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밀양 초토화한 한전, 월영동도 박살낼까?

김훤주 2013. 9. 1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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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MBC경남의 라디오광장 세상 읽기 원고입니다. 저녁 6시 30분 어름에 방송됐습니다. 이번에는 마산 월영동 일대 송전철탑 설치를 둘러싼 다툼을 다뤘습니다. 


밀양에서는 이미 여덟 해째 송전철탑 설치를 두고 한전이 주민과 맞서고 있습니다. 밀양과 마산을 비교·대조해 보면 어떨까요?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을까요? 일단 규모가 다르고 전압이 다르고 단체장의 태도가 다릅니다. 


다음으로 같은 점을 꼽아보면 한전의 태도가 똑같고 주민 건강권·재산권이 침해된다는 점도 같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까 주민들이 한전에 반대하는 것도 같습니다. 물론 그 반대하는 정도는 다르겠지만은요.(일부 시간이 모자라 방송하지 못한 대목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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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진 아나운서 : 안녕하세요? 


김훤주 기자 : 밀양에서 한전이 초고압 송전철탑 건설 문제로 8년째 주민들과 갈등하고 있지요? 그런데 창원 마산합포구에서도 송전철탑 설치에 나서 주민들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1.6㎞ 구간에 15만4000V 송전탑을 월영동 네 개 예곡동 한 개 해서 모두 다섯 기를 건설하겠다는 것입니다. 


진 : 그렇지요. 지난달 말 알려지면서 현안이 되고 있습니다. 밀양과 비교해 보면 좀 어떤가요? 규모가 많이 작은 것 같은데요. 


주 : 먼저 전압이 마산 월영동에서는 15만4000V로 밀양 76만5000V보다 크게 작습니다. 전자파도 밀양이 훨씬 많고 마산은 적겠습니다. 거리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신고리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을 송전려고 부산 기장, 울산 울주, 경남 양산·밀양·창녕에 걸친 90.5㎞ 구간에 모두 161개 송전탑을 건설하는데요, 그 절반에 가까운 69개 철탑이 밀양에 들어서도록 계획돼 있습니다. 


주거지역과 동떨어진 도로공사 현장 사무소에 열린 주민 설명회. 경남도민일보 사진.


진 : 그렇게 규모가 훨씬 작은데도 사람들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주 : 먼저 밀양에서 제가 되는 바람에 사람들이 송전탑이 들어서는 위험성을 좀더 쉽게 알게 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옛날에는 한전에서 송전탑을 세우겠다 하면 나라에서 하는 일이고 전체를 위하는 일인데 참아야지 하고 넘어갔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그렇지 않습니다. 


진 :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을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주 : 서마산변전소에서 마산 지역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전선이 하나뿐이고 이 송전선이 재해 등으로 훼손되면 전력 공급이 끊어지기 때문에 송전선로를 하나 더 만들어 안전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비용은 20억원이 책정돼 있습니다. 문제는 송전선이 대규모 아파트와 학교 같은 인구 밀집 지역을 통과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주민들은 매설, 지중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1. 지중화 주민 요구를 한전이 받아들였다고?


진 : 그런데 밀양에서는 지중화는 물론이고 우회도 안된다던 한전이 주민들 요구대로 주민 요구를 일부나마 받아들여 대안을 제시했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어떤가요? 


주 : 주민들이 요구한 지중화와 관련해 한전이 방안을 내놓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형식만 그럴 뿐이고 실제로는 원래대로 하겠다는 데에 더 무게가 실려 있는 것 같습니다. 


주민들은 지중화를 하더라도 사람 사는 마을과 떨어진 임야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한전은 그냥 단순히 월영동 일대 선로를 지중화하는 안을 제시하면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원안대로 강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진 : 보도를 보면 한전이 한 가지 안이 아니라 모두 세 가지 안을 제시했다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주 : 월영동 일대만 지중화하는 안 말고도 두 개를 더 내어놓기는 했습니다. 하나는 청량산 임도를 활용하는 방안이고 다른 하나는 밤밭고개와 국도 2호선을 활용하는 방안입니다. 


그런데 한전은 둘 다 불가능하거나 어렵거나 토지 사용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사실상 월영동 일대 지중화 방안 하나밖에 제시하지 않은 셈입니다. 


밀양 주민들. 경남도민일보 사진.


2. 한전 편드는 밀양시장과 달리 주민을 편드는 창원 단체장


진 : 그런데 자치단체의 태도가 밀양시와는 많이 달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고요. 밀양은 시장이 한전 편을 드는 반면 창원은 합포구청장이 주민 편을 든다고 들었습니다. 


주 : 물론 밀양도 시장님이 처음부터 한전을 편들지는 않았습니다. 능동적·적극적으로 주민들을 찾아다니면서 아픈 데를 어루만지지는 않았지만, 말양 엄용수 시장님도 한전이 내는 개발 행위 허가 신청을 보류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막판에 와서 주민들더러 한전이 바라는대로 보상을 받고 끝내라 하고 이제는 관변 단체들까지 나서서 지역 주민들을 을러대고 있습니다. 


하지만 창원은 아무래도 박완수 시장님의 의지가 반영됐지 싶은데, 송전선로 지나가도록 돼 있는 지역을 관할하는 마산합포구 구청장님이 주민들과 합의하지 않는 이상 한전이 낸 허가 신청을 불허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전이 지난달 21일 개발제한구역 공작물 설치 행위와 장비 진입을 위한 산지 훼손에 대한 허가를 마산합포구청에 신청을 했는데 이를 허가하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구청장님은 그 사유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송전탑 건설 필요성에 공감하고, 기술적으로 지중화가 어려운데다 비용도 7∼8배 더 들어간다는 한전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구청으로서는 주민의 건강권과 재산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진 : 일단 밀양처럼 극한 대결로 치닫지 않도록 완충 작용을 했으니 그 자체로도 잘한 노릇이지만 나아가 주민 건강권과 재산권을 송전탑 건설보다 앞세웠다는 점에서도 올바른 가치 판단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마산합포구 구청장은 중재 노력도 적극 하겠다고 얘기했다지요? 


주 : 구청장님은 지난 3일 한전이 예산을 늘려 지중화가 가능하면 가장 좋고 그렇지 않으면 한전의 산지 훼손 신청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못박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현장을 여러 차례 찾아가고 대안을 마련하려 했으나 아직 뾰족한 방법을 찾지는 못했고, 하지만 한전과 주민이 만나 원만하게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조정과 중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어정쩡하게 있다가 막판에 한전을 편드는 밀양시장님하고는 크게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3. 밀양과 창원, 단체장 태도가 다른 까닭은 뭘까?


진 : 밀양과 창원의 단체장 태도가 아주 다른데요. 이런 차이가 생긴 까닭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가요? 


주 : 마산과 밀양은 비슷한 경험과 기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두 군데 다 대규모 민원이 제기된 적이 있고 또 모두 주민들이 승리를 거뒀습니다. 


밀양은 얼음골 먹는샘물 공장 문제로 단장면 감물리 주민들이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면서까지 싸워 물리쳤고 마산도 구산면 수정만 매립지에 STX조선기자재 공장이 진입하지 못하도록 수정 주민들이 싸워 이겼거든요. 


이렇게 기억과 경험이 비슷한데도 지금 나타나는 자치단체의 태도는 180도 다릅니다. 한 쪽은 주민을 존중하고 다른 한 쪽은 주민을 무시합니다. 아무래도 두 분 시장님의 성향 또는 주민을 대하는 자세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지 않겠느냐는 얘기를 먼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전국송전탑반대네트워크가 9월 4일 국회에서 열었던 765kv송전탑 지역 답사 보고대회. 경남도민일보 사진.


거기에 더해 밀양은 송전탑 건설이 국책사업이라 할만큼 규모가 크고, 그래서 일개 시장이 주민 편에 서서 개입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반면 마산합포구는 단체장이 손쉽게 결단해도 될 정도로 지역에 국한되는 조그만 사업이라는 점이 다르지 않을까요? 


진 : 과거 경험을 두 지역이 비슷하게 공유하고 있는데도 이런 차이가 나오는 배경에는 설치되는 송전탑의 규모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는 사실이 있다는 얘기군요. 이번에는 한전의 태도를 한 번 비교해 볼까요? 


4. 한전 태도는 밀양이나 창원이나 매한가지


주 : 송전탑 설치에 나서는 한전의 태도는 밀양이나 창원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한 번 정한 노선은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적 보상을 통해 해결하려 하는 자세도 같습니다. 마산에서 한전은 마을회관을 지어주는 보상책을 생각했습니다만, 주민들이 그런 보상에 자신들의 건강과 재산을 넘기지 않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벽에 부닥쳐 있습니다. 밀양은 아주 많이 알려져 있어서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진 : 앞으로 진행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밀양처럼 극한으로 치달을까요? 


주 : 여태까지 한전이 보여온 행태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주민들이 물러서지 않을 경우는 극한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전에게는 밀양처럼 대규모냐 아니면 월영동 일대처럼 소규모냐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크든 작든 선례를 남기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5. 물러선 적 없는 한전, 그러나 이젠 기본 정책 바꿔야


송전철탑. 경남도민일보 자료 사진.


제가 알기로는 이렇게 송전탑 세우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전이 물러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한 지역에서 주민들 요구를 따라 물러서면 그것이 선례가 돼서 다른 지역에서도 주민들 요구대로 끌려다니고 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진 : 그런 사정이 있군요. 어쨌든 한전이 내세우는 이유는 비용 문제와 기술적인 문제지요? 어떻게 좋은 방안이 없을까요? 


주 : 하나마나 한 말이지만, 한전이 태도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아무리 공익 목적이고 사회 전체를 위한 일이라 해도 그 구성원 개인개인에게 그로 말미암는 피해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거든요. 


지역 주민들의 권리를 완전하게 보장하면서 전력을 공급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송전탑 문제를 최소화하려면 송전선 까는 거리를 줄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핵이 됐든 화력이 됐든 전력 소비가 많은 지역에 발전소를 짓는 식으로 기본 정책을 전환할 필요성도 저는 있다고 봅니다. 


진 : 결국은 당장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는 얘기가 되겠군요. 오늘 얘기는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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