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승객 버린 선장, 국민 버린 대통령

기록하는 사람 2014. 4. 2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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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실이 더 안전하니 현재 위치에서 절대 움직이지 마라." 세월호 이준석 선장은 그렇게 승객들을 버려두고 제일 먼저 침몰하는 배에서 도망쳤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한 이도 있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다. 그는 1950년 북한의 남침이 시작되자 국민들에겐 '서울 사수'를 지시해놓고 자기만 몰래 도망쳐버렸다. 6월 27일 새벽 2시였다. 내각과 국회에도 알리지 않은 상태였다.


대전에 도착한 그는 더 기괴한 일을 벌인다. 서울중앙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연설을 녹음하게 한 후 마치 대통령이 서울에 있는 것처럼 꾸며 방송토록 지시한 것이다. 27일 밤 10시부터 되풀이하여 방송됐던 연설내용은 이랬다.


"정부는 대통령 이하 전원이 평상시와 같이 중앙청에서 집무하고 국회도 수도 서울을 사수하기로 결정하였으니 … 국민은 군과 정부를 신뢰하고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직장을 사수하라."


새빨간 거짓말이었으나 대다수 선량한 서울시민은 대통령의 말만 믿고 서울에 남았다. 그러나 이미 소문을 들은 정부 관료와 군·경찰 고위 관계자, 국회의원들은 일제히 가족과 함께 재산을 챙겨 서울을 탈출했다.


더 큰 문제는 거짓연설이 방송된 지 4시간 뒤인 28일 새벽 2시 30분 예고도 없이 한강다리를 폭파해버린 것이다. 다리 위에 있던 수백~수천 명의 무고한 시민이 이 폭파로 죽었고, 피란길은 차단되었다. 이로써 당시 서울시민의 2/3는 속절없이 인민군 치하에 남아야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3개월 후 서울이 수복되자 군경은 서울에 남았던 시민들을 상대로 부역자·협조자 색출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또다시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는 사람들이 처형됐다.


대통령이 이랬으니 전국 곳곳에서도 이런 기만적인 피란 금지령과 직장사수 명령이 횡행했다. 경남 진주도 그랬다. 인민군이 진격해오자 진주시장과 진양군수, 경찰서장은 물론 소방서 직원과 신문사 기자들까지 겉으로는 '진주 사수' '결사항전'을 외치며 시민들을 속인 후 은밀히 진주를 탈출해버렸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안 시민들은 인민군이 시내로 진입하던 7월 31일 새벽에야 피난을 가려 했으나 당시의 유일한 남강다리인 진주교는 군·경에 의해 통행이 금지돼 있었다. 곧이어 군·경은 진주교를 폭파하고 마지막으로 철수했다.


이후 과정도 똑 같았다. 9월 25일 아군의 진주 수복 후 남아 있던 진주의 모든 시민이 부역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그 중 상당수가 처형됐다. 이들 외에도 전국 곳곳에서 수십만 명의 민간인이 단지 '인민군에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집단학살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대통령을 처단하지 못했다. 그는 4·19혁명으로 실각했으나 하와이로 망명하여 천수를 누렸고, 사후에는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침몰 중인 세월호. /연합뉴스


쿠데타로 집권한 대통령 박정희는 이승만 치하에서 학살된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묵살했다. 아니 오히려 유족회 간부들을 구속시키고 발굴된 유해를 파헤쳤으며 비석은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그 또한 인혁당 사법살인 등 수많은 인권범죄를 저지른 후 측근의 총탄에 숨졌지만, 국민의 처단을 받지는 않았다.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대통령 전두환은 또 어떤가? IMF로 국가부도 사태를 불러온 대통령 김영삼은? 온갖 비리에 얽힌 사대강 사업으로 국고를 탕진한 것도 모자라 국정원 등 온갖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을 낳은 대통령 이명박은?


대통령뿐만 아니다. 천안함 침몰 당시 경계 실패와 지휘 책임을 져야 할 해군 장성들은 모두 면죄부를 받거나 오히려 승진했다. 국정원이 간첩을 조작한 사실이 밝혀져도 국정원장은 책임지지 않는 나라이기도 하다. 이번 세월호 재난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런 나라에서 세월호 선장이 승객과 배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았다고 처벌하는 게 오히려 기묘해보인다.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의 책임지지 않는 풍토는 악질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단 한 명도 처단하지 못했던 역사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처단은 커녕 그들이 정부와 군·경을 장악하고, 교육계와 언론계까지 휘어잡았으니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하지만 아직도 친일을 옹호하고, 독재를 칭송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아이들아, 미안하다. 이런 나라를 바로잡지 못한 모든 어른들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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