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촛불과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와 고영주

김훤주 2008. 7. 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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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주(高永宙)라는 이름을 봤습니다. 서울남부지검장 출신인 변호사 고영주가 위원장으로 있는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가 2일치 동아일보에 광고를 실었습니다. 이름도 거창한 국.정.추의 위원장인 그이는 공안 검사의 마지막 대표선수입니다.

광고는, 짐작하시는대로 촛불집회를 비방하는 내용입니다. 제목은 “두 달 가까이 서울의 도심부와 지방 도시들을 마비시키고 있는 ‘촛불집회’는 더 이상 ‘국민건강’을 위한 집회가 아니다.”입니다.

부제는 “지금 폭력과 이를 방치하는 비정상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인데, 이들은 “친북반미-수구좌파 세력은 불법 폭력시위 개입을 즉각 중단하라!”, “정부당국은 불법시위와 폭도들을 엄정하게 사법처리하여 공권력을 바로 세워라!”는 요구를 앞에 세웠습니다.

이른바 정추는 이어서 “정치권은 18대 국회를 조속히 원하여 법질서를 회복하고 민생을 도모하라!”와, “이명박 대통령은 폭도들과 타협하지 말고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여 국가를 안정시켜라!”고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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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는 이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을 과대 포장해, “북한은 촛불시위에 편승해 한국 사회를 교란시키고, 대남 혁명의 결정적 시기를 앞당기려는 선전선동공작을 즉각 중지하라!”고까지 주장해 놓았습니다.

1985년 7월 서울지검 504호실

고영주에 대한 미움과 원한은 나름대로 이미 떨쳐 냈지만, 신문에서 이름을 보니 제 기억만큼은 그이를 처음 만난 85년 7월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나 봅니다. 서울지방검찰청 504호실, 저는 빨간 포승줄에 묶여 역진이 불가능한 벨기에제(製) 수갑을 차고 있습니다.

저는 당시 학생운동 기관지 <일보전진>을 펴내 국가보안법을 어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습니다. 85년 5월 미국 문화원을 학생들이 점거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전두환 정권은 이를 계기 삼아 학생운동을 탄압하느라 눈에 핏발이 서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일보전진>을 펴낸 우리는 학생운동의 이념을 선전하는 배후로 규정돼 모르는 사이에 수배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낌새를 눈치챘고, 저는 이른바 ‘잠수’를 하기 전에 잠깐이나마 어버이 만나 뵙고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창녕 고향집에 들렀습니다.

이튿날 새벽, 길을 나서려 했지만, 밥이라도 먹고 가야지 하시는 어머니 말씀을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습니까. 바로 그 시각에, 경찰이 밤을 낮 삼아 서울에서 달려왔고, 저는 경찰들한테 붙잡혀 수갑을 차이는 꼴을 두 분께 보여 드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알기로 국가보안법은 이렇습니다. 국제 사회주의 운동 계열에 포함되거나 ‘북괴’와 관련이 돼야 처벌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어린 학생들이 짧은 실력으로 쓴 글들을 모은 책을 국제 사회주의 운동 계열로 분류하기는 낯이 좀 간지러웠나 봅니다.

국민에 대한 공포 효과까지 고려하면 국제 사회주의보다는 북괴 관련이 훨씬 낫겠지요. 고영주는 저를 ‘북괴’와 관련지으려고 끊임없이 애를 썼습니다. 저는 그 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이북 정권을 ‘암과 같은 존재’로 봤고 이는 검찰 수사에서도 그대로 진술이 됐습니다.

당시 모든 공안검사는 ①북괴는 인민민주주의 혁명노선에 따라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②정부를 참칭하는 반국가단체며, 이 같은 정(情)을 알면서도 ③북괴의 주장에 동조하고 고무 찬양할 ‘목적’으로 ④시위를 벌이거나 책자를 펴냈다고 공소장을 꾸며댔습니다. 고영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북괴(이북 정권)에 대해 ‘암 같은 존재’라 하니 국보법으로 걸기가 애매해졌습니다. 그이는 끈질기게 ‘북괴’를 나쁘게 본다 해도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민중민주주의를 주장했으니 북괴에 동조한 셈이 아니냐고 을러댔습니다. 그이는 아마 출세길도 여기 달려 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으냐는 다그침에, 저는 이북의 혁명 전략전술을 몰랐기에,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얘기했고 이것은 바로 공소장에서 ‘고무’ 또는 ‘찬양’으로 번역이 됐습니다. 저는 검찰 조서에 손도장을 찍었고 이것은 나중에 이적 표현물 제작.배포의 증거가 됐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검찰이 건네주는 쪽지대로 선고하던 녹음 재생기일 뿐이던 서울형사지방법원의 판사는 이듬해 1월 제게 징역 2년6월 자격정지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습니다. 이 유죄판결은 또 다니던 학교에서 무기정학을 받는 근거가 됐습니다.

1999년 7월 창원지방검찰청 차장검사실

고영주를 두 번째 만난 기억도 있습니다. 99년 7월 경남도민일보에서 창원지방검찰청을 출입하게 됐을 때였습니다. 당시 2인자인 차장 검사가 고영주였습니다. 1인자 검사장으로는 김원치가 와 있었습니다. 저는 이 둘이 나란히 부임해 있는 사실이 아주 놀라웠습니다.

김원치와 고영주는 공안 검사 선후배 사이입니다. 고영주가 저를 수사할 때, 어쩌다 막히는 구석이 있거나 하면 506호실이었지 싶은데, 곧장 김원치한테 달려가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제 사건에서 김원치는 주임 검사였고 고영주는 담당 검사였습니다.

저는 당시 제가 상대해야 했던 고영주보다 그 뒤 보이지 않는 데서 이래라저래라 지도감독하는 김원치가 더 미웠습니다. 아마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의 변주곡이었지 싶습니다.

창원지검에서 그이들을 만났을 때 저는 김원치와 고영주가 둘이 아님을 직감했습니다. 김원치가 고영주에게 이래라저래라 시킨 사실은 맞지만, 그이들은 떨어져 있는 별개가 아니라 한 마음 한 뜻으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더 높은 자리와 더 많은 권력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역시 가해자는 피해자를 기억하지 못하더군요. 제가 말하지 않는 이상 그이들은 제가 그이들이 한 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뒤집어씌워 모질게 추달했던 사람임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는, 가해자를 잊지 못하는 법인가 봅니다.

저는 그이들이 창원을 떠날 무렵 “사실은 이랬습니다.” 얘기를 했겠지요.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고영주는 미안해하는 기색이 거의 없었습니다. “김 박사가 그랬어요? 나는 몰랐네.” 저는 그런 태도에 도저히 제 마음을 풀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그이들의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 그이들은 ‘잃어버린 10년’을 아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광고를 보면, ‘지난 10년간의 좌파정부에 의한 정체성 훼손 행위’로 ‘국가적 비정상 상태’가 ‘광범위하게 만연되고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지난 10년 잃어버린 것은 그이들 존재 가치와 필요

이를테면 이런 것입니다. 저는 2002년 6월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고영주-김원치한테 붙잡혀 유죄 판결과 무기정학을 받았던 그 사건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작으나마 이바지했음이 공인된 셈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그이들이 민주주의 실현에 걸림돌 장애물이었다는 얘기입니다.

그이들은 이것이 부당하고 아니꼽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그이들이 잃어버린 가운데 중요한 하나입니다. 자기 존재의 필요성과 가치가 부정됐습니다. 그이들은 아마 같은 까닭으로, 심지어는 전두환-노태우의 6.29선언조차 불만스러워할지도 모릅니다.

당시 자기네들이 감옥에 집어넣었던 많은 사람들이 6월 항쟁과 뒤이은 6.29선언으로 사면이 되고 복권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이들이 시쳇말로 ‘쪼다’가 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이 부끄러워 더욱더 자신들의 지난날 공안 검사 경력에 매달리는지도 모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됐는데, 공안통(通)이라 일컬어지던 선배 김원치가 지난 5월 22일 숨을 거뒀답니다. 한 목숨이 스러졌다니 명복을 빌지 않을 수 없는데, 어쨌거나 이제 마지막 남은 공안통 고영주가 어떤 생쇼를 연출할는지가 당분간 눈길을 좀 끌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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