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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여행 05 : 귀족 트레킹과 더 큰 설악산

김훤주 2015. 3.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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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트레킹을 한지 네댓새 정도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살짝 미쳐버린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즐겨 먹던 김치·된장·고추장 이런 것들이 못 견디게 먹고 싶어지는 때문입니다.

 

네팔에는 한국인 트레커가 많았습니다. 푼힐 트레킹을 하는 도중에도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5월 봄날 성수기하고 견줄 정도는 절대 아니라지만, 길 가다 만나지는 트레커들 가운데 3분의2 정도는 동양사람이었고 동양사람 가운데 적어도 절반은 한국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게스트하우스에서 점심이나 저녁 끼니를 때울라치면 옆 테이블에서 나는 김치 냄새를 심심찮게 맡아야 했습니다. 냄새에 이끌려 고개를 돌려보면 김치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 옆에는 고추장을 담은 플라스틱통이 있기 일쑤였습니다.

 

접니다.

 

우리 일행이 네팔에 가져간 반찬은 김 하나, 기름을 바르거나 굽거나 소금을 치거나 등등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생김 한 톳이었습니다. 우리는 김치나 고추장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한국서부터 그런 데에 크게 중독돼 있지는 않았었기에 주어지는대로 아무거나 잘 먹을 수 있었습니다.

 

푼힐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 들른 첫 게스트하우스에서 영주형은 김치 냄새 풍기는 옆 테이블을 눈짓으로 가리키면서 말했습니다. “저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네팔 음식을 먹으면서 김치나 고추장을 곁들이는 정도니까. 충분히 봐줄 만하고도 남아.”

 

제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네팔에 와서도 한국 음식을 그대로 먹는 경우도 있어요?” 영주형은 말했습니다. “그럼, 있지.” “어떻게요?” “돈 많은 사람들이야. 포터뿐만 아니라 시중드는 사람 요리하는 사람까지 거느리고 트레킹을 하지.”

 

“식민지 지배자가 네팔 사람을 메이드(maid)로 삼고 누리는 꼴이야. 아침에도 몸만 잠자리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고용된 현지인들이 이부자리도 치우고 텐트도 걷어주지. 전망 좋은 자리에서 잘 요리된 아침을 먹고 안락의자에 길게 기대어 있으면 현지인이 따끈한 커피를 바치고. 손만 내밀면 돼.”

 

트레킹 도중에 만난 아이들. 사진기가 신기한 모양이었습니다.

 

저는 눈이 똥그래졌습니다. 생각도 못해 본 일이었으니까요. “게스트하우스에서 안 자고 텐트를 쳐요?” “그 사람들 텐트는 게스트하우스보다 훨씬 낫지.” 하기야 게스트하우스 잠자리는 겨우 나무판자로 안팎 구분만 해 놓았을 뿐 한데나 마찬가지니까요. 게다가 요즘 고급 텐트가 좀 좋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자기 배낭도 지고 다니지 않아. 포터가 그런 것까지 다 져다 날라 주도록 돼 있거든. 그냥 맨 몸으로 정해진 루트대로 걷기만 하면 돼.”

 

“그래요? 자기 배낭도 안 지고 트레킹이라…….”

 

“점심 먹기로 미리 정한 장소에는 포터 하고 요리하는 사람들이 먼저 가서 자리도 깔아놓고 밥과 반찬을 다 해 놓거든. 다 먹고 나면 디저트로 커피랑 과일까지 갖다바치겠지. 밤에도 미리 쳐놓은 텐트에 깔아놓은 잠자리에 들어가 자기만 하면 돼. 다른 건 다 해주니까.”

 

“밤에 술자리도 똑같겠네요. 마음껏 먹고 마시고 떠들다가 그대로 손 털고 일어서면 고용된 사람들이 다 치워주고.”

 

“그렇겠지.”

 

“그러면 포터라든지 같이 움직이는 네팔 사람들이 엄청 많겠네요.”

 

무거운 짐을 지고 산길을 오르는 네팔 사람들.

 

“맞아. 보통 단체로 오는데, 총감독이 한 명이고 음식 파트, 텐트 파트, 배낭 파트, 기구 파트 등등 분야별로 감독이 한 명씩 또 있어. 그 아래에 일꾼들이 다시 줄줄이 딸려 있고. 전문 산악인들 에베레스트 원정대 수준이야. ”

 

네팔이 언제 다른 나라 식민지가 된 적은 없습니다만, 네팔은 인도 영향을 많이 받았고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더불어 영국 영향도 지금까지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우와, 굉장하네요!”

 

“그럼 굉장하지. 트레킹하는 한국 사람보다 시중드는 네팔 사람이 대여섯 배는 많아.”

 

네팔 산길에서는 이처럼 조랑말이 요긴했습니다. 조랑말은 사람을 태우기도 합니다.

 

귀족 트레킹을 하면 분명 편하기는 엄청나게 편할 것 같았습니다. 걷는 것 말고는 별로 고생도 하지 않는 반면 누리는 것은 거의 대부분 한국 현지 돈 많은 사람 수준 그대로니까요. 달라진 음식 때문에 힘들어 할 까닭도 없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아 갑갑할 까닭도 없고요.

 

그런데 이렇게 트레킹 내내 한국식 밥과 김치와 고추장·된장을 먹고, 또 때로 돼지고기·소고기 한국식으로 요리해 먹고 하면 네팔 음식은 언제 어디서 먹어볼까요?

 

값진 좋은 음식이야 트레킹 마치고 카트만두나 포카라 같은 큰 도시서 먹을 수 있겠지만, 산악 지대 현지 음식은 손도 대지 못해 볼 것 같았습니다. 카레를 얹거나 채소를 올리는 것 말고는 굽거나 삶거나 튀기거나 절이거나 할 뿐인, 그 원형질 같은 소박함은 맛보지 못하겠지요.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네팔 사람들.

저는 그이들이 일껏 시간 내어 네팔까지 오는 보람은 무엇일까, 네팔 와서 몸으로 겪고 마음으로 느끼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네팔 트레킹을 하는 맛이 날까요?”

 

“그야 모르지.”

 

“그냥 네팔 가서 멋지게 잘 놀고 왔다, 만년설 덮인 설산 정말 대단하더라, 닷새 트레킹하는데 하루에 200만원씩 썼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정도? 좋고 편하기는 해도 네팔은 제대로 못 느낄 것 같은데요?”

 

“그 사람들도 나름 생각하고 느끼고 누리는 바가 있겠지. 어쨌든 눈 쌓인 설산이야 네팔 말고 다른 데서도 볼 수 있잖아. 네팔에 왔으면 네팔 음식도 먹어보고 네팔 잠자리에서 잠도 자고 네팔 마을에 들어가 사람들이랑 얘기도 나누고 해야 맛이 나지.”

 

푼힐에서 본 설산들.

 

“그렇죠. 눈은 우리나라 겨울 설악산도 좋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들은 기껏 네팔에 와서 더 큰 설악산밖에 못 보고 가는 셈이네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

 

그런데요, 이렇게 네팔에 와서도 눈에 담는 풍경만 네팔 것이고 다른 모든 것은 한국 것인 이런 사람들을 네팔 사람들은 평범한 보통 트레커들보다 더 환영한다고 합니다.

 

왜냐고요? 영주형이 일러줬습니다. “돈이 되니까. 그렇게 트레킹하면서 쓰는 돈이 보통 트레킹하는 사람보다 열 배 스무 배는 되니까. 돈이 많이 벌리니까 포터들도 좋아하고.”

 

처음에는 식민 지배자를 모시는 하인처럼 구는 일을 왜 좋아할까 싶었지만, 듣고 보니 그 이치가 지극히 간단했습니다. 영주형이 이렇게 네팔에 대해 다방면으로 많이 알고 있는 덕분에 우리는 시간·장소 구분없이 언제나 어디서나 재미나게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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