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 작가/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나흘간의 기억

동네 아저씨 성추행 고소했다 왜 번복했을까

기록하는 사람 2015. 9. 2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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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진 제복]의 서형 작가가 새로운 연재를 시작한다.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추적기다. 이 연재는 약간의 시차를 두고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실린다.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나흘간의 기억]제3화, 소통없는 공모


변호인은 부녀의 범행 공모과정에도 의문을 표했다. 대체 어떤 점에서 그럴까?


아버지 백경환(가명)씨는 창고 선반에서 청산가리 봉지를 꺼내 막걸리 봉지 옆에 가져다 놓고, 딸 백희정(가명)씨에게 "창고에 막걸리를 가져다 놓았다"고 했다. 백경환씨는 이 말이 "월요일(7월 6일) 새벽에 (청산가리를 막걸리에 타서) 화단 앞에 갖다 놓으라"는 의미였다고 했다.



아버지 말에 백희정씨는 창고에 와서 그냥 막걸리와 봉지를 바라만 봤다고 진술했다. "이게 청산가리인지 어떻게 알았어?"란 수사관 질문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라고 답했다.


백희정씨는 옥상에서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타고 나서, 사용했던 면장갑과 일회용 플라스틱 수저를 종량제 봉투에 버렸다고 했다. 백희정씨는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말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사건 당일 아침 아버지가 종량제 봉투를 인근 버스정류장에 갖다 놓았고, 쓰레기 수거 차량이 싣고 가버렸다고 했다.


변호인은 부녀의 공모 방법을 가리켜 '이심전심'이라고 표현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소통도 없는 두 사람이 서로 마음을 읽은 듯이 증거물을 은폐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급기야 변호인은 다음 대목에서 더욱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백희정씨는 7월 4일 저녁에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타고 나서, 채소 냉장고 칸에 보관했다. 막걸리를 시원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기상청 기록을 보면 2009년 7월 4일 순천은 29.8도를 기록했다.



하지만 정작 백희정씨가 창고에서 막걸리를 확인한 것은 7월 3일 저녁이었다. 공소장 내용에 따르면 막걸리를 이튿날 저녁까지 밀폐된 창고에 방치했다. 무더운 여름에 24시간 가까이 막걸리를 실온 보관했다는 얘기다. 냉장고에 넣기 전에 이미 막걸리가 상하지는 않았을까?


개가 짖지 않았다는 증언, 현장검증 두고 엇갈리는 의견


변호인은 백희정씨 자백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계속 꼬집었다. 사건 발생 당일, 새벽에 막내딸 백희정씨가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를 마당에 갖다 놓을 동안 어머니가 인기척 소리에 단 한 번도 깨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백희정씨 자백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건 당일인 2009년 7월 6일 백희정씨는 오전 2시 30분경에 방에서 일어났다. 거실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집 뒤편 풀숲으로 갔다. 그리고 현관문을 통해 다시 집 안 부엌으로 들어왔다.



다시 현관문을 열고 마당 앞에 막걸리를 내놓았다. 그리고 마을 주변 하천에 청산가리를 버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 새벽 백희정씨는 현관문을 총 4회 열었다. 백희정씨는 당시 엄마가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고 했다. 과연 엄마가 자는 동안 한 번도 깨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1심 재판부에서 현장검증에 나섰다. 재판장은 집 안으로 들어가 현관문을 열어봤다. 쇠문 소리가 어느 정도인지, 문을 열었을 때 바람은 얼마나 거실로 들어오는지도 확인했다. 그리고 백희정씨 방에서 말을 하면 다른 방에서는 얼마나 들리는지도 확인했다. 창고 문도 열고 닫았다. 재판부도 어머니가 깨지 않았다는 증언을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


당시 현장검증에서도 검찰과 변호인 의견이 갈렸다. 이를테면 범행 당일 개 짖는 소리. 사건 당일 새벽 개가 짖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이웃집 사람 진술이 있었다.



검찰은 집에 개 두 마리를 키우는데 새벽에 누군가 집에 들어갔다면 개가 짖었을 것이고, 연쇄적으로 다른 집 개들도 짖었을 것이라고 했다. 개가 짖지 않은 것을 외부로부터 '침입'이 없었다는 근거로 보았다.

      

반면 변호인은 검찰 주장대로라면 백희정씨가 집에서 50m 정도 떨어진 하천까지 가서 남은 청산가리를 버렸을 때 동네 개들이 짖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개가 짖지 않은 것을 증거물(청산가리) 은폐를 위한 '출입'이 없었다는 근거로 보았다.


부녀가 지능범이라는 공소장, 동네 주민은 "정신상태 정상 아니다"


계속해서 변호인과 검찰은 백희정씨 지능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인다. 


검찰은 공소장에 '피고인 백희정은 ... 범행에 사용할 목적으로 흰색 장갑을 구입하여 ... 그 후 피고인들은 나름대로 구체적인 범행방법을 모색하던 중 ... 청산염과 막걸리를 마련하여 준 다음 이를 이용하여...'라고 적었다. 이렇듯이 검찰은 부녀가 머리를 쓴 지능범이라고 주장한다.


존속살인에서 지능범죄 예는 2013년 8월 16일 발생한 인천 모자 살인사건을 들 수 있다. 차남 정씨는 재산을 노려 어머니와 형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뒤,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 수사과정에서 차남 정씨의 거짓말 탐지기 반응이 거짓으로 나오고, 여러 정황 증거들이 발견됐다. 하지만 정씨는 경찰이 사체를 찾지 못한다면 절대로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반해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공범인 부녀는 사건 발생을 만천하에 알렸다. 7월 6일 희망 근로현장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간신히 살아난 한 할머니는 "남정네와 딸이 어머니를 죽일 거면 저녁에 둘이 술을 주고받고 하면서 죽이면 될 텐데 왜 밖으로 갖고 오게 해서 이 피해를 주느냐?"며 의문을 표했다.


검찰은 항소이유서에서 이러한 의문점을 풀어냈다. 이들 부녀는 범행방법을 1차와 2차에 나누어 모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제1차 범행방법은 피해자 최OO이 냉장고에서 청산염이 든 막걸리를 꺼내 마시고 사망하는 것이고, 사망하지 아니하면 2009년 7월 6일 새벽에 마당에 마치 다른 사람이 막걸리를 가져다 놓은 것으로 위장하여 피해자 최OO으로 하여금 공공근로사업장에 가져가도록 하여 이를 마시게 한다는 것으로 판단.'


하지만 두 부녀의 검찰진술은 좀 다르다. 최씨가 공공근로 사업장에 막걸리를 가져가지 않았다면, 그 후 부녀에게는 분명 서로 다른 계획이 있었다.



백경환씨의 2차 계획은 숨진 최씨와 막걸리를 나눠 마시는 것, 백희정씨의 2차 계획은 공공근로 현장에서 최씨가 마시도록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막내딸 계획은 다른 무고한 사람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백희정씨는 "그래도 엄마를 없애는데, 이 방법이 최고"라고 말했다고 한다. 백희정씨는 왜 이게 최선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사건 당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분은 동네 사람들 말을 빌려서 막내딸 백희정씨의 정신상태가 정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을 내보냈다. 법정에 제출된 부녀의 정신감정 결과는 막내딸 아이큐는 74, 아버지 아이큐는 86이었다.


즉, 뭔가 치밀하게 '계획'을 하기에는 부녀 모두 부족한 상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일축했다. 막내딸이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전혀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리고 검찰은 기자회견에서 백희정씨가 머리를 써서 수사에 혼선을 주려 했다고 주장했다. 


수사가 한창 진행되던 당시 경찰은 의심 가는 사람이 없느냐고 계속해서 가족들에게 물었다. 죽은 최씨 여동생(백희정씨의 이모)은 언니가 죽기 전 "막내 딸 때문에 창피해서 못살겠다, 동네 누구하고..."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때 마침 백희정씨 언니가 이모에게 전화를 해 동네 아저씨가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이모에게 동네 아저씨에 대해 동생에게 한 번 물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백희정씨가 이모를 더 잘 따랐기 때문이다. 이모는 백희정씨에게 이를 물어봤고, 백희정씨는 동네 아저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를 고소했다. 


하지만 백희정씨는 검찰 조사에서 성추행은 없었다고 번복했다. 그리고 자신이 범인임을 자백했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동네 아저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했다는 것이다.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지능범이라고 하기엔 너무 쉽게 증언을 뒤집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쪽으로 말이다.



이렇게 해서 백희정씨의 혐의는 '존속살인'에 '무고'죄가 하나 더 추가됐고, 백희정씨 언니들은 '무고교사'로 기소가 됐다. 물론 이 무고교사 사건을 수사한 검사도 살인사건 담당 검사와 같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 기록을 검토했던 한 변호사는 검사 태도가 이율배반적이라고 했다.


"검찰 입장에서는 백희정씨가 동네 아저씨를 왜 고소하게 됐는지, 그게 필요해요. 자기 범행을 무마하기 위해서 고소를 했다는 취지에요. 그런데 이 살인은 우발적인 게 아니라 머리를 쓴 계획적 범행이거든요. 그렇다면 도움을 받을 필요가 전혀 없어요. 백희정 자신은 전혀 생각을 못했는데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서 언니들이 백희정씨를 교사했다는 말이잖아요."


이제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가장 핵심쟁점으로 들어가 보자. 모든 살인사건에는 동기란 게 있다. 부녀가 살인을 저지른 동기, 부녀 성관계를 살펴볼 차례다.


(제4화 '살인 동기' 편으로 이어집니다)


서형작가  연락처 seohyung224@gmail.com  /블로그 4day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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