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인간 잔인함의 뿌리는 도대체 무엇일까

김훤주 2008. 6. 28. 02:24
반응형

1. 모든 사람은 무지할 때 잔인하다

어린 시절 기억입니다. 잔디밭에서 땅거죽을 파면서 놀고 있습니다. 아니면 마당 한 쪽 구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땅 속에는 개미집이 있습니다. 개미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습니다.

개미집을 손에 든 나뭇가지 따위로 이리저리 들쑤셔 놓습니다. 개미들은 난리라도 난 듯이 갈팡질팡합니다. 저는 또 침을 뱉거나 오줌을 누거나 해서 물 속에서 개미들이 허우적대는 꼴까지 들여봅니다. 그러다 재미가 없어지면 개미들을 발로 쓱 뭉개고 일어납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조금 더 자란 시점입니다. 잠자리를 잡았습니다. 꽁지에다 화약을 박아 넣고 불을 붙이고는 날립니다. 자유를 얻은 잠자리는 좋아라 날아갑니다. 날아가다가 화약이 팍 터질 때 잠자리도 터져 죽습니다. 어린 저는 그렇게 터지는 꼴이 즐겁습니다.

어린 시절 이런 기억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 고등학교 때 친구가 동생과 함께 했다는 일입니다. 쥐와 관련된 것입니다. 어릴 적에는 학교에서 쥐를 잡아오라 시켰습니다. 쥐를 잡아 꼬리를 잘라 오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쥐가 많았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어린 제 친구도 쥐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잡은 쥐를 하나는 자기 쥐 하나는 동생 쥐 이렇게 해서 달리기를 시킵니다. 달리기를 시키기에 앞서서, 이 쥐들에다가 석유를 끼얹습니다. 그렇게 끼얹은 석유에다 성냥을 그어 불을 붙입니다.

그렇게 불이 붙은 쥐는 용하게도 물이 있는 데를 알아서 그 쪽으로 죽어라 달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동생 쥐와 자기 쥐에게 달리기를 시키고 결국에는 불에 타 죽고 맙니다.

개구리 이야기도 빠질 수 없습니다.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 먹었다는 정도에서 그치면 그래도 좋은 편입니다. 이런 식입니다. 개구리 똥구멍에다 보릿대를 꽂습니다. 이 보릿대에 입을 대고 공기를 불어넣습니다. 개구리는 그러면 배가 아주 빵빵해집니다.

이렇게 우리는 어린 시절에 생명 있는 짐승들을 괴롭히면서 놀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야말로 인간으로서 할 짓이 못되는 놀이를 그 때는 날마다 일삼아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이런 결론을 얻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상대하는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를 때 잔인합니다.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 본성이 이것인지 저것인지 따위 말입니다.

2. 모든 사람은 돈독이 오르면 잔인해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번에는 다 크고나서 겪은 일입니다. 사천 한 바닷가에 간 적이 있습니다. 도로를 타고 가다가 오른편으로 아주 그럴싸한 풍경을 끼고 앉은 동네가 있었습니다.

들러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랑 아이들이랑 함께 들어갔습니다. 이상하게 마을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자동차에서 내리니 역겨운 냄새까지 확 끼쳐왔습니다.

사람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돼지 멱따는 소리가 줄곧 들려왔습니다. 그냥 꿀꿀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으로 치자면 절규하듯이 울부짖는 꽤애액 꽥꽥, 하는 소리였습니다.

지붕은 물론 벽까지 푸른 콜타르로 완전 밀봉을 해 놓은 슬레이트 지붕 건물이 곳곳에 있었습니다. 문은 꽉 닫혀 있고 창문조차 반쯤 투명한 비닐로 막혀 있었습니다. 소리는 바로 거기에서 나고 있었습니다.

이쯤에서 그냥 돌아갔으면 좋으련만, 저는 호기심을 못 이겨 문을 조금 열고 안쪽을 보고 말았습니다. 꽤애액 꽥꽥, 울부짖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고 역겨운 냄새도 더욱 심해졌습니다.

무엇보다 돼지들이 그야말로 몸 돌릴 틈도 없이, 바닥은 온갖 똥오줌으로 질척대고, 돼지 몸통에도 그런 따위가 묻어 있고, 어깨를 맞부딪혀 가며 앉지도 못하고, 죄다 서서 우글거린다는 사실 자체가 저를 더욱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짐승이지만 진짜 너무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내가 돼지라면, 그런 환경에서 미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길러지는 돼지들은 아무래도 머리가 원래대로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바닷가로 가면 좀 다르겠지 하면서 발길을 옮겼습니다. 마을에 들어올 때, 바닷가 바위가 유난히 거무튀튀하고 무거운 느낌을 주는 데에 저는 눈길을 뒀었습니다. 왜 그럴까 궁금증이 일었던 것입니다.

가서 보니까, 세상에, 그것은 바위의 원래 빛깔이 아니고 덧입혀진 무엇이었습니다. 돼지 공장에서 흘러나와 쌓이고 쌓인 찌꺼기였습니다. 오랜 세월 쌓이는 동안 물기는 죄 빠져나가고, 딱딱하게 굳은 채로 바위들에 들러붙은 찌꺼기들이었습니다. 두께도 한 자는 돼 보였습니다.

3. 탈출한 새끼돼지를 잡던 어린 시절 기억

사용자 삽입 이미지
퍼뜩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국민학교 3학년 때지 싶습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가을이었던 모양입니다. 뒤뜰에 있던 돼지우리에서 돼지 새끼 한 마리가 탈출을 했습니다.

그날따라 어른이 없었던지라, 네 살 위 작은형이랑 저는 비를 맞으며 집안을 뺑뺑 돌면서 돼지를 잡는다고 법석을 떨었습니다. 새끼 돼지가 제가 있는 쪽으로 달려올 때 제가 잡았다가 힘이 밀리는 바람에 미끈거리는 그 녀석을 놓쳐 형한테 야단을 맞기도 했습니다.

저 안에 있는 돼지들이 무리 지어 박차고 나오면 어떻게 될까, 얌전하게 꿀꿀거리기만 하던 새끼돼지 한 마리로도 난리를 떨었는데, 제 정신이 아니라 꽤애액 꽥꽥 울부짖기만 하는 이 커다란 돼지들이 복수라도 하겠다고 덤비면 완전 난리도 아니겠구나…….

저는 사천 바닷가 돼지 공장에서 또 다른 결론을 하나 얻었습니다. 사람은 눈에 돈독이 오르면 잔인해집니다. 돈독이 오르면 자기가 상대하는 그것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없어집니다. 생명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오로지 돈이 되느냐 아니냐로 판가름하는 기준이 바뀌게 됩니다.

4. 광우병, 돈독 오른 국제 축산자본의 작품

지금 우리 사회를 들썩거리게 하는 광우병도 사람들 눈에 돈독이 오른 결과입니다. 짐승의 뼈와 고기를 소 먹이로 쓰면, 버리는 비용 아껴서 한 번 좋고! 먹이 값 줄여서 두 번 좋고!! 빨리 자라게 해서 세 번 좋고!!! 입니다.

그리 한 결과 소가 광우병에 걸리게 됐습니다. 두뇌에 구멍이 숭숭 뚫린다니 매우 아플 것입니다. 아주 잔인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광우병 소의 고통 등에 대해서는 고개를 돌리고 자기네들 인간광우병에 걸리는 것만 따로 떼어내 생각을 하고 입에 올립니다.

저는 생각을 촛불로 표상되는 지금 국면에까지 넓혀봤습니다. 현재 초점은, 주제를 광우병으로만 한정지어 보자면, 광우병 위험 쇠고기가 수입이 되느냐 마느냐입니다. 이른바 30개월령(個月齡)이니 아니니, 위험물질이니 아니니 따위 논란이 바로 그렇습니다.

저는 생각하기를, 언젠가는 광우병 관련 실천이 지금 단계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소를 비롯한 모든 초식 동물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면 안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나아가 이를테면 소나 돼지를 기르려면 한 마리마다 가로세로 3m 정도씩은 마련해줘야 한다는 운동도 벌여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사람들 눈에 잔뜩 오른 돈독을 벗겨내는 작업입니다. 동시에 동물의 권리는 물론 사람의 건강 따위조차도 아예 관심이 없고 오로지 이윤 추구에만 눈에 핏발을 세우는 대규모 국제 축산 자본의 밑천을 송두리째 덜어내는 작업입니다.

동물도 동물답게 살 권리가 있고 이것을 사람이 보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도 안전하게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생각처럼 쉽게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싸워야 하는 상대가 아주 굉장하고 힘센 존재들이거든요.
 
그렇다고 쉽사리 포기해도 되는 일은 더더욱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 바람직한 질서와도 관련이 되고, 아무리 의미를 줄여잡아도 사람이 죽고 사는 사안은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져야 할 짐 가운데 하나라고 여기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김훤주

감시와 처벌 상세보기
미셸 푸코 지음 | 나남 펴냄
처벌의 종류와 감시방법, 감옥의 탄생과정을 심층적으로 고찰한 책. 감옥과 처벌의 내면적, 외형적 변화를 통해 근대 이후의 행형사법제도와 권력의 관계를 규명하고 있다.감옥을 정점으로 하는 감시 처벌의 기구인 가정, 학교, 군대, 병원, 공장 등을 분석하고 사실상 근대사회를 감금사회, 관리사회, 처벌사회, 감시사회로 이해하였다. 이 책은 외형적인 형벌의 변화도 결국 권력의 자기보호책이었음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보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