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논에 황새보다 아이들 돌아온 게 더 기뻤다"

김훤주 2015. 6. 11.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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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넘는 동안 한결같은 노력으로 절멸했던 황새를 되살려낸 도시가 일본 도요오카시입니다. 도요오카시의 나카가이 무네하루 시장이 5월 20~22일 2박3일 일정으로 경남을 찾았습니다. 


'생물다양성 보전을 통한 생태관광 활성화 사례와 지역 차원의 적용을 위한 포럼' 등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이 생물다양성의 날을 맞아 마련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1일 오전 10시30분 경남도청 옆 '디자인 이노' 사무실에서 만나 재일동포 3세인 김황 동화작가의 통역으로 1시간 남짓 얘기를 나눴습니다. 


오른쪽부터 김황 작가, 나카가이 시장, 저, 그리고 도요오카시 시장 수행원.

뒤편에 서 있는 사람은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 이찬우 사업지원팀장.


- 경남도민일보 독자를 위해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1991년 효고현(도요오카시가 소속돼 있는 광역자치단체) 현위원이 됐습니다. 줄곧 황새를 보호하자고 말해 왔습니다. 1989년 30년 만에(1959년에 마지막 번식이 있었음) 도요오카 사육장에서 황새가 태어났을 때 잘 키워 하늘로 돌려보내자, 친구들과 성공시키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일본서는 1971년 마지막 황새가 죽어 야생에서는 멸종된 상태였습니다. 최대 원인은 환경 파괴였고 '최후의 일격'은 농약이었습니다. 


당시 다시 황새를 돌려보내자고들 말은 했으나 실현을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황새'도' 살 수 있는 풍요한 자연이 어디에도 없었고, '농약 안쓰는 농사는 있을 수 없다'고 다들 말했습니다. 


웃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김구연 선배 사진.


그렇지만 반대로 보면 황새는 풍요한 자연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황새'도'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자>를 표어로 내걸었습니다. 


"황새도"에서 '도(も)'는 정치가로서 저의 최대 발명이라 생각합니다. 인간만이 아니라, 황새만이 아니라, 황새'도', 인간'도', 다른 생물'도', 다함께 살 수 있는 마을……. 이 '도'는 사람과 황새와 다른 생명이 더불어 살 수 있다는 마음의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지금 70마리 넘는 황새가 야외에서 날아다닙니다. 한국까지 날아간 황새도 나타났습니다. 화포천 봉하마을 김해시까지 날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아주 놀랐습니다. 제주도에서도 제동이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풍요한 자연의 상징을 만들자는 사람들이 있어서 연대가 깊어지고 있습니다. 현위원 때는 별명이 황새위원이었고 시장이 된 2001년부터 15년 동안은 황새시장이 됐습니다. 하하." 


김해 봉하마을 전깃줄에 앉아 있는 봉순이. 이찬우 박사 사진.


도요오카에서 김해까지 날아간 황새는 봉순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2012년 4월 6일 도요오카 한 인공둥지에서 태어난 암컷 황새는 2014년 3월 18일 대한해협을 건너 김해 봉하마을에 내려앉았습니다. 


하동 들판과 충남 서산 천수만 일대에 머물렀고 올해 3월 9일 봉하마을로 돌아오더니 얼마 뒤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대한해협을 오간 최초 일본 황새인 것입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날아든 두 번째 황새 제동이는 올해 2월 8일 제주도에서 발견됐습니다. 2014년 6월 사육장에서 야생으로 풀려난 수컷으로 봉순이한테 조카뻘이 된다고 합니다. 


- 21일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포럼에서는 직접 기조발제(도요오카시의 황새복원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하셨습니다. 이번 경남 방문 목적을 말씀하신다면? 


"자연 재생과 자연 보호를 위한 의견 교환이 으뜸 목적입니다. 둘째는 도요오카시에서 태어난 봉순이가 아주 좋아했던 장소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봉순이가 김해에서 오래 머물렀던 장소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향으로 돌아와 습지 재생을 하고 유기농을 하기 시작한 곳이라는 점입니다. 생전에 도요오카시를 방문하고 싶으니 준비하라고 비서진에게 시켰던 노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도요오카에서는 사람들이 친환경농업으로도 충분히 벌이를 하면서 살고 있다는데 직접 확인하고 싶다, 그렇게 얘기하셨다고 합니다. 갑자기 서거하셔서 아쉽게 됐는데, 이런 사연을 알 리도 없는 황새가 바로 거기를 찾고 노 전 대통령 고향에 갔다니 매우 신기하고 믿기지 않는 심정인 것입니다. 


지난해 봉순이가 날아와 앉은 장소를 봤더니 도요오카랑 아주 닮았습니다. '황새(봉순이)를 통해 우리와 한국이 이어지고 있구나' 하고 새삼 느껴졌습니다." 


- 경남 사람들한테는 도요오카시가 낯선 도시입니다. 자랑을 겸해 도요오카시를 소개하자면? 


"인구 8만 6000명이 살고 바다와 닿아 있으며 황새가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도시이고 마을입니다. 


노트북컴퓨터 모니터로 논에 내려앉은 황새를 보여주는 나카가이 무네하루 시장.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노사키온천이 있으며 전통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오래된 마을 '이즈시'도 있습니다. 다지마규(但馬牛)라는 유명한 소고기와 바다에서 나는 유명한 대게도 먹을 수 있습니다. 


간사이공항이 있는 오사카나 도쿄에서 2시간 반이면 올 수 있습니다. 멀지 않습니다. 자연뿐 아니라 역사·문화·전통을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도시입니다. 


세계 여행을 안내하는 '론리 플래닛(http://www.lonelyplanet.com )'에서도 평가받는 기노사키온천은 일본서도 '베스트'로 꼽힙니다. 기노사키도 1925년 지진재해로 무너져서 복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효고현에는 (그렇게 파괴된 데가 도요오카 말고) 고베도 있고 한데요, 서양식으로 재건하면 어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기노사키 사람들은 일본 전통 방식대로 나무로 새로 집을 짓겠다 해서 지금 모습을 잃지 않고 갖추게 됐습니다. 


전통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면서 잃어버렸을 때 헤매는 일 없이 바로 되찾도록 한 결과입니다. 


이즈시도 에도시대(1603~1867) 분위기가 그대로지만, 실은 1876년 큰 불이 나서 3분의 2가 없어졌었더랬습니다. 그때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고 원래 있었던 것을 복구하는 방향에서 재건했습니다. 


그리고, 황새도 한 번 멸종했으나 도요오카시는 그 또한 살려냈습니다. 이 세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마을(도시)에 중요한 것이 없어졌을 때 고민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그것을 바로 되찾았다는 것입니다. 


현재 있는 것은 과거 조상들이 만들어 대대로 이어온 것이기에 미래 세대에 그대로 넘겨야 하겠다는 얘기입니다. 도쿄 도심처럼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쓰면서 새롭게 가다듬는 도요오카 스타일입니다. 


봉순이가 태어난 인공둥지. 도요오카시 이즈시초(町) 들판에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온 세계가 글로벌화로 말미암아 똑같은 얼굴 표정으로 되고 있습니다. 글로벌화는 세계 공통 기준으로 나가면서 로컬화를 없애치우고 있습니다. 문화적으로는 아주 재미없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똑같아지면 파리도 한국도 (따로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도요오카는 진정한 도요오카의 얼굴로 단장하려고 합니다. 갈수록 글로벌화되는 세상에 대한, 아주 중요한 전략입니다." 


- 도요오카시는 1950년대부터 지금껏 흔들림없이 황새 복원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런 놀라운 일관성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합니다. 


"어려운 질문인데요,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생명에 대한 공감'이 아닐까요……. 같은 생명인 황새를, 같은 생명인 인간이 멸종시켰습니다. 황새를 되살려 자연으로 돌려보내자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런 마음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이렇게 퍼져나가서 이뤄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도요오카시 들판에서 볼 수 있는 황새. 이찬우 박사 사진.


황새 복원 당사자가 아닌, 제3자 대학교수 몇몇이 도요오카시의 황새 야생 복귀 프로젝트를 분석·평가한 자료가 있습니다.(2014년 7월 발표) 거기서도 첫 번째 이유가 생명에 대한 공감이었습니다. 


2005년 황새를 야생에 풀어놓았을 때와 2007년 야생에서 처음 새끼가 태어났을 때 보도매체들은 물론 시민들도 날마다 현장에 나와서 함께했습니다. 


어미는 매우 야위어서 죽을 듯하면서도 새끼를 위해 먹이를 물어왔습니다. 날씨가 더워지면 어미는 날개를 펴서 (자기는 햇살을 그대로 맞으면서도) 새끼한테만큼은 그늘을 만들어줬습니다. 이렇게 새끼가 독립할 때까지 두 달을 보살폈습니다. 


이런 모습을 많은 시민들이 생생하게 들여보면서 어머니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를 오버랩했던 것은 아닐까요? 이런 것들이 바로 '생명에 대한 공감'이다 싶습니다. 


아이들이 논에서 모내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황새가 돌아온 것도 좋았지만 아이들이 돌아왔다는 것이 더 기뻤습니다. 


(아이들이 논에서 모내기하고 가을걷이하는 사진을 보여주며) 황새농법(친환경으로 벼를 기르면 보통은 논에 생물 가짓수가 주는데, 황새농법은 오히려 늘며 겨울에도 논에 생물이 산다고 한다)이 퍼져나가고 있음을 어른들한테 듣고 배웠습니다. 황새농법이 퍼질수록 자연환경이 좋아진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가을걷이하는 아이들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황새농법을 확산할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간단한 결론, 황새농법으로 생산한 황새쌀 소비를 늘리면 좋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아이들은 학교 앞 가게(사진에서는 '미니스탑' 체인점)를 찾아가 주인한테 얘기했습니다. '여기서 파는 주먹밥을 황새쌀로 만들면 우리 환경이 좋아집니다.' 그러나 체인점 주인은 권한도 없고 황새쌀은 비싸고 해서 실현되지는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미니스탑 체인점을 찾아가 피케팅을 하는 모습이 모니터에 담겨 있습니다.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학교급식에 황새쌀을 쓰면 어떨까, 누구한테 부탁하면 좋을까, 토론을 했습니다. 얻어진 결론은 시장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도요오카시청으로 아이들이 시장을 만나러 왔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습니다. 아이들 행동이 현실 사태를 바꿔낸 것입니다. 막연하게 생각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발자국을 내딛는 용기, 이런 것을 아이들이 가르쳐줬습니다. 


황새쌀 학교급식을 지난해까지는 매주 두 차례 하다가 올해는 세 차례로 늘렸다고 합니다. 일반쌀과 황새쌀 차액은 전국 각지 여러 사람이 보내온 기부금으로 보전한다고 했습니다.


생각과 행동 사이에는 홈이랄까 벽이랄까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손쉽게 그것을 넘어섭니다. 이런 아이들이 도요오카시의 자랑이고 긍지입니다. 황새가 이런 똑똑한 이이들을 키워냈습니다." 


- 경남에는 도요오카시와 비슷하게 따오기 복원사업을 하는 창녕군이 있습니다. 앞서 실천하고 경험한 자치단체장으로서 도움말을 주신다면? 


"(조심스러운 기색을 보이며) 자칫 잘못하면 따오기를 좋아하는 사람만으로, 환경을 지키자는 사람만으로 한정될 수 있습니다. 


따오기를 자연 야생에 되살리면 사람한테도 득이 됩니다.(도요오카 황새쌀은 일반쌀보다 30% 넘게 비싸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입니다.) 이를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도록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발짝 한 발짝 욕심내지 말고 착실하게 착실하게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루빨리 성과를 내고 싶다, 이렇게 초조해하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도요오카에서 민과 관이 합동으로 재생해낸 다이습지.


- 자연과 인간의 공생과 자연생태 복원을 위한 한일 교류 협력에 대한 의견은 어떠신지요? 


"일본과 한국이 서로 잘 아는 것에서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포럼에 와서 많이 알고 돌아갑니다. 한국사람도 그렇게 많이 알고 활동하고 공유하고 자극을 받으면서 계속 나가면 될 것 같습니다. 


황새는 국경이 없습니다. 한국이고 일본이고 가리지 않고 자연환경이 좋은 데에 내려앉습니다. 국경이 없는 황새처럼 한국과 일본 사람들도 서로 자연환경이 좋아지도록 나라를 만들어나가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교류는 특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 등에서 아이들 교류를 기획하고 있는데 상당히 기대됩니다. 이번 포럼에는 도요오카 애들이 (한국 경남에) 왔고요. 


자연이라는 공통 테마를 갖고 같이 나가는 것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고 한일 교류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도요오카는 황새를 통한 생태관광 활성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전망은 어떤지, 한국 또는 경남 사람들에 대한 부탁이 있다면? 


일본 황새가 절멸한 상태에서 중국에서 황새가 날아와 앉았던 도시마습지. 그날이 8월 5일이어서 그 황새는 하치고로우(八五郞)가 별명이 됐는데 여기 습지도 그래서 하치고로우습지라 하기도 합니다.


"자연만이 아니라 전통·문화·역사를 함께 나누고 그런 가운데 자연생태를 한국과 일본이 상의하며 만들어나가면 좋겠습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기억일 텐데, 누구랑 만나고 어떤 얘기를 했느냐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교류가 여행에서 큰 목적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끼리, 농부는 농부들끼리 주민은 지역주민들끼리 아이는 아이들끼리 교류가 지금 단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시마습지 인공둥지에 황새가 한 마리 앉아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도요오카 시장 일행은 다음 일정을 위해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자치단체장한테서도 이처럼 생태와 역사와 문화에 대해 나름 생각을 갖추고 하는 얘기를 들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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