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딴에의 맞춤형 통영 가족 나들이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행복한 나들이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5월 26일 밤에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이날 낮에 저희 갱상도 문화공동체 해딴에가 진행한 ‘통영 가족 나들이’에 함께하신 분이 보내셨습니다. 어쩌면 빈말일 수도 있겠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앞서 계모임 회원들 가족 나들이를 아내랑 아이들 중심으로 통영 당일치기 프로그램을 기획·준비·진행해 달라는 주문을 받았습니다. 해딴에는 조금 널널하게 다녀오는 프로그램과 알차게 하는 방안 두 개를 내었고 그이들은 알찬 쪽을 선택했습니다.

 

동피랑마을~케이블카·미륵산~해저터널~중앙시장과 한산도 제승당~케이블카·미륵산~동피랑마을~중앙시장 가운데에서 두 번째를 고른 것입니다. 말하자면 한산도 제승당을 다녀오느냐 마느냐였는데요, 여기 들어가면 대기 시간까지 쳐서 2시간 30분은 잡아야 하거든요.

 

1. 반드시 앞서 답사를 해야 하는 까닭

 

나름 잘 아는 통영이지만 저희 해딴에는 한 번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몸은 빠뜨리고 머리로만 계획을 굴리다 보면 반드시 적어도 한 군데서는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일요일 19일에 다녀왔는데요, 길이 엄청 막혔습니다.

 

유람선 뒷편에 모여 앉은 일행들.

 

그리고 유람선터미널도 미륵산 케이블카도 무척 붐볐습니다. 미리 전화를 걸어 이리저리 알아봤을 때도 대충 짐작은 했지만 실제로 보니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진주시청 출발 시각을 아침 8시 30분에서 30분을 앞당겼습니다.

 

늦어서 발을 동동 구르거나 아니면 제승당 들어가는 유람선을 타지 못하는 상황보다는 차라리 일찍 가서 조금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또 유람선은 예매는 못해도 하루 전 예약은 할 수 있지만 케이블카는 이마저도 안 되고 당일 현장 티케팅밖에 안 됩니다.

 

그래서 이를 위한 준비도 미리 했습니다. 케이블카를 타려면 티켓을 끊고 나서도 한두 시간은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점심 먹을 밥집과 저녁을 먹을 횟집도 미리 들러 좋은 자리로 예약을 했답니다.

 

2. 여객선 아닌 유람선 타고 제승당 가는 보람

 

26일 당일은 일찍 서두른 덕분에 또는 탓으로 통영 도남동 유람선 터미널에 9시 10분남짓에 닿았습니다. 9시 30분 즈음에 가닿았으면 가장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늦는 것보다는 나았습니다. 배를 탈 때 내야 하는 승선자 명단은 오는 길에 작성해 두었기에 티켓만 끊으면 됐습니다.

 

 

터미널 안팎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다 9시 45분에 배를 타고 10시에 출발을 했습니다. 여덟 집 스물여섯 일행은 다들 유람선 뒤편 자리에 앉았습니다. 유람선은 제승당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한산도 앞바다 그러니까 한산대첩 격전지를 둘렀습니다.

 

40분 가량 이어진 뱃길에서 배를 모는 사람이 해설도 겸해 들려줬습니다. 여기저기 바위나 섬 따위에 얽힌 이름이나 사연을 일러줬고 한산대첩 당시 상황도 설명해줬습니다. 경륜이 느껴지는 해설이었습니다. 갱상도 지역말로,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이야기를 끌어나갔던 것입니다.

 

창 밖으로 거북 등대 밑둥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거북등대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제승당 입구 바다 암초 위에 세워졌습니다. 1963년 12월 지역 주민들이 성금을 걷어 세웠습니다. 등대 기능은 않고 대신 한산대첩 자리를 일러줍니다. 드디어 한산도에 닿아 제승당으로 들어갔습니다.

 

티켓을 끊고 미리 신청해 놓았던 문화 해설을 부탁드렸습니다. 젊은 남자가 한 명 나오셔서 제승당 앞에서 보자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천천히 걸어 들어갔습니다. 들어가는 길에 울창한 솔숲과 거북선 모양 식수대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산만 그윽한 바닷물도 조용해 좋았습니다.

 

한산대첩기념비 알림판. 멀ㄹ 마주보이는 산의 마루에 기념비가 있습니다.

 

3. 이순신 당대에는 없었던 제승당, 그리고 충무사

 

제승당(制勝堂)은 여기 유적의 대표입니다. 가장 오래된 건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 생전에 지어진 건물은 아닙니다. 이순신 장군이 몸소 머물며 작전을 짜고 회의를 진행하고 했던 운주당(運籌堂)은 삼도수군통제영이 처음 만들어져 들어섰던 1593년부터 1597년까지만 있었습니다.

 

 

아시는대로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 이순신 장군은 모함을 받아 서울로 끌려갑니다. 이어서 통제사가 된 원균 장군은 그해 여름 칠천도 앞바다에서 수군 거의 모두를 잃어버리고 본인도 숨이 끊어집니다. 바로 그 때 여기 통제영은 온통 불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승당은 107대 통제사 조경이 1739년 옛 운주당 자리에 세운 건물입니다. 난중일기 1491일치 가운데 1029일치가 여기서 쓰여졌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생활 가운데 80%가 여기서 이뤄졌다고 해설사는 말해 줬습니다.

 

이어서 충무사(忠武祠)로 갑니다. 일행은 해설사의 인도 아래 충무공 영정 앞에 향을 피우고 묵념을 올립니다. 1978년 정형모 화백 작품이랍니다. 전두환을 비롯해 김대중·이명박 두 대통령의 초상도 그렸습니다.

 

묵념.

이순신장군 표준 영정이 충남 아산 현충사에 있는데 여기 영정은 박정희 뜻대로 표준 영정과 무관하게 그려졌다고 해설사는 말했습니다. 표준 영정은 무인으로서 기상이 넘쳐나는데, 박정희는 대신 충무공의 전체 인격이 표현된 영정을 바랐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정 화백이 고민을 많이 했답니다. 결국은 이순신 집안인 덕수 이씨들의 골격을 연구하는 한편으로 이순신의 친구 서애 유성룡이 쓴 책 <징비록>에서 이순신 풍모에 대한 기록 석 줄을 찾아내어 그를 바탕삼아 영정을 그렸다는 얘기였습니다.

 

다네 사진도 찍고.

4. 이순신 장군의 나라 백성 걱정과 술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그냐말로 요즘 노래처럼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이순신에게 당신은 나라와 백성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쉽사리 잠을 이루지도 못하고 두고두고 끙끙 앓았는데요, 그래서 이순신 장군이 술에 기대어 잠도 자고 통증도 다스리고 했다는 얘기를 해줬습니다.

 

역대 통제사들의 선정비들.

저는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이른바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 장군이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잤다거나 하는 기록이 많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토록 심오한 무엇이 있는 줄을 '예전엔 미쳐 몰랐"답니다. 하하하.

 

이밖에도 일행은 제승당을 지은 조경 통제사가 여기가 원래 통제영 터임을 알리려고 세운 유허비랑 이순신의 후손인 198대 통제사 이규석이 그 138년 뒤 세운 유허비도 눈에 담고요, 해방 뒤 지역 주민들이 물심을 모아 세운 한글 유허비도 봤습니다.

 

유허비들.

또 수루(戍樓)를 놓치지 않습니다. 제승당 오른편에 있습니다. 여기 서면 세계 4대 해전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한산도대첩의 현장이 펼쳐집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이순신 장군의 시조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끓나니’의 무대입니다.

 

수루. 수루에 오른 이들. 수루에서 보이는 바다.

5. 미륵산케이블카를 많이 기다리지 않고 타려면

 

돌아나오니까 꼭 두 시간이 걸렸습니다. 서둘러 버스를 탑니다. 점심을 먹으러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항남동에 있는 멍게가로 갑니다. 아까와 달리 길이 막히는 바람에 예정 시각보다 조금 늦어졌습니다. 바쁘게 그러면서도 맛있게 멍게비빔밥을 먹고는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러 갑니다.

 

미리 티켓을 끊어놓고 얘기를 해놓았기에 많이 기다리지 않고 바로 탈 수 있었습니다. 여기 케이블카는 8인승입니다. 뿌리에 매달린 감자 같은 케이블카가 로프를 붙잡은 채 끊임없이 오르내립니다. 한꺼번에 사람이 많이 탈 수 있는 밀양 얼음골 케이블카와는 다릅니다.

 

여기 케이블카는 끝에서 끝까지 거리가 197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는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조금 덜했지만, 맑은 날은 오르내리면서 보는 풍경이 대단하겠다 싶었습니다. 환경 파괴 또는 훼손 논란과 무관하게 말씀입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나오는 자리.

날씨가 흐렸던 이날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아련한 가운데 어렴풋이 보이는 그것들을 느껴보는 다른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저는 온 김에 산마루까지 내쳐 걸었습니다. 15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몸에 땀이 나기는 했지만 바람이 불어대서 상큼했습니다.

 

사람들은 곳곳에 들어서 있는 이런저런 전망대에서 눈길을 아래 어디론가 던집니다. 길은 온통 나무계단으로 돼 있었습니다. 산이라기보다는 공원입니다. 이어 동피랑 벽화마을로 옮깁니다. 길은 적당하게 막힙니다. 버스는 중앙시장 끄트머리 동피랑 들머리에 섰습니다.

 

미륵산 봉수대 자리. 내려오는 케이블카.

6. 동피랑에서는 벽화보다 사람 구경을 더하고

 

일행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로 걸어들어갔고요, 저는 남자 일행 몇몇이랑 예약해 놓은 횟집으로 함께 갔습니다. 미리 실물을 보고 주문을 해 놓으면 나중에 편하겠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별것 아닌 그림 같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꽃눈이 지고 있습니다.

 

 

26일이 일요일인지라 동피랑 마을이 찾아온 사람으로 온통 바글거립니다. 이럴 때는 벽화 구경도 좋고 여기 사람들 사는 모습 구경도 좋지만 기를 쓰고 찾아와 여기저기 구경하는 사람들 구경도 좋습니다. 젊은 사람들 노는 모양 눈여겨 보기도 하고, 남녀 짝짝이 찾아온 이들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청년들 사진 찍으며 노는 모양, 아이들 뛰어다니며 노는 모양, 어린 자식들한테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느끼게 해 주려고 애를 쓰는 젊은 부부들 노는 모양, 천사 날개 그림이 그려져 있는 담벼락을 따라서, 길게 줄지어 자기 사진 찍을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모양…….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 없이 그야말로 무심히 바라봅니다. 그렇게 여기저기 거닐다 보니 동피랑 마을 우뚝한 정자나무 있는 데까지 왔습니다.

 

7. 중앙시장에서 장만한 통영 빼때기 5000원 어치

 

중앙시장으로 들어갑니다. 온 김에 장을 좀 봐야겠다 싶었습니다. 집에서 술 마실 때 안주 삼으면 좋겠다 싶어 노가리를 만 원어치 샀습니다. 이런 것 술집에 가면 적어도 한 마리에 천 원씩은 하는 것들입니다. 손 큰 아저씨가 한 움큰 더 얹어주는데, 모두 한 마흔 마리는 되겠습니다.

 

동피랑마을 커다란 정자나무.

다음으로는 멸치를 샀습니다. 제가 멸치 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수협 가게를 골라 들어갔습니다. 다시물 내는 멸치 가운데는 최상급인데 한 상자에 2만5000원이라 합니다. 저는 반만 달라고 했습니다. 많이 사봐야 냉동실 한 구석만 오래 차지할 따름이니까요. 1만3000원을 건넸습니다.

 

다음으로는 통영 명물을 하나 골랐습니다. 통영 욕지도는 고구마가 이름나 있는데, 그 날 산 녀석이 욕지도 고구마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날고구마를 썰어서 햇볕에 바짝 말린, 빼때기를 샀습니다.

 

달라는대로 5000원을 할머니께 드리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많이 좀 주이소.” 이랬더니 “내가 원래 마이 주는 사람 아이가” 하면서 듬뿍 더 얹어줬습니다. 다른 데서 생고구마를 샀어도 같은 값으로 이만큼은 못 살 것 같은 그런 분량이었습니다.

 

8. 등대회초장 횟집 주인은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

 

저녁 5시가 다 돼 갑니다. 저녁을 겸한 술자리가 중앙횟집에서 이 때 시작하도록 예정돼 있었습니다. 앞서 예약해 놓은 3층 전망 좋은 자리로 올라갔더니 일행이 모두 오셔서 이미 들고 있었습니다. 같이 앉으라고 권하셨기는 했지만 저는 따로 나와 등대회초장으로 갔습니다.

 

불순물(^^)이 섞이지 않고 계모임 하는 가족끼리 편하게 즐기시라는 뜻도 있었지만 다른 생각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대형 버스 두세 대씩 해서 많이 올 때 들어갈 수 있는 횟집이랑 인사를 해놓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중앙횟집.

회랑 초장이랑 쌈을 주문하고 등대횟집 주인아주머니랑 명함을 주고 받았는데, 제가 몸담고 있는 경남도민일보에서 함께 오래 근무했던 선배 기자 한 명이랑 오빠 동생 하는 사이라 했습니다. 이래저래 나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통영 가족 나들이는 끝이 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흥이 오른 일행들이 차 안에서 어울려 춤추고 노래부르며 놀았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불문가지(不問可知),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었겠지요.

 

나름으로는 큰 탈 없이 치렀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날 해딴에를 믿고 함께해 주신 이들도 그렇게 여겨주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내놓고 나서 생각해 보니, 점심을 멍게비빔밥 하나로만 한 것은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어른들은 대부분 만족스러워 하셨고 반찬과 국까지 더 주문해 먹기도 했지만 아이들 같은 경우는 낯설어 하며 먹지 않거나 못하기도 했거든요. 그 집에 다른 메뉴가 없는 것도 아닌데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김훤주

카카오톡으로 친구맺기

글쓴이 : 김훤주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jecy.tistory.com/ 머무는바람 2013.07.17 16: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통영에서 밥때문에 고생한 기억만 있는데
    역시 사전 답사가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