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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여행 03 : 참 좋은 인사 '나마스테'

김훤주 2015. 3. 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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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하니 참 '거시기'했습니다. 네팔로 여행을 떠나면서 네팔에서 인사할 때 뭐라 하는지조차 알아보지 않았으니 말씀입니다. 아마도 네팔에 아홉 번씩이나 다녀온 영주형과 동행이어서 그랬지 싶은데 어쨌거나 지금 생각하면 저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네팔에서는 이랬습니다. 아침에도 나마스테, 점심 때도 나마스테, 저녁 때도 나마스테, 밤에도 나마스테, 나마스테 하나면 다른 것은 필요가 없었습니다.

 

꼬마를 만나도 나마스테, 청년을 만나도 나마스테, 어른을 만나도 나마스테, 남자를 만나도 나마스테, 여자를 만나도 나마스테, 불교 절간서도 나마스테, 힌두 사원서도 나마스테 높은 사람한테도 나마스테, 낮은 사람한테도 나마스테, 갑(甲)한테도 나마스테, 을(乙)이나 병(丙)한테도 나마스테.

 

트레킹 도중에 만난 어느 게스트하우스의 표정. 나마스테는 이처럼 웰컴이기도 하고 굿바이 또는 씨유어게인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가게에서는 주인은 어서 오세요 하고 갑질하는 손님은 인사를 하지 않고 나머지는 그냥 안녕하세요 중얼거리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네팔은 손님이나 주인이나 나마스테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술집서도 나마스테, 밥집서도 나마스테, 게스트하우스서도 나마스테, 찻집서도 나마스테.

 

영주형은 "네팔서는 '나마스테 하나면 된다. 손만 살짝 들면 된다. 상대방도 똑같이 나마스테 하고 인사를 한다'고 했는데 진짜 그랬습니다.

 

우리나라는 만날 때 인사 다르고 헤어질 때 인사가 다른데(또 제가 아는 범위에서는 다른 많은 나라도 그런데) 네팔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마스테로 만나고 나마스테로 헤어지는 것입니다.

 

석가모니 탄생지 룸비니 근처 마을 테누하와에서 만난 아이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누군가 먼저 나마스테 하면 상대방도 금세 얼굴에 웃음기가 돌면서 나마스테 하고 답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표정이 생동감이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입과 눈은 물론 얼굴이 통째로 환해지는 그런 웃음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입만 웃거나 눈만 웃거나 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이들 환한 웃음이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높낮이 없고 ‘수구리’도 없는 나마스테가 좋았습니다. 그리고 나마스테라고만 하면 피어나는 선하고 환한 웃음도 좋았습니다.

 

네팔국립생태공원 치트완 가까운 마을 타루에서 만난 사람들. 이들과도 첫 인사는 나마스테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대엿새 지나고부터는 제가 일부러라도 '나마스테' ‘나마스테’ 하고 다녔습니다. 네팔 사람은 대체로 우리보다 살결이 검은 편이고 눈은 좀더 동그란 편인데, 제가 그렇게 하면 그이들은 흰 이와 눈자위가 드러나도록 웃으면서 손을 들어 나마스테,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역시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정교육은 나이가 자기보다 많은 사람한테 인사할 때는 대체로 공손해지도록 가르칩니다.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상대방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합니다.

 

룸비니 근처 테누하와중학교 학생들. 이들이 먼저 사진을 찍어달라고, '나마스테' 하며 다가왔습니다.

 

눈이 마주치면 어른을 공대할 줄 모른다고 불손하다고 야단을 맞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경건해지기도 해야 했습니다. 웃어른에게 인사할 때는 이를 희게 드러내 보이면 안 된다고 교육을 받은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나 젊은 친구들 만나면 한쪽 손을 가볍게 들고 목소리도 맑게 해서 나마스테 했습니다만, '연세가 높으신' 할아버지나 할머니를 만나면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고개도 숙이고 손까지 앞으로 모으고 나마스테 했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시원찮았습니다. 저의 나마스테 인사를 받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아이들과는 달리 낯설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제 인사에 아예 대꾸를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한동안 뜸을 들인 뒤에 그것도 마뜩찮아 하면서 나마스테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여기도 전통 사회가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진행됨에 따라 삶이 계산적이 되고 각박해지면서 나마스테가 시들해지고 있구나.'

 

카트만두시장에서 만난 할머니. 희고 노랗고 검은 돌덩이 같은 것은 암염(岩鹽=바위소금)입니다. 오른쪽 위에 얼굴이 보이는 영주형이 '나마스테' 하면서 말을 걸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남의 일에 이래라저래라 말하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 영주형이지만 결국 못 참겠는지 제게 말했습니다.

 

"훤주야. 나마스테 할 때는 웃어야 해. 상대방을 바로 쳐다보면서 말이야. 손짓도 크게 하는 편이 나아. 너처럼 웃지 않으면 안 되고. 손짓도 보일 듯 말 듯 그렇게 하지 말고. 고개를 푹 숙이고 나마스테 하면 네팔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해. 좀 미친 사람 아니야? 이런 식으로 말이야."

 

영주형 나마스테 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니 그랬습니다. 오른손을 벌쩍 치켜들었고 얼굴에는 반가워 못 견디겠다는 듯 크고 분명하게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돌아오는 반응 또한 크고 분명하고 환했습니다.

 

나마스테는 단순히 만나거나 헤어질 때 하는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만나 반갑다는, 다음에 또 만나면 좋겠다는,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카트만두시장에서 구운 옥수수를 파는 아줌마. 대화의 시작은 역시 나마스테였습니다.

 

영주형이 일러준 뒤로는 저도 나마스테 할 때 웃음과 손짓을 크고 분명하게 했습니다. 상대방 반응도 예전 작게 웃고 희미하게 손짓할 때와 달라졌습니다.

 

저는 신이 났습니다. 더 크게 웃고 더 크게 손짓하면서 나마스테 했습니다. 그랬더니 참 신기한 경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이 저한테서 저절로 막 생겨나는 것이었습니다.

 

여태 저는 얼굴 표정이란 마음에서 우러나는대로 생긴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얼굴 표정이 생기는대로 마음이 움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저는 네팔 인사 나마스테에서 비로소 알았습니다.

 

트레킹하는 길에 만난 네팔 초등학교 아이들. 이들은 카메라가 신기했는지 제 것을 가져가 이렇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영주형 사진.

2월 6일 네팔 여행을 마치고 카트만두 공항에 들어갈 때도 때도 나마스테 했고 비행기를 타려고 건물을 빠져나오면서도 나마스테 했습니다. 얼굴은 분명하게 웃고 있었고 한 쪽 손은 확실하게 치켜들어져 있었습니다.

 

2월 7일 새벽 인천공항에서 도착한 뒤에는 주차장에서 한참 헤매다가 제 차를 찾아 나들머리로 몰고 나왔습니다. 유리창을 내리고 주차요금이 얼마냐 물어보려는데 하마터면 '나마스테' 소리가 나올 뻔했습니다. 손은 이미 엄거주춤하게 올라가 있었고 입가에는 웃음이 보일락 말락 물려 있었습니다.

 

이처럼 네팔에서 돌아오고 나서 한동안은, 이를테면 고속도로 요금소를 지나면서도 "안녕하세요" 이렇게 소리내어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이 좀 이상하게 여기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소리내어 '안녕하세요' 하는 경우는 잦아들었지만 하나만큼은 어지간하면 계속 해보려고 합니다. 상대방과 눈을 맞추고 눈과 입으로 가볍게 웃기 말입니다.

 

룸비니 근처 마을에서 만난 꼬마 여자아이. 이 친구도 사진 찍(히)기를 좋아했습니다.

 

어쨌거나 지금 우리나라는 인사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유치원에서도 가르칩니다. 손을 모아 배꼽 언저리에 대고는 고개를 크게 숙이는 배꼽절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인사가 아니고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예의범절은 대형마트나 백화점에 가면 인사가 아닌 감정노동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네팔 인사말 나마스테를 수입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남녀노소 관계없고 밤낮 구분도 필요없고 상하 구분도 필요없습니다. 만날 때 헤어질 때 언제나 어디서나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나마스테가 수입되면 한 쪽 손을 드는 몸짓과 상대를 보며 환하게 웃는 얼굴 표정도 함께 들어오겠지요. 그러면 우리 인사를 불편하게 만드는 쓸데없는 고개 숙임이나 꾸민 듯한 엄숙·경건 등등이 사그라들지 않을까요. 쓸데없는 상하 구분도 불편한 갑을 차별도 덩달아 많이 줄지 싶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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