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 작가/조현오의 구겨진 제복

18화. 경호실과 국정원에 대한 조현오의 자세

기록하는 사람 2015. 9. 3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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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화살》(후마니타스)의 작가 서형이 이번엔 조현오를 만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허위발언'으로 8개월 징역을 살고 나온 바로 그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다.


서형 작가는 사법피해자 취재를 전문으로 해왔다. 취재 중 조현오 전 청장의 다른 면에 대해 듣게 되었고, 그의 진면목을 취재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조현오'라는 이름 석자는 차명계좌 발언 하나만으로 많은 국민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 있는 사람. 이명박 정부의 경찰청장이었다는 것으로도 다른 쪽 진영에선 공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몇몇 매체에 연재를 타진해보았으나 모두 난감한 기색으로 거절했다. 그러나 블로그 '지역에서 본 세상'은 그런 세간의 시선에 개의치 않기로 했다. 글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오로지 독자의 몫이니까. 근거없는 비난이나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글만 아니라면 이 블로그는 글쓰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 [편집자 김주완]



[구겨진 제복]18화. 대통령 경호실과 국정원을 대한 조현오의 자세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경호는 어디서 하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대통령 경호실이 떠오른다. 그러나 경호 개념이 처음 나온 것은 1949년 내무부 훈령 제25조(경호 규정)다. 1945년 해방 이후 경호는 내무부 직속기관이었던 경찰 몫이었다. 청와대 경비와 대통령 경호 업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대통령 직속기관인 경호실을 만든다. 대통령 직속 경호실은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나라에나 있는 독특한 현상이다.


하지만 경호실은 미국도 우리와 비슷하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과연 미국이 한국 경호실과 닮은 경우일까? 미국 예를 살펴보자. 미국 대통령 경호는 미연방보안업무(United States Secret Service)가 맡는다. USSS는 원래 대통령 직속 조직이 아니었다. 19세기 남북전쟁 때 주마다 화폐가 달라 위조지폐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했다. 화폐 위조범을 잡는 연방경찰 필요성은 점점 높아졌다. USSS는 위조지폐를 단속하고자 1865년 재무부 산하에 만든 조직이다. 그리고 1901년 매킨리 대통령이 암살당하자 대통령 경호 업무를 맡게 된다.


USSS는 수사와 경호를 겸한다. 대통령이 바뀌면 이전에 경호팀은 수사로 돌아가고 다시 경호팀을 꾸리는 구조다. 경호 업무는 정권과 함께 순환한다. 클린턴을 경호했던 사람이 부시에게 고자질할 가능성을 굳이 남길 이유가 없다. 또 순환하지 않는 조직에는 기득권이 생긴다. 경호실장이 업무 영역을 넘어 권력 구조에서 정점이 될 수도 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차지철이 대표적인 경우다. 정권 2인자로 군림해 군과 경찰 인사에 개입하고 국회까지 친위세력을 심어 정권을 농단하다 비극을 불렀다.


최근 사례를 보자. 대통령 퇴임 후 거주할 사저를 사들이는 것은 대통령 비서실 업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때는 경호처장인 김인종이 사저 매입 업무를 도맡았다. 경호처장 힘이 정점을 찍었던 셈이다.


미국경호팀 현장근무요원은 45세 이상이 없다. 그런데 한국은 다른 방향으로 나갔다. 2000년 김대중 정권 시절 경호실법 개정으로 경호실 직원 정년이 보장된다. 그러자 내부적으로 인사적체와 고령화 문제가 불거졌다. 젊은 인재를 뽑으려면 조직 확대가 필요하다. 조직이 확대되려면 업무가 그만큼 늘어야 했다. 마침 기회가 왔다. 2006년 5월 20일 한나라당 대표인 박근혜가 선거 유세 중 피습을 당했다. 국회는 여야 없이 '중요 정치인'도 경호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대통령을 제외한 인사 경호는 경찰이 담당했다. 전국 지방청과 경찰서 인력을 활용하고, 경호 행사는 관할 서장이 책임지고, 서 단위를 넘는 경비는 지방청 경비과장이 지원한다. 경찰청 경호과장은 지방청과 경찰서 사이에서 조율과 협력을 맡는다.


그런데 대통령 경호실법을 고쳐서 대통경 경호실이 대통령선거 후보, 국무총리, 국가 주요 인사에 대한 경호를 맡도록 법안 개정 검토에 들어간 것이다.


 

관심은 대선 주자 경호 주체에 쏠렸다. 한나라당 의원인 김정훈이 발의한 '요인 경호법'에서 경호 주체는 경찰이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의원인 강성종은 '대통령 경호실법 개정안'으로 대통령 경호실 편을 들었다. 이러면 경찰과 경호실 관계는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관계가 되는 것이다. 외국에서 수상이 한국에 오면 경찰은 경호실을 뒷바라지하는 모양새였다. 경찰은 울화통이 터졌으나 경호실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경호실은 경찰청 경비국 인사에도 개입했다.


2006년 12월 4일 조현오가 경비국장으로 취임한다. 현재 경찰청 경비국은 경비과, 경호과, 항공과와 대테러 업무를 다루는 위기관리센터로 나뉜다. 그 중 경호실은 경호과장 인사에 개입하고자 했다. 조현오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는 이 상황을 경호실과 갈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인사 개입 자체가 부당한 것이었다. 조현오는 경호실, 검찰뿐 아니라 국가정보원과도 부딪혔다.


2010년 12월 평창동계올림픽유치단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대회 유치 신청서를 냈다. 신청서에는 행사 안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담겼다. 안전관리통제본부를 설치하고 안전대책위원회 위원장과 본부장은 국무총리와 경찰청장이 맡도록 했다. 보통 안전 문제는 경찰 조직이 컨트롤타워를 맡는 게 국제적인 관례였다. 테러가 발생하면 상황을 통제하고 폭발물을 처리하는 현장 조치는 기본적으로 경찰이 책임진다. 아울러 경비, 교통 관리, 화재 예방, 재난·재해 발생 시 구조·구급 활동까지 경찰 업무에 들어간다.


하지만 국정원은 '북한 위협'과 '테러 방지'를 앞세워 자기 조직이 총괄하겠다고 나섰다. 법적으로 대테러 업무를 맡는 기관은 국정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러에 예민한 미국도 중앙정보국(CIA)이 국제경기대회 안전을 총괄하지는 않는다. 조현오는 이렇게 반발했다.


"그런 식으로 경찰 지휘하려고 하지 말고 경찰을 내줄 테니 가져가라."


국정원이 '북한 위협'이나 '테러'에 별로 반응하지 않던 때도 있었다. 2007년 말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는 이명박, 민주당 후보는 정동영이었다. 북한은 방송으로 보수 꼴통 한나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여러 번 전했다. 북한은 오직 이명박만 공격했다. 그런데도 국정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북한은 이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에게 늘 이런 공격을 했다. 북한이 선거에 개입하려면 어떤 방법을 쓸까.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전쟁이 있겠지만 이는 군대가 맡을 영역이다. 폭발물 테러도 한 가지 방법이다. 이 방법에는 극소수 인원이 동원될 것이다. 조현오가 또 나섰다.


 

조현오는 대선 후보 경호인력을 늘렸고 경찰특공대도 투입했다. 또 선거 유세 장소 외곽 건물 옥상에는 저격수를 배치했다. 북한을 향한 위용 과시 목적으로 장갑차를 배치하기도 했다.


대통령 당선자는 이명박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경호실을 차관급인 경호처로 낮췄다. 2013년 들어선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 경호처장을 장관급인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승격했다.


2014년 제정한 '평창겨울올림픽 지원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은 안전 총괄자가 국정원장으로 돼 있다.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2015년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 2018년 평창겨울올림픽 안전 관리 주체는 국정원이다. 경찰은 국정원 지휘에 따라야 한다.


조직에서 권한과 자긍심은 비례한다. 조현오는 어릴 적부터 경찰을 동경했고, 잘 나가던 외무부 생활을 접고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경찰 구성원도 조현오만큼 경찰 조직원으로서 자긍심이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다. 경찰로 살기에는 여러 가지 환경이 열악했다. 조현오는 경찰청장이 되고 시간외 수당, 수사비 등을 정비해 제대로 된 환경을 갖춰주고자 했다.


성과를 외부에 선전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장자연 사건 수사는 경찰이 완벽하게 해냈고 쌍용차 진압 작전도 경찰이 변수 없이 잘했다고 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은 국민정서와 멀었다. 장자연 사건은 장자연 사망으로 경찰 수사 한계를 인정해야 했고 쌍용차 진압 작전도 경찰특공대에게 몽둥이세례를 당한 해고 노동자에게 유감을 표하며 고개 숙여야 했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면 거론자체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비판도 일었다.


공권력을 향한 국민정서는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문제다. 집회가 불법사태로 번지면 경찰은 진압할 수밖에 없다. 경찰 진압을 충돌이라고 하고 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영미법계에서는 없는 일이다. 영미법계는 공권력이 무척 센 편이며 법에 대한 도전을 일절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대륙법계는 상대적으로 공권력이 약하다. 그렇더라도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 시위는 강도가 약한 편이다. 2011년 유럽에서 시위 현장을 목격한 한 경찰은 프랑스 시위 강도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고 했다. 우리처럼 조직적이지는 않지만 경찰에게 돌을 던지거나 시위 현장에 총기가 등장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2005년 프랑스에서는 이민 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전국적으로 소요사태가 벌어졌다. 이때 시위자들은 자동차와 공공건물에 불을 지르고 경찰을 공격하기도 했다. 당시 내무부장관인 사르코지는 강경하게 대처했다. 진압 과정에서 최루탄을 발사했고 경찰 진압도 적극적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불거지는 경찰을 향한 비판 역시 우리와 비슷하다. 법 준수보다 부당한 공권력에 맞서는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경찰이 시민을 때리는 것보다 시민이 경찰을 때리는 게 훨씬 건강한 사회 아닌가요? 인권이 진전된 것이지요."


하지만 경찰을 지휘하는 조현오 생각은 달랐다. 그는 두 가지를 항상 강조했다. 공권력이 절대 밀리면 안 되고 경찰과 시민 모두 다쳐서도 안 된다고 말이다.


2007년 경비국장이던 조현오는 경비과장으로 장전배를 요청한다. 장전배는 조현오가 부산동부경찰서 형사과장으로 있을 때 같은 경찰서에서 경비과장을 했다. 일을 다부지게 잘했고 추진력이 좋았다. 장전배는 2010년 치안감 승진 명단에도 포함됐다.


조현오는 장전배에게 2008년부터 신형 진압복을 보급하도록 지시한다. 신형 진압복은 프랑스 경찰관 기동대 보호복을 참고했다. 두께가 4밀리미터인 플라스틱 보호대를 두꺼운 섬유로 옷처럼 이어 붙여서 가슴, 어깨, 팔, 무릎을 보호하도록 한 것이다. 가슴 보호대는 칼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견고했다.


그전까지 경찰이 입었던 것은 대나무 진압복이었다. 두꺼운 솜옷 사이에 대나무 조각을 넣어 만든 것이었다. 이 진압복을 입은 경찰은 모양새는 둘째 치고 쇠 파이프를 견딜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조현오도 경찰이 되고 이 대나무 진압복을 입었다.


1997년 5월 31일 한양대에서 한총련 사태가 벌어졌다. 출범식에 참가하려는 학생이 전날부터 전국에서 모였다. 경비를 담당할 경찰 중대(부대)도 전국에서 모였다. 전의경 중대 인원은 150명 정도였다. 각 중대는 경감이 통솔했고 3~4개 중대를 격대장이 맡았다. 조현오는 격대장이었다. 경찰은 한양대 주변에 전의경 53개 중대 6400여 명을 배치해 학생 출입을 차단했다. 학생들은 출입을 막는 경찰에게 화염병과 돌을 던지고 쇠 파이프를 휘둘렀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포위된 부대도 있었다. 조현오가 한양대 전철역에 고립된 부대를 구출하라고 지시했다. 조현오는 부대원들에게 이렇게 외치며 앞장섰다.


“나를 따르라!”


전철역사 사방에서 화염병과 돌이 날라 왔다. 목적지에 도착한 조현오가 뒤를 돌아보자 끝까지 따라온 이들이 없었다.



경찰서에 돌아온 조현오는 진압복을 하나씩 벗었다. 온몸이 멍투성이였다.


2005년 경찰청장인 허준영은 경찰 직원을 유럽에 보냈다. 프랑스 경찰관 기동대 보호복은 접한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보호복을 입고 맞았는데 전혀 아프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보호복은 ‘로보캅’ 그 자체였다.


(다음 19화 –장비개발. 덧붙임: 이 연재는 총 20화입니다. )


서형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블로그 4day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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