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사람이야기

대출해주고 못 받아도 된다는 은행 지점장

기록하는 사람 2015. 7. 13. 08:49
반응형

박종권. 한국나이로 올해 64세라고 하니 1952년생 용띠일 것이다. 근 10년 전 54세에 기업은행 마산지점장 자리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나왔다. 그 후 경실련과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운동을 열심히 해왔고, 얼마 전까지 마창진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런 그를 경남블로그공동체(경남블공)가 초청해 '은퇴 후 재미있게 사는 법'이란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6월 25일 경남도민일보 3층 강당이었다. 1시간정도 강당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통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간담회를 계속했다.


박종권 씨의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그는 아주 솔직하고 소탈하고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었다. 여러 이야기 중에서 은행 지점장으로서 대출에 대한 그의 소신이 우선 인상적이었다. 그는 '열심히 사업하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게 은행의 역할'이며 '빌려간 사람이 그 돈을 빼돌리지 않고 열심히 사업하는 데 썼다면 못 갚는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과연 이런 소신을 갖고 있는 은행가나 지점장이 있을까? 그의 육성을 그대로 들어보자.


박종권 전 기업은행 마산지점장. @김주완


"제가 (은행에서) 명퇴하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건데, 제가 IMF때 지점장을 했습니다. 저는 지점장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르게 했습니다. 은행이란 것은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곳이고, 그 사람이 열심히 사업해가지고 갚으면 되고, 열심히 사업했는데 못 갚는 상황이 되어도 그 사람 잘못은 아니다, 저는 그런 주의에요. 그 사람이 열심히 갚으려고 노력했는데 부도가 났다? 은행 돈을 가져가서 했단 말이죠?"


"그러면 그 돈이 어디 갔느냐? 외국으로 도망가지 않았다면, 빼돌리지 않고 잘 썼다면 그건 괜찮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다 돌아갔으니까요. 그죠? 그 돈 가지고 월급도 주고 했을 거잖아요."


"그가 나쁜 마음으로 사기를 치기 위해서 돈을 빌려서 떼먹었다면 이건 막아야죠. 그래서 저는 건전하게 사업하는 사람은 무조건 대출해줘야 한다는 생각이고, 담보도 필요없어요. 담보를 잡고 대출해주면 그건 전당포지요. 저는 그런 생각을 해가지고 천만 원, 이천만 원 빌려달라고 하면 딱 보고 사업을 열심히 한다면 다 빌려줬어요."


-그게 조직에서 용납되나요?


"그래서 제가 소액대출을 많이 해줬는데 그냥 신용으로 해준 것도 있고요. 신용보증기금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걸 내가(지점장이) 보증서를 끊어서 해준 것도 있습니다. 보통 지점장들 그걸 잘 안 해줘요. 왜 안 해주냐? 그렇게 해서 만약 잘못 되면 내가 변상을 해야 하니까. 그러나 핸들링만 잘하면 되니까 조건만 갖추면 다 해줬습니다. 그것도 안 되는 사람은 신용대출해줬어요."


"그때 신용대출 상담을 밤 12시까지 받는다고 은행 게시판에 붙였어요. 그때만 해도 은행대출을 신용으로 받는다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전화도 잘 못해요. 조그만 사업하는 사람들이. 밤에 전화로 상담해준다니까, 눈에 안 보이니까 뭐 막 전화 오잖아요. 딱 전화상담 해보면 알거든요. 핸드폰으로 전화 착신을 해놓는 거라."



"그리고 마산지점장 할 때는 신문에 광고를 내가지고 신용대출 원하는 사람은 다 은행으로 오라. 날짜를 사흘간인가 정해가지고 상담 박람회를 했습니다. 그렇게 대출을 엄청 많이 해줬어요. 그렇게 소액대출을 많이 하다 보니까 이게 연체가 좀 생기잖아요. IMF때였으니 더욱 더. 그래서 나 덕분에 엄청 크게 된 사람도 있지만, 소액대출을 못 갚은 사람이 많아 가지고, 은행에서 통계를 낸 거라. 대출을 많이 해줘서 연체가 생긴 거랑 대출을 안해줘가지고 연체가 없는 걸 비교해야 하는데 그냥 단순비교를 해가지고 내가 연체지수가 높은 지점장에 속했어요. 그래가지고 어느날 지점장 교육을 받으라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왜 교육을 받느냐고 물었더니 통계를 보여주면서 '네가 연체비율이 높다'고 해요. 그때 내 연체비율이 3쩜 몇 프로 되었어요. 평균이 2프로 정도 되었는데. 그런데 연체비율이 10프로나 20프로라면 높다고 하지만 그 정도라면 별거 아녜요. 사실 돈으로 따져보면. 그래서 내가 화가 나가지고 "나 명퇴한다. 이런 은행이 다니기 싫다." 명퇴하고 확 나와버렸어요. 그래서 내가 일찍 좀 나왔어요."


-그걸 결과적으로 후회하시나요?


"절대 후회 안 하죠."


-그게 언제였습니다.


"딱 10년 전입니다."


경남블공 간담회 뒤풀이. @김주완


한편 이날 간담회는 경남블공 회원이 아닌 사람에게도 오픈했는데, 참가비로 2만 원씩을 받았다. 모두 17명이 참석했는데, 17명 모두 뒤풀이에도 함께 했다. 참가비보다 술값이 좀 많이 나와 초과된 9만 원을 블로거 선비(홍성운) 님이 계산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