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지역 촛불은 '작은 이명박'으로 향해야 합니다

기록하는 사람 2008. 7. 8.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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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 넘게 지치지도 않고 계속돼온 촛불항쟁에 경이로움을 느끼면서도, 마음 한 편에 씁쓸한 게 있다. 서울 사람들이 '지방'이라 일컫는, 정확히 말해 '서울 외 지역'의 역할이 거의 사라져버린 데 대한 안타까움이다.

무시당하고 있는 지역 촛불집회

사실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항쟁은 대개 서울보다는 '지역'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동학농민혁명은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됐고, 전봉준도 거기서 나왔다. 3·1운동이라 부르는 '기미독립항쟁'도 서울에서 33인이 싱겁게 투항해버렸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불처럼 일어나 일제의 총칼에 맞섰다. 유관순 열사의 거사가 있었던 곳도 충남 천안 아우내장터였다.

해방 후에도 제주4·3, 여순사건, 마산3·15에서 이어진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광주민중항쟁 등이 모두 지역에서 일어났다. 87년 6월항쟁도 서울이 중심이긴 했으나, 6월 16일 명동성당 농성 해제로 소강국면에 들어간 시위에 다시 불을 지른 것은 진주와 마산, 부산의 격렬한 시위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진주 경상대생의 격렬한 시위를 전하고 있는 1987년 6월 18일자 조선일보.

그러나 이번 2008 촛불항쟁은 이상할 정도도 '서울 중심성'이 확고히 유지되고 있다. 조중동은 물론 한겨레·경향신문에서도 지역의 촛불집회는 거의 취급받지 못한다. 방송도 마찬가지고 인터넷신문도 그렇다. 몇 몇 블로거와 시민기자들이 간혹 지역소식을 전해주고 있는 게 고작이다. 경찰도 다 서울로 차출돼서 그런지 지역에는 신경도 안쓴다. 지역 촛불집회는 교통경찰관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행진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진정한 경찰의 역할'이라며 칭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속내를 알고 보면 사실은 경찰로부터도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내가 지역에 살다 보니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봤다. '촛불집회가 서울로 집중되는 6가지 이유'(
http://2kim.idomin.com/268)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거기서 나는 △촛불집회가 애초 '거리'와 '공간'의 개념이 없는 인터넷에서 촉발됐고, △서울시청 광장과 청계천, 청와대가 바라보이는 세종로라는 장소의 상징성 △도로와 교통 수단의 발달로 두세 시간만으로 서울 집회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생각해본 바 있다.

그러면서 "지역의 촛불집회가 서울을 앞서는, 또는 서울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시위문화라든지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이유의 하나로 들었다. '서울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시위문화와 흐름'이라면 어떻게 있을까. 그게 오늘 이 글의 관심사다.

'과격시위'가 아니라 '지역콘텐츠'를 찾자

21년 전 6월항쟁 때 경남의 역할은 '서울과 차별되는 과격시위'였다. 6월 17일 진주의 대학생 3000여 명은 철로를 점거하거나 고속도로를 막고 LPG가스 수송트럭 2대를 탈취했다. 학생들은 트럭 위에 올라 런닝셔츠를 벗어 횃불을 만들었다. LPG차량이 폭발하면 반경 4km 이내가 쑥대밭이 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들은 "죽자, 죽자"를 외치며 트럭을 몰아 시내로 행진했다. 이들의 시위는 큰 충격을 줬고, 다음날인 18일 전국 언론은 이 시위를 1면과 사회면에 대서특필했다.

지금도 그 때처럼 이런 충격적인 시위방식을 찾자는 말이 아니다. 이미 이번 촛불집회에선 '비폭력'이 큰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방식이 문제가 아니다. 이젠 시위도 '콘텐츠'의 문제다. 지역의 촛불집회에는 '지역의 내용'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지역에도 촛불이 향해야 할 일들은 부지기수로 널려있다. 김태호 경남도지사가 '작은 이명박'이라는 것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재선한 직후 엄연히 임기가 남아 있는 경남FC와 경남발전연구원 등 경남도 출자·출연기관장들의 사표를 종용했다. 그리곤 이사회의 선출권을 무시하고 자신의 측근을 임명하는 등 월권과 인사전횡을 일삼았다.

대통령선거가 끝나자 김태호 지사는 다시 경남FC 대표이사를 자르고 이명박 당선자의 언론특보를 지낸 김영만 전 스포츠서울 발행인을 대표이사에 앉혔다. 최근에는 이강두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자 자신의 선거참모였으며 동향 후배인 안상근씨를 정무부지사로 임명했다. 그것도 기존 부지사가 전격 사의를 표명하자마자 호주로 해외출장을 가는 공항에서 전화로 내정사실을 공표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각종 정부투자기관이나 국영기업에 대표, KBS 사장과 이사들의 사퇴압력을 넣었거나 넣고 있는 것과 판박이처럼 똑같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행렬 맨 앞의 네 명은 경찰관이다. 경남의 촛불행렬은 이렇게 경찰이 에스코트 해준다. 그러나 어쩌면 경찰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김주완


김태호 지사는 또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경부운하의 전도사가 되겠다" "경남에서 먼저 대운하를 시범건설하고 싶다" "경남 단독으로라도 운하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외치고 다녔다. 3·15의거 48주년을 맞아 희생자를 추모하는 자리에서는 뜬금없이 "이명박 정부의 선진화에 동참하자"고 외치기도 했다.

대운하가 국민의 반대에 부딪혀 정부에서도 포기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워터웨이'로 고쳐부르며 계속 추진의지를 밝혔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이 반대하면 대운하를 포기하겠다"고 밝힌 지금도 '대운하 TF팀'을 해체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그야말로 '이명박 대통령의 충직한 돌쇠'다.

그는 또 이명박 정부의 '예산 10% 절감'을 따라하면서 노인과 장애인·여성 결혼이민자·여성농업인 등에 대한 사회복지분야 국고보조금 68억 원을 깍아버렸다.

그가 '작은 이명박'이라는 근거는 이 외에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럼에도 경남의 촛불집회 현장에선 단 한 번도 김태호 지사의 이런 문제가 나오지 않았고, 행진도 경남도청으로 향한 적이 없다. 서울에서 KBS 앞 촛불집회가 열린다니까 창원에서도 KBS로 행진하는 정도다.

서울과 동떨어진 요구를 하자는 게 아니다

김태호의 '이명박 따라하기'처럼, 지역의 촛불집회도 '광화문 따라하기'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역콘텐츠'가 없는 것이다. 서울과 동떨어진 요구를 만들어내자는 게 아니다. 전국적 요구와 궤를 같이하면서 지역의 문제를 결합시켜보자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명박-김태호 선거공신 김영만과 안상근.

도민의 성금과 세금으로 설립된 경남FC 사장 자리를 이명박 대통령 선거공신 논공행상용으로  내주고, 대통령도 포기하겠다는 운하사업을 밀어부치며, 사회복지 예산까지 싹둑 잘라버린 '작은 이명박'에게 경남의 촛불이 향하면 어떨까? 그에게 측근·정실인사 철회를 촉구하고, 낙동강 운하 포기와 TF팀 해체를 요구하며, 복지예산 부활을 요구할 순 없을까?

뿐만 아니다. 노무현 정권 땐 신항 명칭을 부산에 빼앗길 수 없다며 엄동설한에 5만 명을 동원한 관제데모를 열어 참여정부 화형식까지 벌이던 그가,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갑자기 해양경찰청 김해 이전이 무산된 데 대해선 찍 소리 않고 있는지도 따져물어야 한다.

또 '준혁신도시' 운운하며 세상천지를 시끄럽게 만들던 그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진주 혁신도시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는데도 왜 가만히 있는지도 따져야 한다. 한쪽에선 환경올림픽 람사르총회를 준비하면서 다른 한 쪽에선 틈만 있으면 연안을 매립하고 공해공장을 세우며 골프장 허가를 남발하고 있는 것도 문제삼아야 한다.

그의 인사 전횡을 이슈화시키면 경남도내 공무원노조가 촛불에 결합할 것이며, '운하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는 데 대한 책임을 물으면 환경운동가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또 혁신도시를 문제삼으면 진주와 서부경남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해양경찰청 문제를 따지면 김해시민들도 나올 것이다. 바다매립과 공해공장 문제를 제기하면 마산 수정만 주민들이 촛불에 가세할 것이고, 골프장 문제에는 의령 자굴산 아래 어르신들도 촛불을 켤 것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경남의 촛불은 '경남의 이명박'에게로 향해야 하는 이유다.

※이 글은 미디어스에 기고했던 '경남에는 작은 이명박이 있습니다' 라는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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