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김준엽과 김정배 두 고려대 총장의 다른 삶

기록하는 사람 2015. 12. 1.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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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엽과 김정배. 둘 다 고려대 총장 출신이다. 김준엽은 1982년부터 1985년까지 제9대 총장이었고, 김정배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제14대 총장이었다.


나이는 김준엽이 20년이나 앞서지만, 둘은 고려대 사학과에서 스승과 제자로, 또한 동료 교수로 함께 한 세월이 결코 짧지 않다. 그러나 총장 이후 둘의 삶은 정반대로 나아갔다.


김준엽은 총장 재임 시절 데모 학생들을 제적하라는 정권의 압력을 거절하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강제퇴임하게 된다. 이에 고려대 학생들은 “총장을 지키자”며 한 달 동안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광복군 시절의 김준엽(가운데). 오른쪽은 장준하.


1987년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그에게 국무총리를 맡아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딱 부러지게 거절한다.


“내가 만일 총리가 된다면 야당에게 투표한 66% 국민의 뜻에 따라야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총리와 대통령의 의견이 다르면 대통령의 뜻에 따라야 할 것이 아닌가.”


그래도 다시 간청하자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교육자다. 우리 제자들이 민주화를 외치다가 많이 잡혀갔고, 고문을 당해 죽기도 했고, 성고문까지 당했는데, 교육자라는 교수가 어떻게 이런 정권에 들어가 협력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날린다.


“지식인들이 벼슬이라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뛰어들어 굽실굽실하는 한심스러운 풍토를 고쳐야 한다. 나 하나 만이라도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겠다.”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


김준엽이 벼슬자리를 고사한 일은 그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1948년 정부가 수립되자 그가 광복군 시절 모시고 있던 이범석 장군이 국무총리와 국방장관을 겸직하면서 정부에 들어오라고 했다. 그러나 사양하고 중국에 공부하러 가버렸다. 1960년 4·19혁명 후 장면 내각도 그에게 주일대사 자리를 제안했으나 “이 양반들아, 나 대사시킬 생각 말고 쿠데타나 막아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결국 그의 예언대로 이듬해 5·16쿠데타가 일어났다.


박정희 정권에서도 김종필이 제안한 공화당 사무총장직을 거절했고, 1974년에는 통일원 장관직도 고사했다. 심지어 그는 고려대에서 쫓겨난 후 다른 대학에서 출강 요청과 연구실 제공 제의가 잇따랐지만 모두 거절했다. “총장까지 지낸 내가 타교에 가면 고대의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김준엽은 또 “대한민국의 법통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있다”고 줄기차게 말씀해 온 분이다. 박정희 정권이 헌법 전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통성’ 부분을 삭제하고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를 추가한 데 대해 “헌정사상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라고 탄식했던 분이다.1987년 6월항쟁 후 임시정부 법통이 헌법에 되살아나자 가장 기뻐했던 사람도 그분이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연합뉴스 사진


이런 김준엽이 김정배의 스승이었다. 스승이 2011년 타계했을 때 김정배는 후학을 대표하여 이런 조사를 읊었다.


“끊임없이 고위 관리 제의가 들어와도 사양하며 학문 세계를 지킨 인품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 두고두고 후학들과 이 땅의 국민들이 본받아야 할 표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랬던 김정배가 지금 박근혜 정부의 국사편찬위원장 자리에 앉아 국정교과서 편찬을 주도하고 있다.


그렇게 김준엽은 겨레의 사표(師表)가 되었지만, 김정배는 권력의 주구(走狗)가 되었다.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


※경남도민일보에 칼럼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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