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무안-초의선사 탄생지와 회산백련지

김훤주 2014. 9.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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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와 경남도민일보가 함께 진행하는 '2014 경남도민 생태·역사기행'은 6월 25일 경북 포항을 다녀온 다음 7월 한 달을 건너뛰고 8월 13일 전남 무안으로 다섯 번째 걸음을 놀렸습니다.

 

조선 후기 우리나라 전통 다도를 중흥시킨 스님 초의(草衣)선사가 탄생한 자리와 동양 최대 백련 군락지로 알려진 회산백련지를 둘러보는 일정이었습니다. 창원 만남의 광장을 오전 8시에 출발한 버스는 세 시간 남짓 걸려 초의선사탄생지에 가 닿았지요.

 

같은 전남의 신안과 함께 갯벌이 너르기로 유명한 서해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세 시간 남짓 걸려 초의 탄생지에 도착했더니 가는비가 오락가락하고 있었습니다. 대각문(大覺門)이라 적힌 정문을 통해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복원된 초의 생가가 숨은 듯이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층층이 나란한 차밭이 나옵니다. 차(茶)라 하면 경남 하동 야생차나 전남 보성 녹차 정도가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도 차나무를 볼 수 있다니……. 하지만 알고 보면 차나무가 그렇게 드문 존재는 아니랍니다. 전통차에 대한 우리 관심이 드물 따름이지요.

 

먼저 어지간한 절간에는 대체로 차밭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는 품질 좋은 차를 생산해내는 절간도 있는데 이를테면 사천 다솔사가 그러합니다. 심지어는 지역 주민을 위해 일부러 차나무를 심고 가꾼 데도 있는데 창원 진해 장복산 일대에 가보면 바로 알 수 있답니다.

 

보통 사람들은 전통차라 하면 만들기도 어렵고 마시기도 어렵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답니다. 지금도 차나무는 새순을 내어놓는데, 그것을 잘라 적당한 방법으로 말리고 비비고 덖거나 뭉치면 그만입니다. 물론 사전 지식 전혀 없이 즐길 수 없기는 커피를 비롯한 다른 마실거리와 다를 바 없지만은요.

 

 

조선 시대 스님은 천민이었습니다. 사람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초의선사는 달랐습니다. 당대 으뜸가는 지식인이었고 갖은 학문에 능했던 추사 김정희와 오랜 시간 친구로 사귀었습니다. 둘이 그렇게 친하게 지냈음을 알려 주는 비석이 여기에 마련돼 있습니다.

 

추사가 초의한테 보낸 편지에서 따온 글귀를 새긴 것이랍니다. "고요히 앉은 자리에 /차는 반이지만 향기는 처음과 같고// 묘한 작용이 있어서/ 물이 흐르고 꽃이 피네." 잘은 모르지만 그윽함은 느껴진답니다. 

 

열정적으로 해설을 하시는 사진작가 겸 전직 대학교수인 박종길 선생은 차와 선(禪)이 다르지 않음을 일러준다고 풀이합니다. 그렇기는 하겠습니다. 차 한 잔 마시면서 자세를 고르고 몸과 마음을 열어나가는 그런 경지가, 실행은 못해도 상상은 되는 것이었습니다.

 

 

박종길 선생의 해설은 그치지 않습니다. 한 칸 짜리 일지암 초당에서는 초의선사가 이 띠집을 고쳐 짓고 거처하면서 <동다송(東茶頌)>·<다신전(茶神傳)> 같은 책을 썼다고 소개합니다. 다신전은 찻잎을 따서 마시는 전체 과정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고 동다송은 다도와 우리 차에 대해 일러주는 책입니다.

 

이처럼 초의 또한 추사에 미치지 못하는 바가 아니었기에 둘은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이로 말미암아 추사가 제주도로 귀양살이 갔을 때 초의가 가장 먼저 찾아가 함께 머물면서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박종길 선생이 설명을 이어나가자 다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또 이런 바탕으로  55살 때인 1840년 헌종한테서 대각등계보제존자초의대종사(大覺登階普濟尊者草衣大宗師) 시호를 받았고 이를 새긴 빗돌이 여기에 세워졌습니다.

 

 

 

초의선사기념관과 조선차역사박물관을 둘러보고는 용호백로정을 찾았습니다. 기와를 얹은 용호백로정 바로 곁 연못에서는 몇 송이 꽃을 빼어문 연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들어간 몇몇은 연꽃을 사진찍고 더불어 사람도 찍었습니다.

 

 

 

 

가까운 서해명가(061-285-8533)에 들러 그야말로 정성껏 깔끔하게 잘 차려낸 밥과 반찬에 동동주까지 한 잔씩 곁들인 일행은 회산백련지로 향했습니다. 다음날인 14일부터 나흘 동안 '무안 연꽃축제'가 같은 장소에서 열리기로 돼 있었기에 연꽃은 당연히 피어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가는 길에 보니까 피어난 연꽃이 드문드문 있기에 아직 다 피어나지 않았나 싶었으나 그것은 대부분이 이미 지고 남은 몇몇이었습니다. 알아봤더니 원래 개최 시기는 7월 하순이지만 올해는 보름 넘게 늦췄다고 했습니다. 까닭을 물었더니 세월호 참사 때문이랍니다.

 

 

 

 

하기야 세월호에서 숨진 사람들 생각하면 이런 걸음조차 아직은 조심스러운 것이 맞습니다. 어쨌든, 넓이가 10만 평 남짓으로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일제 강점기 물세 수탈을 조금이나마 벗어나려고 들판 한가운데를 피땀으로 들이세운 저수지에서, 하얀 연꽃을 줄줄이 눈에 담는 즐거움은 아쉽지만 못 누렸답니다.

 

 

 

하지만 꽃이 적으면 또 어떠랴, 한 바퀴 둘러보기는 해야지요……. 대규모 연꽃을 보지 못해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만 그렇지 않고 주어진 사정에 적당히 맞춰 즐기고 누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답니다. 힘들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던 반면 푸른 연잎이 너르게 펼쳐지는 풍경도 장관이라는 이도 있었답니다.

 

그러면서 연꽃 몇 송이 드문드문하고 실하게 맺힌 연밥은 그보다 좀 덜 드문드문하고 푸른 연잎과 푸른 잎사귀를 매단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산책로를 깜냥껏 걸으며 사진을 찍곤 했습니다. 또 여기저기 마련된 쉼터에 모여 얘기를 나누거나 하다가 오후 3시 30분 발길을 돌려 창원으로 돌아왔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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