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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제주올레 완주기 <폭삭 속았수다>

김훤주 2014. 2. 1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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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글 쓰는 이들에게도 매력 있는 고장입니다. 제주도와 제주도것들을 소재로 삼으면 멋진 글이 나올 것 같은 착각들을 종종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서너 차례밖에 다녀오지 않았으면서도 어떻게 제대로 한 번 엮어 ‘제주도 관련 단행본’을 하나 내 볼까, 저조차도 헛된 꿈을 품었더랬습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글쓰기 책내기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고, 더 나아가 나름대로 팔리는 책을 내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대중은 대체로 현명해서, 그 팔리는 흐름을 보면 제대로 된 책인지 아닌지를 절로 알아볼 수 있는 지경이기도 합니다.

 

제주 여행 또는 제주올레 책들 한 번 훑어봤습니다. ‘최신 올레 정보 수록’, ‘100% 현장 답사로 걷기 여행 코스 소개’, ‘제주에 살다시피 머물면서……’, ‘250여 가지 정보 수록’ 따위가 눈에 띕니다. 낱말들이 사람 눈을 어지럽게 합니다.

 

 

제주 관련 책이 서른 가지가 넘는다는데, 그렇지만 대놓고 ‘제주올레 완주기’라고 찍어낸 책은 없었습니다. 2014년 1월 성우제가 도서출판 강을 통해 <폭삭 속았수다>라는, 451쪽에 이르는 1만8000원짜리 여행기를 펴내기 전에는 말씀입니다.

 

성우제는 <시사인> 전신 <시사저널>에서 10년 넘게 기자 노릇을 하다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하고는 스무 살 들어 만나 줄곧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번에 왔을 때도 마산 통술집에서 같이 웃고 떠들며 놀았습니다.

 

“완주를 하면 준다는 ‘제주올레 완주증서’를 받으러 서귀포로 건너갔다. 제주올레 사무국에서 스탬프를 빼곡하게 찍은 제주올레 패스포트 두 개로 나의 완주를 증명했다. 완주증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제주올레 완주증서

완주번호 : JO20130521A017-0059

2013년 5월 21일

성명 성우제

 

당신은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와 오름, 돌담, 곶자왈, 사시사철 푸른 들과 정겨운 마을들을 지나 평화와 자유를 꿈꾸는 제주올레의 모든 코스 약 430km를 두 발로 걸어서 완주한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도보여행자입니다.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성우제.

 

증서 말고도 완주자에게 주는 것이 꽤 많다. 패스포트 두 개에 변시지·이왈종 화백의 완주 인증 그림 스티커를 붙여주고 ‘참 잘했어요’라는 스탬프를 팡~ 하고 찍어준다. 훈장을 달아주더니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나는 제주올레길의 159번째 종주자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이렇게 사실을 증명하는 성우제의 제주올레 완주기 <폭삭 속았수다>가 451쪽이나 되는 데는 다 까닭이 있습니다. 길만을 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길에서 보이는 풍경만 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길에서 만나지는 사람만 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길과 그리고 길에서 보이는 풍경과 길에서 만나지는 사람은 물론 기본으로 다룹니다. 그러니까 제주올레가 품고 있는 그래서 누구나 가기만 하면 느낄 수 있는 사람과 자연과 문화는 당연히 담겨 있습니다.

 

성우제는 제주올레 완주기 <폭삭 속았수다>에서 제주도와 제주도 사람들에게 새겨진 역사와 물정과 인정까지 끌어냅니다. 역사는 거기 사람들 마음과 몸에 원래부터 그러한 듯 박혀 있고, 물정과 인정은 때때로 비정하다는 느낌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하기야, 이래저래 맞춰보면 우리 삶 어느 구석인들 비정이 끼어 있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주도 바다.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

 

“제주도 출신 재일교포는 마을마다 없는 곳이 없다. 일본에 있는 제주도 사람들은 어느 마을 출신이건 땀 흘려 번 돈을 고향 마을 발전기금으로 기부했다. 오조리는 그 문화를 내게 보여준 첫번째 마을일 뿐이다. 마을마다 재일교포 공덕비가 서 있다.

 

일제강점기의 혹심한 수탈과 가난, 4·3사건 등으로 쫓겨나다시피 하면 일본으로 건너간 제주 사람들, 그들은 참담한 고통 속에서 번 돈을 고향에 희사했다. 온갖 수모와 고생을 견뎌가며 번 피눈물 젖은 돈이었다.

 

육지에서는 애향심이 고루한 말로만 남아 있는 경우가 많지만, 제주도에서는 지금도 곳곳에서 애향심이 살아 숨쉰다. 제주도에는 육지에서 상상도 하지 못하는 문화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마을 사람들의 기부 문화는 놀라움을 넘어 말 그대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외국에 살아보면 안다. 오로지 믿을 것이라고는 자기 몸뚱어리 하나밖에 없는 낯선 땅에 살면서, 자기 가족도 아닌 마을 발전을 위해 큰돈을 쾌척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한 개인의 선행이 아니라 제주도 전체가 공유한 집단 문화라는 사실은 고향에 대한 제주도 사람들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를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증표이다.”

 

<폭삭 속았수다>는 이렇게 제주도 여느 마을에서 만날 수 있는 공덕비 무리 하나를 갖고도 아래위로 역사와 문화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제주도 사람들한테는 심상한 얘기일는지 모르지만 바깥에서 다니러 온 사람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폭삭 속았수다>를 두고 ‘트레일 문화가 오랫동안 뿌리내린 캐나다에서의 경험까지 보태 제주의 빼어난 풍광과 가슴 아픈 역사와 독특한 풍습을 섬세하게 포착한 역작’이라 평한 까닭이 이런 데 있지 싶습니다.

 

서명숙 이사장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올레길을 걷는 복을 누렸을 뿐 아니라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는 행운까지 누렸던 것’이라 했습니다. 성우제도 이렇게 말합니다. ‘길이 품고 있는 사연과 더불어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들려준 바로 그 이야기를 적은 것’이라고요.

 

길은 사람 속으로 나 있어야 제대로 된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주올레가 그런 길입니다. 제주올레는 마을 속으로 들어가고 사람이 사람과 만나면서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됩니다. 아름다운 풍경은 어쩌면 배경일 뿐일 수도 있습니다. 제주올레를 제대로 걷고 소개하려고 펴낸 <폭삭 속았수다>입니다.

 

성우제는 <폭삭 속았수다>에서 자기를 돌아보는 모습을 때때로 보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절실한 사람들은 그런 대목에서 울먹일 수도 있을 텐데, 이는 길 또는 걷기에 고유한 치유 효과에서 비롯되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폭삭 속았수다 - 10점
성우제 지음/강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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