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경남 할매들이 복면 쓰고 윗옷 벗은 까닭

김훤주 2013. 6. 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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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76만5000볼트짜리 송전철탑 건설 공사가 일단 멈춰섰습니다. 5월 29일 한국전력과 주민들이 ‘전문가협의체’를 구성하고 40일 동안 협의하며 이 기간에는 공사를 하지 않기로 합의한 덕분입니다. 20일 공사를 새로 시작한 지 열흘만입니다.

 

밀양 송전탑 건설 공사는, 주민들 처지에서 볼 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떨어졌습니다. 사실상 토지 강제 수용입니다. 전자파 피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그 탓에 한 평생 살아온 터전을 잃게 됐습니다.

 

송전탑이 지나가는 땅은 농협조차 재산 가치를 인정하지 않아 담보로도 잡을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런데도 주민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배제돼 있었습니다. 다만 피해를 강요당할 뿐이었습니다. 일흔·여든 되신 어른들이 몸을 던져 싸우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1. 누가 할매들의 윗옷을 벗기는가?

 

그 가운데 한 분인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 자결한 까닭도 여기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밀어부치는 정부와 한전이 이 어르신들을 싸움꾼으로 만들었습니다.

 

5월 20일 한전의 공사 강행이 다시 시작됐을 때, 또 사람들 죽고 다치는 일이 어쩌면 일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 모로 험한 꼴을 보고야 말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사람이 죽는 일은 없었지만 다치는 일은 많았나 봅니다.

 

주민대책위원회와 마산창원진해환경운동연합이 연신 보내오는 문자에는 다치거나 실신해서 실려갔다는 내용이 줄을 이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마창진환경연합은 사진도 보내줬는데요 참 눈물겨운 장면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굴착기 삽날에 들어가 있는 할머니나 기계 아래에 들어가 쇠사슬을 두르고 자물쇠를 한 사진은 오히려 낫습니다. 한전 직원 같아 보이는데, 무리를 이룬 그이들 앞에서 윗옷을 벗은 할머니가 일어서서도 있고 쪼그리고 앉아서도 있습니다. 무슨 장면인지 충분히 짐작이 됩니다.

 

 

힘없는 할머니가 무엇인가를 지키거나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고 옷을 벗은 것입니다. 과연 누가 이렇게 옷을 벗기고 다치게 하고 죽게 하는지요? 당장은 한전과 중앙정부입니다.

 

2. 이런 일이 밀양이 처음이 아니다

 

핵발전이 필요하냐 아니냐 논란이나 초고압 송전에 따른 전자파 피해가 있느냐 없느냐 따위를 거론하기 앞서, 밀양 이 할매들 의사를 존중하기만 했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앙정부와 한국전력은 밀어부치기만 했습니다. 결정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배제돼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한 번 결정되고 나서는 다른 좌고우면(左顧右眄)이 없었습니다. 한전과 정부가 결정하면 주민은 따라야 한다, 입니다.

 

저는 우리 경남 지역 할매들이 이렇게 웃통을 벗어젖힌 적이 이번이 처음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STX가, 마산시와 짜고, 해당 지역 주민은 무시한 채로 강행하려 한 이른바 ‘STX조선기자재 공장 수정만 진입 기도’ 사건입니다.

 

수정 주민 찬반투표 개표 현장. 황철곤 당시 마산시장이 마이크 앞에 있습니다. 당시 마산시는 노골적으로 개입하고도 절반조차 얻지 못했으나 결과를 왜곡해 사태를 악화시켰습니다.

 

마산 구산면 수정 마을 주민들은 2007년 10월부터 4년 가까이 STX의 수정만 매립지 진입에 반대했습니다. 그 결과 2011년 5월 16일 (한 해 전에 마산시와 통합한) 창원시가 ‘STX 중공업(주) 수정산업단지 조성 포기 입장 표명’을 했습니다.

 

이로써 중학교와 바로 붙은 공장, 마을 한가운데 있는 공장, 마을과 왕복 2차로로 붙은 공장이 들어서지 않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마산시는 주민을 분열시키려 했습니다. 기득권 세력은 수정 마을 사람들을 ‘집단이기주의’로 몰아치고 ‘마산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라 규정했습니다.

 

2011년 6월 치러진 수정 마을 숭리 축하 행사에서 도와준 이들을 위해 앞쪽 마을 주민들이 큰절을 막 하려는 장면입니다.

 

이에 앞서 마산시 행정 역량은 관제 집회와 관제 데모를 조직 지원했고 관변단체들은 얼씨구나 집회를 했을 뿐 아니라 일 있을 때마다 맞춰 나타나 자기네만 지역 여론을 대변하듯이 굴며 수정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3. 2009년 마산 수정 마을 할매들이 이미 겪은 일

 

물론 그 모든 어려움을 뚫고 수정 마을 주민들이 이겼습니다. 지역과 전국에서 뜻있는 이들이 보이게 보이지 않게 많이 도운 덕분도 있습니다. 이렇게 싸우는 과정에서 무시당하고 핍박받았을 때 할 수 있었던 행동 가운데 하나가 윗옷 벗기였습니다.

 

말하자면 끝이 없습니다만, 2009년 6월 5일 열린 경남도 산업단지계획심의위원회가 수정만 매립지의 수정 일반 산업단지 건설 계획을 조건부 가결한 일을 들겠습니다. 주민에게 약속한 26개 사항을 잘 지키라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26개 약속은 들어서기 전에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2011년 5월 16일 포기에서도 잘 나타났듯이 STX는 지킬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조건부 허가로는 약속을 지키도록 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더욱이 심의위원회는 비공개로 열렸고 회의록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수정 주민들은 6월 8일 도지사(지금 새누리당 국회의원인 김태호)를 찾아갔습니다. 항의하고 면담하기 위해서였는데 경찰에게 가로막혀야 했습니다.

 

젊은 경찰들에게 늙은이들이 맞설 힘이 있을 리 없습니다. 할머니 20명 가량이 윗도리를 벗은 채로 나섰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험한 몰골을 보여야 했는지요? 창원시도 STX도 아직까지 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4. 감물리 할매들은 2006년 복면을 해야 했고

 

시골 어르신이 복면을 뒤집어써야만 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결국 막기는 했는데, 밀양시 단장면 감물리 할매들이 거기 들이세우려는 생수 공장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생수공장을 지으려는 쪽에서는 갖은 사진을 찍어 주민을 고소·고발했습니다.

 

 

그 탓에 2006년 11월 23일 40·50대 주민 다섯이 구속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발단은 이랬습니다. 그해 9월 6일 아침 김모(82)·다른 김모(72)·박모(77) 할매 3명이 공사 현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들머리는 경운기 여러 대를 동원해 예전부터 차단해 놓고 있었답니다.

 

이어지는 증언입니다. “갑자기 용역들이 한 40명 가량 몰려왔어. 그래 팔을 쫙 펼치고는 ‘못 들어간다’ 이랬지. 그랬더니 용역들이 내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잡고 휙 집어던져 버리데? 그 길로 자물시고(까무러지고) 말았어. 눈 떠보니까 병원이데.” 김(82)씨 할매입니다.

 

“허리랑 목을 다쳤습니다. 두 분은 전치3주가 나왔고 한 분은 전치2주 나왔습니다. 어른을 이렇게 만든 용역들을 고소했는데 경찰이 그 수사는 않고 동네 위해 일하는 사람만 집어넣었어요. 편파수삽니다. 편파수사!” 당시 이장의 얘기입니다. 이렇게 되자 동네 사람들이 달려나와 맞섰는데 이를 두고 이렇게 구속 사태를 만들었다는 얘기입니다.

 

 

그해 11월 24일 찾아갔을 때 마을 주민 모두 남녀노소 구분 없이 까만 복면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궁금한 마음이 일어 날씨가 추워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어데가, 저것들이 카메라·비디오로 찍어서 자꾸 고소·고발을 해대니 젼딜 수가 있어야지!”

 

앞으로도 이런 일이 더 일어나야 할까요? 고향산천을 지키며 살아온 이 어르신들에게 복면을 또 씌울 수는 없습니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이 할매들이 윗옷을 다시 벗어 던지고 마지막 저항에 나서게 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 말고 다른 무엇이 더 야만일까요?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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