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홍준표, 오랜만에 옳은 얘기 한 마디 했다

김훤주 2013. 8. 1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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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이 이명박 선수 물러나자 마자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강물 흐름을 막았으니 당연히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운하가 속임수였다는 것은 사실 문제도 아닙니다. 대운하를 하든 말든, 거기 물이 깨끗해진다면 아무 관계없는 얘기이기 때문입니다.('망구' 제 생각일 뿐입니다만)

 

물론 어쩌면 4대강 사업에서 도랑 살리기가 없었던 것이 다행일 수도 있습니다. 여태 했던 식으로 했다면 조그만 도랑 곳곳에도 보를 설치하고 바닥을 파내고(준설하고) 한다고 난리를 떨었을는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수질 개선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면, 그리고 상식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진정으로 ‘4대강을 살리고 싶다면’ 도랑 살리기를 가장 먼저 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국토의 실핏줄을 썩은 그대로 내버려 두고 대동맥이나 심장을 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이와 관련해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오랜만에 옳은 얘기를 했습니다. <경남신문> 8월 13일치를 보면, 홍준표 선수가 "녹조는 상류에서 질소나 인이 들어 이쓴 축산폐수 또는 생활하수가 들어오기 때문"이라면서, "지천의 하수관거 정비가 우선"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지천' '하수관거' 같은 표현이 조금 어색하고 다르기는 하지만, 요지는 낙동강을 비롯한 4대강의 본류가 아니라 거기로 흘러드는 이런저런 물줄기들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물론 딱 여기까지만 맞습니다.

 

 

4대강 사업 문제, 말하자면 함안보 등등 4대강 본류에 들어선 이런저런 시설들을 둘러싼 정치 공방을 두고 "정치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든지, 이러저런 보 때문에 "오히려 수량이 풍부해져 녹조 현상이 다른 해보다 줄었다"고 했다든지 하는 얘기는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틀린 말입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얘기들이 활발해지는 가운데, 7월 29일 MBC경남의 ‘라디오 광장’ ‘세상 읽기’에서는 이 도랑 살리기를 갖고 얘기를 한 번 풀어봤습니다. 진짜 강 살리기는 도랑에서 시작이 돼야 마땅합니다. 이명박 선수 4대강 살리기는 그래서 엉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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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해바다는 물론 태평양까지 쓰레기로 넘쳐나고

 

서수진 아나운서 :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준비하셨나요?

 

김훤주 기자 : 홍수가 나고 태풍이 불면 바다가 쓰레기로 넘쳐난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또 태평양 한가운데 한반도보다 10배나 큰 쓰레기섬이 두 개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요.

 

진 : 그래요. 특히 경남에서는 거제 앞바다에 여름철마다 쓰레기가 쌓여 관광객 감소나 어업 환경 피해는 물론이고 치우는 비용만도 150억원에 이른다고 하죠.

 

거제 바다를 뒤덮은 쓰레기들. 경남도민일보 사진.

 

주 : 태평양 쓰레기섬은 일본과 하와이 사이에 있다는데요, 1960년대 만들어져 10년마다 열 배씩 커져 왔고, 사람이 만든 인공물 가운데 가장 크다고 합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쓰레기 더미가 인류 사상 최대 인공물이라 하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진 : 그런 바다 쓰레기가 왜 생길까요? 바다에서 살아가는 어민들 때문일까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주 : 물론 어민들이 버리는 쓰레기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은 육지에서 흘러왔습니다. 낙동강의 경우 평소는 하굿둑에 막혀 내려가지 못하다가, 홍수 등으로 수문을 열 때 한꺼번에 빠져나가 바다를 뒤덮게 됩니다.

 

성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나뭇가지와 갈대, 그물, 스티로폼, 상자, 페트병과 유리병, 사람 옷가지,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은 물론 소나 돼지 같은 가축도 간혹 섞여 있습니다. 죄다 뭍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2. 바다 떠도는 쓰레기 대부분이 뭍에서 나와

 

진 :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말해서, 거제 앞바다가 쓰레기로 더럽혀지지 않고 태평양 쓰레기섬이 조금이라도 크기를 줄이려면 뭍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줄이면 되겠네요.

 

주 : 바로 그래서 도랑 살리기 운동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자기 마을 앞을 지나는 도랑을 되살려서 맑고 깨끗하게 유지해 가자는 취지로 벌이는 운동인데요, 우리나라에서 경남 지역이 가장 먼저 시작했고, 경남에서는 산청 금서면 수철마을이 가장 먼저였습니다.

 

수철마을 도랑살리기 표지판.

 

진 : 지난해 보도를 보니까 창원시 북면 신음마을이 도랑살리기 발원지로 꼽혔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이 아닌가 보지요?

 

주 : 창원시 차원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얘기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자치단체 차원에서 조직적·체계적으로 도랑 살리기 운동을 벌이는 곳으로는 전국 차원에서 봐도 창원시가 으뜸입니다. 그만큼 열성입니다.

 

3. 실핏줄이 깨끗해야 동맥에 문제가 없듯이

 

진 : 도랑이라면 실개천이잖아요? 낙동강 본류에서 보자면 가장 보잘것없는 존재이기도 하고 물줄기가 시작되는 근원에 가까운 존재로 볼 수도 있는데, 사람 몸으로 치자면 심장과 동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실핏줄, 모세혈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주 : 도랑 살리기 운동이 중요한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는데요, 근본이 되는 국토의 실핏줄을 맑게 하고 더럽히지 않는 운동입니다.

 

말씀대로 실핏줄이 더러우면 언젠가는 심장이나 대동맥을 도는 피도 더러워질 수밖에 없고, 반대로 실핏줄이 깨끗하면 마찬가지 심장이 대동맥도 언젠가는 깨끗해지게 마련이거든요.

 

진 : 그런 도랑 살리기 운동을 창원시가 열심히 하고 있다고요. 그 까닭이 무엇일까요?

 

주 : 이번 달만 해도 동읍 금산·마룡·자여마을 주민이 도랑 살리기 발대식을 했습니다. 지난해까지는 신음마을이 있는 북면 일대에 도랑 살리기 운동이 집중돼 있었는데 올해 들어 동읍으로 영역을 넓힌 셈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박완수 창원시장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고요 한국생태환경연구소처럼 창원에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수철마을 도랑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 모습.

 

진 : 그러면 그런 도랑 살리기 운동이 벌어지는 데가 몇 군데나 되는가요? 우리 경남에?

 

주 : 정확한 집계는 없습니다. 2011년까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는데 지난해를 거치고 올해 들어서는 크게 늘어나 쉰 마을 정도가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창원 김해 진주 같은 도시는 물론 창녕 거창 함양 같은 시골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낙동강유역환경청도 민간단체 지원을 통해 도랑살리기를 거들고 있습니다.

 

4. 하지만 정부와 자치단체의 관심은 아직도 적고

 

진 : 그렇다면 도랑 살리기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괜찮을까요? 충남이나 울산 같은 다른 지역에서 견학을 오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거든요.

 

주 :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사실 그렇지 못합니다. 낙동강 권역에 도랑이 2만 개 가량 있다고 보면 경남에 줄잡아 7000개 정도고요, 7000개 가운데 50개밖에 안 됩니다. 게다가 마을이 도랑 살리기를 하는 경우는 도랑 전체가 아니라 마을 앞을 흐르는 몇 백 미터가 대상이거든요. 이렇게 보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적어집니다.

 

진 : 같은 도랑이라도 같은 대접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것 같은데요, 자연 상태 그대로 유지가 잘 돼서 더 이상 손 볼 데가 없는 경우는 일부러 도랑 살리기를 하는 자체가 우스울 수도 있겠고, 어떤 데는 특히 도심의 경우 아예 복개가 돼 버려서 도랑 살리기를 할 수조차 없는 경우도 있겠고요.

 

주 : 그렇습니다. 지금 진행되는 도랑 살리기는, 마을 주민들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을 보태면 금방 살아날 수 있는 그런 데가 대부분입니다. 이렇게만 해도 물이 훨씬 깨끗해져서 사람한테 많은 이득을 돌려주고 있습니다.

 

함안보 모습. 얼핏 봐도 강물이 어두운 녹색입니다.

 

진 : 어떤 이득이 있는가요? 마을 앞 도랑을 흐르는 물이 맑아진다 해서 이득이 될 수 있는 그런 것이 금방 떠오르지는 않는데요.

 

5. 도랑이 살아나면 마을이 활기차진다

 

주 : 첫째는 도랑 둘레 농경지에 농약이나 화학 비료를 쓰지 않는 변화입니다. 이래서 해당 지역 농산물 브랜드 가치가 높아진 사례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요즘 시골은 인구도 줄었고 찾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물이 살아나고 더불어 마을 가꾸기로 벽화도 만들어지니까 찾는 사람이 늘었고요, 물놀이터까지 갖춘 경우 설 추석 때만 겨우 찾던 손자손녀들이 자주 찾아와 좋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썰렁한 마을에서 사람 사는 티가 나는 마을로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진 : 찾는 사람 없는 마을에서 사람들 드나드는 마을로 바뀌었네요. 마을 어르신들 쓸쓸함이나 외로움 같은 것이 많이 가셨겠습니다. 그러니까 자연 환경을 되찾는 데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공동체를 회복하는 운동이군요. 그런데 아쉽거나 모자라는 구석은 무엇일까요?

 

도랑살리기로 깨끗해진 수철마을도랑.

 

주 : 그래서 내건 지표가 바로 ‘물고기 노닐고’와 ‘아이들이 물놀이하는’, 두 가지입니다. 이 두 가지가 가능하면 도랑 살리기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아쉬운 것이 하나는 자치단체의 관심이고요, 다른 하나는 법령 정비입니다.

 

6. 제도와 법령 바깥에 팽개쳐져 있는 우리네 도랑

 

진 : 조금 설명해 주시죠.

 

주 : 도랑을 관장하는 법령이 없습니다. 하천법과 소하천정비법 두 개가 있는데요, 이는 건축·토목 측면에서 개발·관리하는 법령인데다, 조그마한 도랑은 그 대상도 아닙니다.

 

8월 7일 함안보에서 배를 타고 낙동강을 둘러보고 있는 홍준표 선수. 경남도 사진.

도랑이 제도권 바깥으로 팽개쳐져 있는 꼴인데요, 그래서 자치단체가 도랑 살리기 활성화 조례 같은 것도 만들기 어렵습니다. 공무원과 자치단체는 법령에 따라 일할 수밖에 없는데, 도랑을 다루는 법령이 없다 보니 이들의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습니다.

 

진 : 국토의 실핏줄을 맑게 하는 도랑 살리기 운동을 규율하고 지원하는 법령이 없다니 안타깝군요. 앞으로 그 필요성을 말하는 소리가 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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