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걷기도 나물캐기도 다 좋은 밀양 동천 둑길

김훤주 2013. 6. 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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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생태역사기행

밀양 동천 둑길 걷기


3월 20일 그날은, 한여름 날씨를 보이는 지금 돌이켜 봐도 무척 추웠습니다. 날이 특별하게 차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세게 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날 들판에서 거의 얼어붙는 줄 알았습니다.

 

게다가 동천 둑길을 걷는 일행이 처음부터 끝까지 대열을 길게 늘어뜨렸고, 저는 그 마지막까지 지켜야 했기에 운명처럼 추위에 덜덜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첫 걸음은 표충사로 잡았습니다.

 

표충사 들머리.

왼쪽이 수충루. 절간 첫 건물이 누각인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1. 오전에 가면 빗자루 자국이 고운 표충사

 

사실 표충사는 여러 차례 들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들러도 새로운 절간이 표충사입니다. 게다가 아침에 일찍 온 편이다 보니 그 고즈넉함이 좋았습니다. 빗자루로 곱게 쓸어놓은 마당이 보기 좋기도 했고요. 사람들은 여기저기 자기 가고 싶은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랑 같이 거닐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주섬주섬 늘어놓게 됐습니다. 사천왕문에 있는, 아름다운 여자가 징벌을 받고 있는 모습도 입에 올렸지요. 아름다우니까 죄악이다, 죄악은 원래부터 매혹적이고 매혹적이지 않으면 사람들이 죄악에 빠져들 까닭이 없다, 따위 어쩌면 저도 잘 모르는 얘기를 씨부렁거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천왕문 올라가는 길.

 

여기 으뜸 전각이 대광전인데, 대광전은 석가모니를 모시는 대웅전과 달리 지혜의 으뜸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우화루, 부처님 말씀을 꽃비(雨花)라 하는데 대광전 부처님 우렁우렁 울려나오는 말씀을 듣기에 가장 좋은 자리가 여기다, 그런데 세속으로 보면 꽃비는 꽃비일 따름인데 여기만큼 쉬고 놀기 좋은 데가 씨부렁거림도 있었습니다.

 

왼편이 우화루.

절간 마당에서 활짝 꽃을 피운 매화.

지붕 기와도 여러 색깔이 어울려 자연스럽고 멀리 산아도 그럴 듯합니다.

 

사방이 트여 있고 대광전이 마주 보이는 데 더해 앞으로는 재약산이 높다랗게 눈에 들어오고 뒤로는 저 위쪽 산들늪에서 흘러들어오는 단장천이 시작되는 물 흐르는 소리가 제대로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참 시원합니다.

 

그런데 하나 아쉬운 바가 있었습니다. 표충사로 올라올 때 솔숲을 거니시라고 얘기하지 못한 것입니다. 솔숲 오솔길은 아스팔트 잘난 길을 버리고 오른쪽 어디쯤에서 산책로를 골라잡아야 하는데 그랬으면 훨씬 아늑한 느낌을 누릴 수 있는데 그렇게 재가 하지 못함에 따라 잘난 아스팔트길을 걸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오솔길 솔숲.

오솔길 솔숲을 거닐다 보면 만나게 되는 다비장.

다비장 안쪽 모습.

 

2. 점심 먹고 밀양댐 찍은 뒤 동천으로

 

한 시간 정도 지나 돌아나왔습니다. 산나물이 좋은 밥집 안동민속촌에 들어갔습니다. 잘 차려진 밥과 반찬을 먹고 동동주까지 걸칠 수 있는 사람은 걸쳤습니다. 여기 동동주는 조심해야 합니다. 마실 때는 괜찮았다가 일어날 때 어질어질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밀양댐으로 갔습니다. 밀양댐 그윽한 높이를 즐겼습니다. 여기 서면 밀양댐 물이 저기 배내골로 흘러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배내골은 멀리 보이는 반면 밀양댐은 가까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은 배내골 물이 이곳 밀양댐으로 흘러듭니다.

 

밀양댐 들어선 자리에 있는 망향비.

 

여기 물은 밀양 창녕 양산 등지에 먹는 물로 공급이 됩니다. 좋은 풍경을 배경으로 삼아 호박 동동주를 비롯해 이런저런 먹을거리를 파는 행상들이 몇몇 있습니다. 날씨가 흐리고 비까지 내릴 듯 말 듯하고 바람이 세게 보는데도 아직 판을 접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오늘은 주말이 아니라 평일이라 여기를 찾는 이들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이런 을씨년스런 풍경 가운데에서, 인간들 먹고 사는 일의 엄중함을 한 번 더 들여다봅니다.

 

마지막, 동천으로 흘러듭니다. 동천 둑길을 걷는, 이 날 생태·역사기행의 핵심입니다. 원래는 용전마을 들머리 다리에서 산외면사무소가 있는 금곡마을까지 6km 남짓을 걸으려 했으나 날씨가 뜻 같지 않아 가운데를 분질렀습니다.

 

 

그보다 금곡리에 가까운 희곡마을 있는 데서 3.5km 가량을 걷기로 한 것입니다. 사실 오늘 나들이는 걷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습니다. 쑥이나 달래 같은 나물을 둑길에서 뜯는 데 있었습니다. 날씨가 조금은 추웠지만, 함께한 이들은 열심히 나물을 캤습니다.

 

3. 나물캐기 알맞았던 동천 둑길

 

동천은 명물 호박소가 있는 가지산 등등에서 가장 먼 줄기를 시작합니다. 얼음골에서 나오는 물도 여기에 줄기를 더합니다. 이렇게 해서 흘러가다가, 금곡마을에서 단장천이랑 몸을 섞습니다. 골 깊은 밀양을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개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겨울 기운이 남아 있는 봄입니다. 길가 나무나 풀들이 푸릇푸릇 돋아나는 봄 기운을 머금기는 했지만, 아직은 겨울 기운이 좀더 셉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동천 둑길은 아무래도 황량한 기운이 셉니다. 

 

 

그래도 봄빛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파랗거나 연둣빛으로 솟아나고 돋아나는 잎사귀들이 봄을 증거합니다. 그 봄을 사람들은 캐어내 담습니다. 들고간 봉지들이 조금씩 수북해집니다. 저는 날선 칼들을 몇몇 준비했다가 미처 챙기지 못한 이들에게 나눠드렸습니다.

 

 

동천이라 하면 사람들은 조그만 도랑쯤으로 여기길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양쪽으로 너른 들판을 거느렸을 뿐 아니라, 곳에 따라서는 그럴 듯한 풍경까지 만들어냅니다. 너비도 아주 넓은 편입니다.

 

지난해 여름 비가 많이 왔을 때 오른편 풀들을 저리 눕혀 버린 모양입니다.

 

그럴 듯한 풍경은 들판보다 골짜기에 많습니다. 그런 골짜기 가까운 데에는, 오토캠핑장이나 모텔이나 밥집 따위가 어김없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먹고사는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여겨지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은 참 어쩔 수 없습니다.

 

 

4. 동천이 단장천이랑 합해지는 금곡마을

 

이제 금곡마을 들머리입니다. 여기서 동천은 단장천이랑 합해집니다. 단장천은 표충사 재약산 산들늪에서 시작돼, 여기서 동천을 받아안고 줄곧 흘러나아가 밀양강이랑 만날 때까지 자기 이름을 갖고 갑니다.

 

동천이 단장천이랑 몸을 섞는 지점.

풍성합니다.

 

동천이 단장천이랑 만나는 여기는 여느 이름 있는 강과 다름없이 너비가 상당히 넓습니다. 그 잔잔한 품이 연못이나 호수 같은 느낌을 주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풍성하다 보니, 여기 금곡마을에는 갖은 물고기를 잡아 어탕을 만들어 파는 가게가 있습니다. 맛이 좋습니다. 값도 비싸지 않습니다.

 

이렇게 골짜기가 멋지다 보니까, 살려고 또는 장사하려고 땅을 장만하려는 이들이 많은가 봅니다. 시세가 어느 정도인지는 제가 알아보지 못했는데요, 여기저기 들어선 이른바 ‘부동산’들이 그 수요와 공급이 예사롭지 않음을 눈치채게 해 주고 있었습니다.

 

금곡에 있는 한 '부동산'의 유리창.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일행 가운데 앞서 온 사람들과 뒤에 온 사람들 사이 간격이 꽤 벌어졌습니다. 저는 처진 이들을 기다리며 길을 안내하느라 추웠습니다. 먼저 온 이들은 여기 가까운 찻집에 들어가 시간을 노닥거렸습니다.

 

처진 이들 기다리다 들렀던 비각. 그리고 거기 흙돌담.

 

일찍 온 이들은 대체로 남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나물을 그다지 많이 캐지 않은 축이었습니다. 반면 조금 늦은 이들은 여자들이 많았고 나물도 상대적으로 많이 캤습니다. 일찍 온 이들은 찻집에서 여유로움을 누렸고 늦게 온 이들은 좀더 많은 나물을 보상으로 여길 수 있었습니다.

 

2013년 들어 생태·역사기행의 첫 나들이는 이렇게 마쳐졌습니다. 경남람사르환경재단이 후원하고 경남풀뿌리환경교육센터가 주최합니다. 저희 해딴에는 ‘풀뿌리’랑 걸음을 맞춰 이런 기행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6월의 생태·역사기행은 19일(수) 남해로 떠납니다. 멋진 금산 보리암을 들렀다가 남해 명물 멸치쌈밥을 먹은 다음 대량마을에서 시작되는 숲 속 오솔길과 바닷가 갯길을 3km정도 걷습니다. 끄트머리에는 상주해수욕장이 울창한 솔숲을 거느리고 기다립니다.

 

참가비는 3만원입니다. 신청·문의·상담은 haettane@gmail.com, 055-250-0125, 010-8481-0126으로 하시면 됩니다. 무척 시원하고 즐거우면서 동시에 습지 또는 물이 우리 인간에게 끼치는 이로움과 즐거움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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