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세월호 엄마, "해병대 참사 남일로 여겼더니"

김훤주 2015. 4. 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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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기로, 우리 큰형은 나이 스물 되는 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막내인 제가 대여섯 살 때 일어난 일이라 제 기억 속에서는 큰형이 어디에도 없을 정도입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큰형 세상 떠난 지 10년 20년 30년 40년이 됐을 때도 큰형 생각하면서 눈물지었고 때로는 눈가가 짓무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다시 봤습니다. 2015년 4월 15일 오전, 경남도민일보 강당에서였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숨을 거둔, 경기도 안산 단원고 박성호 학생의 어머니 정혜숙씨였습니다. 속으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정혜숙씨는 그러나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한겨레> ‘잊지 않겠습니다’ 연재를 찾아봤습니다. 2014년 6월 24일치 1면에 나와 있더군요. “‘사제’ 꿈꿨던 박성호군”.

 

 

“화가 나면 글을 쓰며 마음을 가라앉혔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따뜻한 아이였다고 엄마는 기억했다.” “침몰 사고 7일만인 4월 23일 가족 품에 안긴 성호는 사흘 뒤 안산 선부동성당에서 그토록 입고 싶던 사제복 대신 수의를 입고 잠들었다.”

 

엄마는 기사에서 이렇게도 얘기했습니다. “그 짧은 삶, 고작 고것 살고 살 걸…. 정작 ‘사랑한다’ 말해주었어야 했는데, 왜 그리 그 말에 인색했는지 후회만 남는구나. 걱정쟁이 엄마는 치마폭에 너를 꼭꼭 싸고 다칠라 걱정하며 뭔 보호를 하겠다고 네게 짐을 지웠웠는지….”

 

 

엄마는 아마도 짐짓 겉으로는 엄한 듯이 하면서 마음으로는 많이 보살피고 했는가 봅니다. 이런 엄마 정혜숙씨가 이날 강연에서 3년 전 중학교 3학년 시절 아들 성호가 정부가 벌이는 4대강 사업을 두고 한 말을 일러줬습니다.

 

“아들은 ‘우리 강과 물이 썩어가는데, 어떻게 그냥 두고 볼 수 있나. 저것이 돌고돌아 다시 우리한테 돌아올 텐데, 가만히 있어도 해결이 되나.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당시 아이가 열 번 말하면 한 번 정도 나갔습니다. 일상이 너무 바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내 아이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참 성숙한 아이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살이 인과관계를 폭넓게 짚을 줄 아는 소견이 일찌감치 생기기는 어려운 노릇이거든요. 그런데 이 말보다는 이어지는 정혜숙씨 얘기가 정말 제 가슴을 때렸습니다.

 

“세월호 참사 한 해 전 2013년 7월 충남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공주사대 아이들이 훈련 받다가 물에 빠져 죽은 사건 있잖아요. 그 며칠 전에 성호가 같은 장소 같은 훈련을 받고 왔거든요. 보도를 보면서 아들이 ‘아, 죽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저기 선생님들 참 나쁜 사람들이에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때 아들이 너무 곱게 자라고 힘든 줄 모르고 커서 저렇게 말하는구나 했지 정말 그게 잘못됐고 또 위험한 일이구나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국민을 위한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 경남도민일보 강당 정혜선씨 강연 모습.

 

 

그리고 또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일어나기 두 달 전 2014년 2월 17일 경주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이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부산외대 신입생을 비롯해 10명이 죽고 205명이 크고작게 다치는 손해를 입었습니다.

 

성호 누나는(저는 그렇게 들었습니다) 부산외대 신입생들과 마찬가지로 대학 신입생이었는데 이 때문에 무슨 리조트 같은 데 가지 않고 캠퍼스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했습니다.(그냥 그랬을 뿐 안전 문제나 경주 참사 해결을 위한 행동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바로 세월호로 이어졌습니다. 우리 아들 박성호한테로 이어졌습니다. 태인사설해병대캠프참사가 터지고 경주마우나리조트참사가 벌어졌을 때 우리가 좀더 신경을 쓰고 함께 대처하지 않은 잘못이 세월호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그 때 함께했더라면 어땠을까요?”

 

물론 안전 문제를 이렇게만 이야기할 수는 없는 측면도 없지는 않겠지만, 저로서는 참 옳게 여겨지는 말씀이었습니다. 호미질로도 막을 수 있는 앞선 사고 하나하나를 허투루 여기고 넘기다 보니 뒤에는 정말 가래질로도 막지 못할 커다란 사고가 터진 것이 바로 세월호 참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제 생각에 적어도 하나만은 분명합니다. 성호 엄마가, 사설해병대참사를 보면서 보인 반응만큼은 절대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내 아들은 이미 지나갔다고, 내 딸은 저런 일 안 당한다고, 눈앞에 벌어져 있는 이 참사를 남의 일로 밀어버리거나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기는커녕 오히려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 또 일어날 것입니다. 이번 세월호와 성격이 같은 참사가 포장만 달리해서 더 큰 규모로 우리를 덮쳐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참사의 역사가 일러주는 바가 바로 그렇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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