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과연 천륜이라는 것이 있기나 할까?

김훤주 2015. 10. 1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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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탐방대-사천 고자치


아들 쪽으로 돌아봤다는 고개 고자치


고려 현종(992~1031)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애틋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관련 이야기들에서 그 증거를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도 않습니다. 


바로 ‘고자치’에 얽힌 얘기입니다. 사천 정동면 학촌 마을 뒷산 고개에 얽힌 지명 생성 설화입니다. 고자치는 한자로 돌아볼 고顧 아들 자子 고개 치峙를 씁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돌아보는 고개가 되는데요, 태조 왕건의 여덟 번째 아들 욱郁(?~997)이 자기 아들순詢(뒷날 8대 현종顯宗)이 있는 쪽으로 이 고개마루에서 돌아보곤 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당시 사수현 귀룡동(지금 사천시 사남면 화전·우천리 일대로 비정比定)에 귀양살이 와 있었고요, 아들은 배방사(지금 정동면 장산리로 비정)에 와 있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고자치 마루에 들어선 조형물과 정자. 제가 보기에는 참 얄궂습니다.


현종 아버지는 이미 말씀드린대로 왕욱입니다. 어머니는 5대 임금 경종(955~981)의 아내 헌정왕후입니다. 경종이 죽은 뒤 임금 자리는 사촌동생 치治(961~997)한테 넘어가 성종이 됐는데요, 이렇게 되니까 헌정왕후는 궁궐에 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오게 됐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사천현’ 기사에서 가져오겠습니다. 이렇습니다. 


“처음에 경종의 비 황보씨(헌정왕후)가 궁궐에서 나와 사제私第에 있었다. 하룻밤에는 곡령鵠嶺(개성에 있는 고개, 여기 산줄기에서 태조 왕건이 태어났음)에 올라 오줌을 누었더니, 도성에 흘러넘쳐서 모두 은銀바다로 되는 꿈을 꾸었다. 점쟁이가 말하기를, ‘아들을 낳으면 한 나라에 임금이 될 것이요.’ 하니, 비는, ‘내가 과부인데 어찌 아들을 낳으랴.’ 하였다. 


종실宗室 욱은 태조의 여덟 번째 아들이다. 사는 집이 비의 사제와 가까웠다. 그리하여 서로 왕래하다가 사통하여 임신하였다. 성종 때 비가 욱의 집에서 자는데, 그 집 사람이 뜰에다 섶을 쌓고 불을 질렀다. 관리들이 달려가 구원하고 성종 또한 황급히 가서 불이 난 이유를 물었다. 


그 집 사람이 사실을 아뢰니 비는 부끄러워 후회하였다. 자기 집으로 돌아와 문에 이르자 말자 산기産氣가 있어 문 앞 버드나무를 부여잡고 몸을 풀었으나 비는 죽었다. 그 연유로 욱은 사천현에 유배되었다. 그리하여 보모를 택하여 그 아이를 길러서 마침내 욱에게 돌려보냈는데 이 아이가 곧 현종이다.” 


그러니까 왕욱은 종친으로서 선왕의 아내를 범하는 죄를 지었고 그로 말미암아 개성에서 머나먼 사천으로 유배를 오게 됐던 것입니다. 


성종은 자기한테 아저씨뻘 되는 왕욱을 위해 사천으로 아들도 뒤따라 보냈지만, 같이 살게는 하지 않았답니다. 왔다갔다 하려면 산기슭을 빙 돌고 고개(고자치)를 하나 넘어야 하는 건너편 산자락 배방사에다 아들을 둔 것입니다. 



그래서 전하기를, 993년부터 자기가 죽는 997년까지 5년 동안 자기 귀양처와 아들이 있는 배방사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갔으며 또 돌아올 때는 그 산마루峙에서 아들子이 있는 곳을 돌아보며顧 여기서 내려가면 볼 수 없어 안타까워했다는 얘기입니다. 극진한 아들 사랑이라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아들을 위해 당대 발복도 도모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 같은 ‘사천현’ 기사에는 이런 내용도 적혀 있습니다. “왕욱은 또 지리에 정통하였다. 일찍이 현종에게 금(金) 한 주머니를 몰래 주면서, ‘내가 죽거든 이 금을 지관地官에게 주고 고을 성황당 남쪽 귀룡동歸龍洞에 장사하여라. 그리고 반드시 엎어서 묻도록 하라.’ 하였다. 


욱이 귀양살다 죽은 뒤 현종이 그 말대로 하였는데, 매장할 무렵에 엎어서 묻도록 청하니, 술사가 ‘무엇이 그리 바쁜가.’ 하였다. 다음해 2월에 현종은 서울로 돌아갔다. (1009년) 즉위하여서는 욱을 추존하여 효목대왕이라 하고 묘호를 안종이라 하였다.” 


풍수지리에서는 죽은 사람을 엎어서 장사를 지내면 발복發福이 빨라져 당대에 혜택을 볼 수 있다고 하나 봅니다. 현종이 그렇게 아버지를 엎어서 장사한 덕분에 당대 발복해 임금 자리에 올랐다는 결론이 됩니다. 


학촌 고자실마을 뒷산 고자치를 넘어가면 왕욱 묻혔던 자리가 나옵니다.


그런데 당시 정황을 잠깐 살펴보니 왕욱이 아들을 통해 그런 욕심을 낼 만도 했다 싶었습니다. 자기를 귀양 보낸 임금 6대 성종은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 앞 5대 임금 경종 또한 자식이 귀해서 겨우 자기가 죽기 한 해 전(980년)에야 아들(송訟, 나중에 7대 목종이 됨)을 하나 겨우 얻었습니다. 


사촌지간인 경종과 성종한테는 다른 사촌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와 헌정왕후 사이에서 난 아들 현종은 왕실 전체를 통틀어 왕위 계승 서열이 두 번째였던 것입니다. 


자기를 엎어 묻도록 한 것도 어쩌면 이와 같은 지극한 아들 사랑의 또다른 한 표현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물론 임금이 된다 해도 대단하고 귀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고생길이라 여길 수도 있습니다만.) 


현종 출생을 지금 천륜으로 보면?


9월 21일, 배방사가 있던 건점골짜기에서 고자치를 넘어 왕욱 귀양처였던 성황당산성까지 둘러봤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이 주최·주관하고 갱상도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진행하는 ‘2015 경남 스토리랩 이야기탐방대’ 첫 걸음을 사천으로 옮긴 것입니다. 


그런데 둘러보는 동안 과연 인륜人倫을 넘어선 천륜天倫의 귀결이라 해야 마땅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과연 그럴까 하는 미심쩍음도 같이 들었습니다. 


인륜은 사람이 정한 윤리이고 천륜은 하늘이 정한 윤리입니다. 그래서 부부관계는 인륜일 뿐 천륜이 아니어서 사람이 임의로 끊을 수도 있는 것이라 하고 부자관계는 인륜이 아닌 천륜이어서 사람의 힘으로는 끊을 수 없는 것이라 한다고 하지요. 


학촌 고자실 마을숲. 팽나무도 있고 고용나무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기준으로 보면 왕욱-현종의 부자관계는 처음부터 성립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지 않은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왕욱은 태조 왕건의 아들입니다. 어머니 헌정왕후는 태조 왕건의 손녀입니다.(아울러 왕욱한테는 바로 위에 형인 욱旭의 딸로 조카가 됩니다.) 


당시는 이런 근친혼이 예사(비록 두 사람이 정식 혼인으로 맺어진 사이는 아니지만)로 이뤄졌으나 이런 관계를 지금 기준으로 보면 바로 천륜을 어긴 짓으로 욕을 먹게 돼 있습니다. 


신분 따라 달라지는 부모자식 사이 천륜


더불어 이런 생각도 얼핏 들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정녕 천륜이라면 신분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말아야 할 텐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왕욱과 아들 현종은 서로가 서로를 아버지와 아들로 여겼고 세상도 그렇게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모자식관계도 있습니다. 양반 아버지와 종년 어머니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나면 아버지에게 그것은 아들도 딸도 아니고 종놈이거나 종년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심했다는데, 고려시대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성황당산성에서.


<홍길동전>에 나오는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하는” 사정은 괜히 억지로 지어낸 것이 아니었지요. 천출 자식은 아예 자식이 아니어서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자는 것도 달랐고 재산 상속은 아예 생각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천륜은? 아이들 천륜은?


이렇게 사람 신분에 달라지는 윤리인데 어떻게 부모-자식관계만 꼭 집어 하늘이 정한, 사람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천륜이라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분이 사라진 지금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천륜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 천륜이 어떻게 바뀔까요? 자식 버리는 부모 많아지고 부모 버리는 자식 넘쳐나는 세태여서 이미 천륜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런데 어떻게 시각을 달리해 보면, 지금 풍토가 자식은 부모한테 기대고(부모가 보살피고) 부모 또한 자식한테 기대는(자식이 보살피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다 보니까 오히려 이렇게 ‘버린다’는 표현이나 생각이 나오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이런 보살핌과 기대기가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면 부모자식이 서로 남남 같이 산다 해도 ‘버린다’는 표현은 못하겠지 싶습니다. 


한편으로 옛날에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 버리지 않고 보살피고 기대야 살아지는 세상이었다면 지금은 그렇게 하면(또는 해도) 살아지지 않는 세상이라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성황당산성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지금 저 들판은 옛적 바다였거나 갯벌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우리 아들딸한테는 어떤 천륜이 있을까요? 아들딸에 대한 우리의 천륜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우리 시대 천륜의 천변만화가 과연 어떻게 펼쳐질지 참 궁금해지는 탐방길이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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