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풍운아 채현국과 시대의 어른들

6화. 생업마저 포기한 양윤모 영화평론가의 꿈

기록하는 사람 2015. 4. 6.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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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 넘어 잘 나가던 직업을 버린 까닭


양윤모(梁允模). 1956년 제주시 출생. 한국 나이로 60이니 어른이라 해도 무리는 아니겠지만, 앞서 여기서 소개한 채현국(81), 장형숙(89), 방배추(81) 어른들에 비하면 한참 젊은 나이다. 하지만 나이 50이 넘어 잘 나가던 직업을 훌쩍 내려놓고 고향 제주도로 낙향, 강정마을에서 전혀 다른 삶을 개척하고 있는 이 분을 언젠가는 꼭 만나보고 싶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바로 그 양윤모 선생으로부터 직접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대안언론을 고민하는 제주도 사람들(가칭)’이란 모임이 있는데, 제주도에 와서 지역언론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지난 13~15일 그래서 찾아간 제주도였다.


대안언론을 준비하는 제주도 사람들. 왼쪽 앞에 양윤모 선생도 보인다. @김주완


그는 2008년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눌러앉기 전까지 약 30년을 영화인으로 살며 서울 충무로를 벗어나지 않았던 인물이다. 서울예대 영화과를 나와 강우석필름아카데미 초대교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스크린쿼터영화인대책위원회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등을 지내며 서울에서 살았다. 그냥 그렇게 영화평론가로 계속 살아도 괜찮은 삶이었다.


잠시 지친 몸을 쉬기 위해 찾았던 고향에서 강정마을에 건설되고 있는 제주해군기지 문제가 눈에 들어왔고, 이곳 주민들과 함께 반대운동을 시작한지 8년째가 됐다. 주소도 아예 이곳으로 옮겼다.


그러나 그는 집이 없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강정 투쟁과정에서 만난 ‘사회적 아들’ 부부의 집에서 방 한 칸을 얻어 산다. 세 끼 밥도 강정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에서 보내주는 음식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삼거리식당’에서 먹는다. 옷도 전국에서 보내온 ‘구호품’ 중에서 골라 입는다.


삼거리 식당 앞에서 양윤모 선생과 필자. @김주완


가난한 자로 강정마을에 눌러앉았다


다른 재산도 전혀 없다. 지금까지 아내와 함께 형성한 재산은 모두 아내 명의로 줘버렸고, 부모님께 물려받은 고향의 집과 땅은 동생들에게 나눠줬다. 보행이 좋고 기계문명을 싫어해 자동차도 갖지 않았다. 물론 운전면허도 없다. 아들(26)과 딸(22)이 있지만 “아버지 인생에 신경 쓰지 말고 각자 자기 삶을 찾아라”고 했다. 그렇게 그는 ‘자발적 가난’을 선택했다.


“저는 사실 강정에 ‘가난한 자’로 온 거예요.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한 자. 여기서 제가 온전히 몰입하는 걸 좋아해요. ‘온전한 몰입’ 그 다섯 단어를 좋아해서….”


그가 말하는 온전한 몰입이라는 게 뭘까?


“제가 제주시 건입동 출신인데요. 여기 강정마을은 딱 그 반대편이에요. 제주에 있을 땐 육지를 보며 동경하고, 수평선 너머 구름을 보며 세상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죠. 나이 50이 넘어 고향에 돌아와 길 찾기라고나 할까요?


이 현실(해군기지 반대운동)을 진리라고 생각하고 정면충돌하자. 간디 선생이 진리실험이라 하잖아요. 저에겐 이 강정 투쟁이 그 진리실험이 아닐까 싶어요. (제가) 간디 선생 근처에도 못가겠지만 여기서 투쟁을 통해 모든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을 다 보는 거예요.”


네 번의 구속, 세 번의 목숨 건 단식


그렇게 시작한 해군기지 반대운동 과정에서 그는 네 번이나 구속되어 교도소 생활을 했다. 가장 최근엔 2013년 2월부터 435일간 수감생활을 했고, 2011년 74일, 2012년 42일, 2013년 52일간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다. 아직도 그에겐 ‘영화평론가’란 직함이 따라 다니지만 지난 8년 동안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았다.


대체 어떤 신념이 그를 이렇게 변화시킨 걸까?


강정 투쟁이 이상하게 재밌다는 양윤모 선생. @김주완


“저는 이 강정 투쟁이 이상하게 재미있어요. 사실 저는 평화에 대한 감각이 없었던 사람이에요.


그러나 영화지식인으로 살아온 상식으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제주 해군기지라는 게 너무 터무니가 없는 거예요. 이 사업의 순수성을 찾아볼 수가 없어요. 군도 하나의 이기집단이라는 거죠.


국제적인 전쟁괴짜들,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 하지만 껍데기 속을 들여다보면 군수산업체 패밀리들의 잔치라고 보는 거죠. 그들은 나중에 전쟁도 계획하게 되고 그것을 또 실행하게 되고…. 그런 국제적인 전쟁 괴짜들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런 악의 세력이 있다면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희구하는 선의 세력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연대해야 한다. 그런 연대가 이뤄지고 있어요. 지금 강정을 중심으로. 그런 행복감을 느껴요.”


영화 <플래툰>와 <7월 4일생>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이나 받은 유명한 영화인 올리버 스톤 감독도 2013년 강정마을을 찾아 반대운동을 지원하고 수감 중인 양윤모 선생을 면회한 적이 있다. 당시 올리버 스톤 감독은 양 선생을 일컬어 “매우 훌륭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칭한 바 있다. 그는 올리버 스톤 감독을 어떻게 봤을까.


“교도소로 면회를 왔는데, 제가 평론가로서 작가 연구가 참 단편적이고 그 사람의 세계관을 들여다보는 눈이 부족했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그와 대화를 나눠보니 좋은 영화 만드는 사람이기 이전에 세계평화에 대한 공부가 얼마나 깊은지 느꼈어요.


제가 마침 교도소에서 LA타임스 기자가 쓴 평화에 관련된 책을 읽었는데, 거길 보면 미국의 어느 예수회에 형제 신부님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구속만 26회인가? 그런 기록이 있어요. 올리버 스톤한테 물어봤죠. 그랬더니 알고 있더라고요. 형제 중에 한 사람은 죽었다고 말해주더군요. 미국이란 큰 땅에서 평화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그걸 알고 있는 거예요. 저는 평화나 사회문제를 아직까지 좀 낭만적이거나 자유주의적으로 접근한 게 아닌가 하고 반성했죠.”


그는 이처럼 투쟁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하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다.


해군기지 공사현장 출입구. @김주완


“노벨평화상 후보가 되었던 사람들도 강정에 다녀갔는데, 그런 사람들과 연대가 끊임없이 이뤄지는 곳이 강정이에요. 그분들은 오면 우리나라 지식인들처럼 와서 쓰윽 구경이나 하고 사진 찍고 격려말만 주고 가는 게 아니라 그냥 구속을 각오하고 싸우는 거예요.


그런 실천하는 모습들, 마치 자기네 일처럼 문제를 끌어안고 우리에게 동지애를 보여주는 것 있죠?


우리는 자칫 운동하다 보면 사람은 사라지고 논리만 발전하고 스펙만 쌓이잖아요. 그거 갖고 또 타인을 제압하잖아요. 소위 지도한다고 하면서….


그러기 쉬운데, 물론 제가 또 잘못 볼 수도 있겠고 자칫 저도 그럴 수가 있겠는데,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평화운동 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사람을 대하는 자세라든가 문제를 공유할 때 경청하고 자기 경험을 녹여내서 함께 나누려고 하고 또 제안들도 많이 하고요. 그렇게 나온 제안을 또 실행하는 데 함께 하고 이런 것들을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저는 이 투쟁이 고난인 것 같은데, 여기서 제가 과거 젊었을 때 누렸던 것보다 더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고 봐요. 공자님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50에 하늘의 뜻이 보인다는….(웃음)”


해군기지 건설? 언젠가 쓰러질 허상일뿐


하지만 그와 문정현 신부, 마을 주민과 수많은 활동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럼비는 파괴되었고 해군기지 공사는 계속되고 있다. 사실상 해군기지 건설은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그러면 이 투쟁도 결국은 마무리될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실상 해군기지 건설이라는 것은 하나의 물질로는 서 있을지 몰라도 저에겐 아무런 장애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것도 하나의 허상이죠. 언젠가는 쓰러질 허상이고. 그 어쩌면 그 자체가 사유의 대상이 되더라고요. 저게 있음으로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저게 없었다면 향후 삶을 살아가는데 새로운 동기부여가 없었을 거잖아요. 어쩌면 진부한 삶을 계속 이어가게 되거나 연명하는 삶, 과거를 팔아먹고 사는 삶이 될 수 있었는데, 저걸 만나면서 과거가 다 날아갔어요. 늘 새로운 것이 열리는 거예요.”


언젠가 쓰러질 허상이라고? 그렇게 보는 것 자체가 환상이고 너무 이상적인 생각은 아닐까? 그래서 다시 물었다. 이미 건설된 해군기지를 어떻게 하려는 거냐고.


“우리는 저걸 평화공원으로 만드는 획기적인 계획들을 준비하고 있는 거예요. 예전에는 과격하고 성급해서 막 욕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열심히 지어라. 튼튼하게 지어라.’(웃음) 장차 평화공원으로 우리가 용도를 바꾸면 되니까. 그런 꿈을 꾸면서 싸우니까 즐거운 거예요.(웃음)”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해군기지 건설현장. @김주완


그랬다. 그는 강정마을에서 일생의 꿈을 걸고 있었다. 제주도를 ‘비무장 평화의 섬’으로 만들겠다는 꿈이었다.


“‘비무장 평화의 섬’을 헌법 조항에 명시하는 운동을 할 겁니다. 제주도에는 일체 군사문화가 들어올 수 없도록. 그러기 위해 천만 서명운동을 전개하자. 그렇게 해서 이 제주도를 국제적인 평화의 섬으로 만들자.


노무현 대통령이 선언했던 ‘세계 평화의 섬’이라는 허구가 뭐냐면 군사기지를 바탕으로 하는 평화의 섬이라는 거거든요. 중앙정부가 제주도민들과 상의도 안 하고 마치 정책적인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선언해버린 거예요. 그리고 뒤따라온 것이 해군기지인 거죠.


그래서 이걸 계속 우리가 저지하지 않으면 공군기지가 곧 들어올 것이고 또 해병대 부대가 증설될 예정이에요. 이런 걸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것이 이런 눈앞의 미시적인 투쟁도 중요하지만 거시적인 투쟁을 해야 한다. 그게 뭐냐면 코스타리카처럼 군사문화가 없는 제주도를 만들자는 거죠. 꿈을 갖고 있고 멈추지 않고 의지를 모으면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비무장 평화의 섬 계획을 설명하는 양윤모 선생. @김주완


비무장 평화의 섬·올바른 언론 만드는데 ‘온전한 몰입’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그러나 과연 실현가능성이 있을까?


“천만 명이 사실 쉽진 않거든요. 세월호가 천만 서명운동을 시도했었잖아요? 그런데 그게 600만 명인가? 세월호라고 하는 정말 인륜에 관한 문제잖아요. 살아있는 아이들이 희망을 갖고 있는데 그걸 저버린 정부를 원망하는 사람이 뭉쳐도 그 정도 밖에 안 된 거예요.


제주도 비무장 평화의 섬? 이것도 사람들 또 시큰둥하겠죠.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눈 굴려가듯이 할 겁니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나는 그런 사업들 많이 해봤잖아요. 천천히 지치지 않게 하려고 해요.”


나를 초청해 지역언론에 대한 강의를 들은 것도 그 꿈을 실현해나가기 위한 단계 중 하나였다.


“제주도 매체들은 전부 해군 광고를 실어요. 예를 들면 지난 1월 30일 행정대집행을 했잖아요. 그 다음날 민군복합관광 이미지 광고를 쫙 깔아요. 소통할 수 있는 공론장이 없는 거예요. 그런 언론이 너무 절실해요.


올바른 언론이 없다보니 제주도 지식인들이 사고가 멈춘 거예요. 교양도 없어지고. 언론이 교정이 안 되어서는 지식체계가 계속 흔들려요. 그래서 제주지역에 우리의 언론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거죠. 비무장 평화의 섬 건설과 올바른 언론을 만드는 것, 이 두 가지에 ‘온전한 몰입’을 해야죠.”


거의 준공단계인 강정 생명 평화 사목센터. @김주완


지금 강정마을 평화센터 뒤 해군기지 건설현장 앞에는 4층짜리 건축물 한 동이 늠름하게 올라가고 있다. 곧 준공단계다.


“저 건물은 문정현 신부님이 민주화운동유공자 피해보상금을 종자돈으로 해서 전국의 천주교와 연대해가지고 약정금 받아 건물 올리고 있는 거예요. 6월이면 완공되는데 해군은 지금 비상 걸린 거죠. 바로 앞에 저 건물이 들어서니….


자기들은 8년 동안 해도 성과가 안 나오는데, 규모는 작지만 정의와 평화의 이름으로 건물이 올라가잖아요. 강정 생명평화 사목센터가 될텐데. 그래서 비상 걸렸어요.(웃음)”


강정마을 곳곳엔 이렇게 거리 문고가 있고, 노란 깃발이 펄럭인다. @김주완


※포털 다음 뉴스펀딩에 연재했던 글입니다.

다음에서 보기☞ http://m.newsfund.media.daum.net/episode/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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