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언론/언론, 블로그 강의

또다른 글쓰기 십계명

김훤주 2014. 7. 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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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9일 서울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하는 ‘수습기자 기본 교육’에서 제가 한 강의를 맡아 했습니다. 거제신문·합천신문·옥천신문 등 기초자치단체 단위 지역 주간신문 기자 12명이 제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게 주어진 주제는 ‘지역밀착형 기사 쓰기’였는데요, 생각해 보니 참 난감하더라고요. 제가 생각할 때 ‘지역밀착형 기사’는 있어도 ‘지역밀착형 기사 쓰기’는 없거든요. 같은 취재를 했는데, 이렇게 쓰면 지역밀착형 기사가 되고 저렇게 쓰면 지역밀착형 기사가 되지 않고 해야지 ‘글쓰기의 지역밀착성’을 얘기할 수 있는데, 그런 경우는 제가 아는 범위에서는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글쓰기 방법론’에 해당하는 내용을 한 시간 정도 말씀드리고, 나머지 두 시간은 ‘지역신문의 지역밀착’에 대해 말하기로 정했습니다. 지역밀착 여부와 상관없이 글쓰기에 대한 제 생각을 이렇게 한 번 정리해 올려봅니다.

 

1. 스트레이트 기사 쓰기는 그래도 중요합니다

 

스트레이트 기사 쓰기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역삼각형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앞에 세우고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은 가장 뒤에 세운다는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또 있습니다. 경제적인 글쓰기입니다.

 

보통 스트레이트 기사를 두고 ‘무미건조하다’고들 하지요. 달리 말하자면 군더더기가 없는 것입니다. 명사·대명사·동사·형용사가 대부분이고 이들을 꾸미는 부사 따위는 조금뿐입니다.

 

집을 짓는 데 견줘보면 이렇습니다. 스트레이트 기사는 기둥과 들보와 담벽과 지붕만 있는 집입니다. 아무 장식이 없습니다. 장식·꾸밈이 없는 글쓰기가 바로 스트레이트 기사 쓰기입니다. 이렇게 먼저 기초를 익히는 편이 좋습니다.

 

기본 뼈대와 거기에 더해져도 되거나 말거나 하는 살점을 잘 구분해 발라내는 능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요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분명하게 정리하는 능력도 커집니다. 요점을 똑바로 파악하고 나면, 그 요점을 효과적으로 꾸미고 강조하는 방법은 손쉽게 터득되고 눈에도 잘 뜨입니다.

 

2. 하나에 하나씩만 담아도 족합니다

 

욕심은 언제나 어디서나 금물(禁物)입니다. 문장 하나에는 한 가지 팩트만 담으세요. 글 꼭지 하나에는 한 가지 주제만 담습니다.

 

대부분 독자들은 두어 가지가 뒤섞인 문장을 끝까지 견뎌낼 수 있을 만큼 끈질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글 한 꼭지에 섞여 있는 여러 가지 주제를 제대로 찾아내어 가지런히 정돈할 수 있을 만큼 머리가 좋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쓰는 본인 자체가 그렇게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습니다. 한 문장에 서너 가지 팩트를 담으면서 그것을 보기 좋고 알기 쉽게 제대로 차려내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 글 한 꼭지에다 여러 주제를 담으면서 서로 헷갈리지 않게 하기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나 글을 읽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피곤하게 작용하는 여러 주제·사실 섞어쓰기를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다른 좋은 점도 있습니다. 글이 늘어지지 않습니다. 짧아지고 탄탄해집니다. 그러면 글에서 저절로 힘이 생깁니다.

 

강의하기 전 강의실 모습.

 

3. 글을 쓰는 과정이 바로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글을 쓰겠다는 얘기는 글을 쓰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소설가들은 대개 이런 말을 합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작가인 나를 끌고 다닌다”고요. 처음 시작할 때 지향이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글이 풀려나가는 경우가 많다는 고백입니다.

 

짧은 스트레이트 기사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기사라면 글을 써가면서 생각도 더불어 정리하는 식으로 해야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많이들 써먹는 비유지만, 생각을 먼저 정리하고 나서야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은, 헤엄치는 방법을 먼저 익혀야 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글 끄트머리에 빠져나오면서 적어야 할 글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서 글 쓰기를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실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마음의 장벽, 생각에만 있는 장벽일 따름입니다.

 

들어가는 한 마디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를테면, “그이는 자신의 결정을 곧바로 후회했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물론 이렇게 들어가는 글 한 마디도 끝까지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중에 써나가면서 보고 적당하지 않거들랑 버리면 됩니다.

 

어쩌면 오히려 버려야 합니다. 뗏목은 강을 건너는 데만 소용이 됩니다. 강을 건넌 다음 뗏목을 지고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시작은 시작일 뿐입니다. 시작이 끝까지 유지돼야 한다는 것은 생각 또는 무의식의 감옥입니다.

 

4. 취재한 내용으로 먼저 글을 쓰고 빠진 부분은 나중에 더합니다

 

세상에 완전무결한 취재는 없습니다.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설렁설렁 취재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리 꼼꼼하게 취재해도 비는 구석은 있기 마련이라는 뜻입니다. 취재는 똑바로 하되, 지금 글을 써야 한다면 지금까지 자기가 확보해 놓은 것을 갖고 하는 편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자기가 취재하지 못해 비는 구석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럴 경우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거든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하면 됩니다.

 

간단하게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일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부분은 비워두고 계속 써 나간 다음 마지막에 확인하고 그에 걸맞게 내용을 채워 넣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는 자기가 취재한 내용이 얼마나 모자라는지 잘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먼저 완벽한 취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제 경우에 비춰볼 때, 오히려 취재를 지나치게 많이 하는, 말하자면 기사를 쓰는 데 필요없는 내용까지 취재를 하는, 그래서 시간을 낭비하는 그런 때가 많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글을 먼저 써놓고 보면 그 기사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꼭 보충 취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정도가 어느 만큼인지 가늠이 될 때가 많습니다. 시간을 아끼고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방법론이라 하겠습니다.

 

5. 독자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면 좋습니다

 

글쓰기는 소통의 수단입니다. 물론 자기 표현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런 자기 표현조차 상대방이 알아주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보람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독자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글을 써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언제나 머리 속으로는 자기가 쓰는 글을 읽어줄 독자의 눈을 생각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글 쓰는 본인은 알겠는데 읽는 사람은 전혀 모르거나 제대로 알 수 없는 글이 나오기 십상입니다. 이를테면 글을 쓰는 본인에게는 당연한 전제라서 생략을 했는데, 글을 읽는 독자로서는 그 생략된 부분이 반드시 알아야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배경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좋은 점이 또 있습니다. 편한 글이 나올 개연성이 높아집니다. 끊임없이 독자를 의식하다보면 절로 독자랑 눈높이가 맞춰집니다. 독자가 무엇을 잘 모를까, 무엇을 궁금스러워할까 등등을 생각하다보면 묻고 답하기 그리고 더 나아가 독자와 가상 대화까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요즘 가장 좋은 글쓰기로 꼽히는 ‘스토리텔링’으로까지 어렵지 않게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6. 사진은 이제 필수, 꼭 곁들여야 합니다

 

지금은 대세는 비주얼입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신문(기사)을 읽지 않고 봐 왔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커지고 또 뚜렷해졌습니다. 적어도 인터넷에서만큼은, 주인공은 글자가 아니라 사진이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글자는 조역일 따름입니다.(하지만 아주 중요한 조역입니다.) 그러므로 취재를 할 때부터 사진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사진 찍는 방법을 일러드릴 그런 수준은 아니지만 기사에서 담고자 하는 내용과 잘 맞아떨어지도록 찍고, 나아가 그런 내용을 좀더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사진이 주재 하나만 담아서는 밋밋합니다. 저는 주재와 부재를 제각각 하나씩 담기를 권합니다. 말하자면 인물 기사여서 인물이 주인공이라 해도, 그 인물을 앵글 한가운데 덩그마니 놓고 찍어서는 인물조차 제대로 살지 않습니다. 그럴 듯한 배경으로 받쳐줘야 마땅할 것입니다.

 

7. 반드시 퇴고를 합니다

 

문인도 아니고 기자도 아니지만 아주 글을 잘 쓰는 사람 한 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문학적·예술적으로 잘 쓰는 글이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요지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그런 글입니다.

 

그이 동료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글을 잘 쓸 수가 있느냐?’고요. 대답은 이랬습니다. “나는 글 쓰고 나서 스무 번을 고쳐.” 어쩌면 글은 들여다볼 때마다 고칠 데가 생기는지도 모릅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정확하고 세련된 표현은 생각하면 할수록 샘솟듯 나오는지도 모릅니다.

 

강론을 아주 잘 하기로 유명한 신부(神父)가 있었습니다. 그 신부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강론 원고를 쓴 다음에는 꼭 어머니에게 읽어드리고 의견을 물었습니다. 어머니가 잘 모르겠다고 하면 고쳐 썼습니다. 어머니가 좀 이상하다고 일러주는 대목은 손질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잘 알아듣겠다고 하면 아주 기뻐했습니다.

 

그러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부는 어떻게 했을까요? 어쩔 수 없이 그 신부는 차선책으로 자기가 어머니가 돼서 스스로 읽고 고쳤습니다. 어머니라면 이해할 수 있었을까? 어머니한테 어려운 표현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묻고 따졌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사람들이 참가한 수습기자들을 모아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입니다.

8. 한 번 정도 되풀이는 독자에 대한 서비스입니다

 

옛날에는 되풀이가 쓸데없는 노릇이기만 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람들은 대개 기사든 아니든 글을 꼼꼼하게 읽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아시는 그대로 제목만 보고 넘어가기 일쑤고 어쩌다 읽더라도 어지간해서는 낱낱이 따져 읽지는 않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글을 잘 썼다 하더라도 끄트머리에서 한 번 되풀이해서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독자들은 선명한 인상이나 기억을 갖지 못한 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기 쉽습니다.

 

9. 상투(常套)를 쓸 때는 한 번 더 생각해 봅니다

 

‘상투’는 늘 쓰는 투입니다. 상투가 상투가 된 데에는 다 까닭이 있습니다. 보기를 들자면 ‘목불인견(目不忍見)’라는 말이 있습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이라는 뜻이지요.

 

처음에는 이 표현이 산뜻했을 것입니다. 어떤 참상이 있다 했을 때, 참상 그 자체를 그려보이는 것보다 이렇게 차마 눈으로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고 하는 표현이 더 효과적일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어떤 낱말 또는 표현이 이런 산뜻함이나 효과를 갖춰야만 상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상투는 되도록 쓰지 않을수록 좋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고 저는 봅니다. 그런 상투를 제대로 골라서 알맞게 써먹을 수만 있다면, 아무리 상투라 해도 무슨 피해야 하는 나쁜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상투적(常套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조지자면 ‘뻔하다’는 얘기입니다. 처음에는 나름 산뜻함도 있고 어떤 상황을 나타내는 효과적인 표현이다 보니 자주 쓰이게 됐습니다. 하지만 자주 쓰이다 보니 원래 갖고 있던 효과라든지 산뜻함은 퇴색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뻔한 말 뻔한 사연은 사람을 질리게 하고 관심을 갖지 않게 만듭니다. 지금 쓰려고 하는 ‘상투’가 ‘상투적’이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하는 까닭입니다.

 

10. ‘갖다’ 따위 낱말은 적게 쓸수록 좋습니다

 

기자회견을 가졌다, 경기를 가졌다, 행사를 가졌다, 협약식을 가졌다, 수료식을 가졌다, 발대식을 가졌다, 견해를 갖고 있다, 시간을 가졌다, 활동을 가졌다, 간담회를 가졌다, 피로연을 가졌다…….

 

영어 take 또는 have에서 나온 표현들입니다. 70년대 80년대까지는 우리말을 어지럽히는 주범이 일어였다면 지금은 영어입니다. ‘가졌다’는 다른 낱말들이 많이 쓰이지 못하도록 합니다. 획일화가 되면서 다양성을 빼앗습니다. 우리말 곳간이 갈수록 비게 됩니다. 얼핏 생각해도 이렇습니다.

 

‘행사(경기)를 치렀다’, ‘피로연을 베풀었다’, ‘시간을 누렸다’, ‘생각하고 있다(또는 여기고 있다)’. 시간에 쫓기든 어쨌든 어쩔 수 없이 이런 영어식 또는 일본식 표현을 쓸 때는 쓰더라도, 좀더 나은 다른 표현은 없을까 하는 고민까지 거두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김훤주

 

※ 초보 블로거를 위한 글쓰기 십계명(http://2kim.idomin.com/2204)과 함께 읽으시면 좀더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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