 말이 더 필요 없습니다. 가난해서 자식을 버린 셈이지요. 


그런데 나름 산다는 남한 정부도 똑같거나 더합니다. 무신경·무관심으로 일관합니다. 거기에는 조선학교를 북한 것으로 보는 잘못된 눈길이 개입돼 있기도 합니다. 


교토조선제2초급학교 통학버스. 하나는 아버지호, 다른 하나는 어머니호.


심지어 때로는 이런 조선학교들을 위해 '책 보내기 운동'을 벌이는 민간단체에 대해 사찰도 했습니다. 자기 밥은 한 술도 주지 못하겠으며, 나아가 다른 사람이 밥 담아주는 바가지까지 깨버리겠다는 심보입니다. 재일동포가 한국 국적을 유지하든 일본 국적으로 옮겨가든 상관 없다는 태도입니다. 


생각해 봅니다. 일본에서 우리 민족교육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이상재 씨 같은 재일동포는 더이상 나오지 못합니다. 


이상재 씨는 말합니다. 

"일본에서는 한국 국적을 밝히면 바로 차별과 무시를 받습니다. 같은 인간으로 동등하게 여기지 않는데 어떻게 숙이고 들어가겠습니까?" 재일동포의 한국 사람 정체성이 무너지면 당연히 일본 귀화가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본토에 사는 우리가 조선학교를 도와야 하는 핵심입니다. 


조선학교 아이들 그림.'우리'라는 낱말이 가슴 시립니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 하나. 재일동포 가운데는 북한 국적이 없습니다. 있은들 뭐가 문제겠습니까만은. 


동포 50만 명 가량에서 80%가 한국(남한) 국적이고 나머지 20%는 조선 국적입니다. 여기 조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이 아닙니다. 남쪽에도 북쪽에도 국가가 없던 1947년, 일본이 외국인등록령으로 강제로 우겨넣은 민족 딱지일 따름이라고 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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