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박근혜가 님을 위한 행진곡 부르게 하려면

김훤주 2013. 5. 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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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제33주년 기념식에 참석은 했지만 ‘님을 위한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는 않았다는 보도를 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서 국가보훈처가 합창은 하지만 제창은 않겠다는 국가보훈처의 결정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 정부가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꺼려한다는 사정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정통성을 담은 노래이기 때문이고 박근혜 대통령은 내심은 그런 정통성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 5.18 행사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려면

 

박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 이전 행적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5.18기념식에 2004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 자격으로 참석했고요, 2005년과 2006년에도 참석했습니다. 그렇지만 참석해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 동참했음을 일러주는 기록이나 영상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그 노래를 부르려면 어떤 강력한 힘이 작용을 해야 한다고 저는 봅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힘입니다.(물론 그런 힘이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게 있었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대통령 노릇을 하고 있는 자체가 가능하지 않았겠습니다.)

 

다수 대중이 5.18을 진정으로 그 무엇보다 매우 중요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부르기 싫어도 부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20일 MBC경남의 라디오 광장 세상 읽기에서 짚어봤습니다.

 

님을 위한 행진곡 합창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나는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사진.

 

서수진 아나운서 : 그저께 5.18민주화운동 제33주년 기념식 행사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지 않고 합창한 사실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날 행사에 참석은 했으나 님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김훤주 :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려고 작정을 했다면 국가보훈처가 아예 처음부터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기로 결정했을 것입니다. 제창을 하게 되면 행사에 참석한 사람이면 대통령이든 아니든 다함께 불러야 하거든요.

 

2. 님을 위한 행진곡 부르기가 부담스러웠던 박근혜

 

진 : 합창과 제창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사전을 보면 ‘합창은 여러 선율로 이뤄진 노래를 여러 사람이 서로 화성을 이루면서 부르는 것’이고 ‘제창은 단일한 선율로 이뤄진 노래를 여러 사람이 다 같이 부르는 것’인데요.

 

주 : 사전적으로 보면 그렇고요, 현실에서는 합창은 합창단이 주로 부르고 참석한 사람들이 자기 의지대로 따라 부르든지 말든지 하는 것이라면 제창은 참석한 사람이 모두 부르는 것입니다. 미묘하면서도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텔레비전으로 생중계할 때 합창은 합창단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제창을 하면 가장 중요한 인물 그러니까 대통령에 초점을 맞춥니다.

 

제창 아닌 합창 결정에 반발해 정부 기념식에 사람들이 많이 불참하는 바람에 생겨난 빈 자리. 연합뉴스 사진.

 

진 : 2008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5.18 기념 행사에 참석한 이래 현직 대통령으로는 5년만에 함께한 자리인데, 박 대통령이 전체 국민이 보는 앞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는 부담스러웠을까요?

 

주 : 그렇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님을 위한 행진곡 합창 결정이 겉으로는 국가보훈처가 했다고 돼 있지만 실제로는 청와대가 했다고 봐야 합니다. 청와대와 박 대통령이 제창해도 괜찮다고 했는데도 국가보훈처가 굳이 합창으로 하겠다고 버틸 까닭은 없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이런 경우 중요한 사실은,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공통되게 부르기를 바라는 노래가 바로 님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점입니다.

 

3. 님을 위한 행진곡에 담긴 5.18의 역사와 정신

 

진 : 님을 위한 행진곡이 어떤 노래인가요? 왜 그렇게 부르기를 원할까요?

 

주 : 이 노래에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와 정신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노래의 탄생 자체가 5.18민주화운동과 맞닿아 있다고 합니다.

 

님을 위한 행진곡 악보.

 

1980년 5월 27일 새벽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전남 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에게 숨진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1979년 광주 광천동에서 들불야학을 하다가 숨진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서로 잘 아는 사이였던 두 유족은 82년 2월 망월동 묘지에서 영혼결혼식을 치렀고 지역에서 문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를 기리려고 5월에 노래극 '넋풀이굿'을 제작했는데 그 마지막에 이 노래가 들어가 있었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면 뜨거운 맹세”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당시 광주 살던 황석영 소설가가 재야운동가 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를 개작해 가사를 만들었고 전남대 학생이던 김종률씨가 작곡을 했습니다. 91년에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 3집 앨범에 실리면서 더욱 널리 알려졌습니다.

 

진 : 그렇군요. 그러면 여태까지 치러온 5.18 기념행사에서는 이 노래가 어떤 대접을 받았지요?

 

주 : 5.18은 1997년에 공식으로 국가 기념일이 됐습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5.18 기념식에서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제창 형식으로 불러왔습니다. 그 절반인 2003년부터 여섯 차례는 중앙정부가 주관했습니다. 물론 지정 이전 시민사회단체들이 주관한 행사에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다 이명박 정부 2년째인 2009년부터 이태 동안은 본행사에서 빠지고 식전행사 때 제창을 했고요, 2011년과 2012년에는 본행사에서 합창으로 처리됐습니다. 올해와 같습니다.

 

4. 궁색한 국가보훈처의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 이유

 

진 : 그러면 5.18 기념식에서 제창을 하게 하라는 요구가 끊임없이 나왔겠어요. 그런데 국가보훈처 제창 거부 이유가 좀 궁색하지요?

 

연합뉴스 사진.

 

주 :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첫째는 5.18 기념행사의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돼 있지 않다는 것이고, 둘째는 일부 노동·진보단체에서 민중의례 때 애국가 대신 부르는 노래라는 것이고 셋째는 정부 기념식에서 주먹을 쥐고 흔드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진 : 첫째 이유라면 국가 기념일 지정 이후인 1997년부터 2008년까지 5.18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것이 틀렸다는 얘기가 되나요? 게다가 2003년부터는 중앙정부가 행사를 주관했잖아요? 또 2008년은 같은 정당 소속인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었기도 하고요.

 

주 : 앞뒤가 맞지 않지요. 억지로 갖다 붙이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지금 5.18은 공식 기념곡이 없는데, 그렇다면 앞으로도 5.18 기념식에서는 5.18을 기리는 노래를 제창할 수 없다는 얘기밖에 안 됩니다. 두 번째 세 번째 까닭도 좀 우습습니다.

 

거꾸로 생각해서, 70년대와 80년대에는 시위 현장에서 애국가도 많이 불렀는데, 그렇다고 정부 공식 행사에서 애국가 제창을 뺄 일은 아니거든요. 또 주먹을 쥐고 흔드는 것도 제각각 알아서 하는 것이지 모두 해야 한다고 강제돼 있지도 않고요.

 

진 : 그러면 답이 빤히 보이는데요. 그래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5.18민주화운동 공식 기념 노래로 지정하자는 움직임이 한편에서 일고 있기도 하고요.

 

5.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지 못한 진짜 까닭

 

주 : 맞습니다. 한편으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밑바탕에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희생과 피해, 그리고 그것이 민주주의 발전에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성취를 이룩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망월동 묘역에서 치러진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사람들. 연합뉴스 사진.

 

진 : 5.18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요? 1995년 5.18민주화운동특별법이 제정돼 민주화운동으로 공식 인정을 받았고 피해 보상도 이뤄졌고요, 1997년 4월에는 광주 학살의 장본인인 전두환·노태우 등에 대해 대법원이 반란 내란, 내란 목적 살인과 상관 살해 미수 등으로 유죄 확정 판결이 나기도 했거든요.

 

주 :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 지배층은 물론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고 동의하는 시대정신은 되지 못한 것 같아요. 걸핏하면 5.18을 깎아내리는 보도가 나오고 심지어 채널A와 TV조선 같은 종편에서 5.18이 북한 간첩과 관련돼 있다는 얘기까지 퍼뜨리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헛소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남아 있고요.

 

진 : 박근혜 정부가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지 않고 합창만 하겠다는 선택도 그런 현실과 관련돼 있다는 얘기군요. 사실 희생자와 피해자 처지에서 생각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고, 5.18은 국가권력이 저지른 학살 사건이기도 한데, 희생자와 피해자가 그렇게도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라면 노래 아니라 그 이상도 받아들일 수 있을 텐데 말씀입니다.

 

6. 5.18을 전라도 광주만의 지역적 사안으로 여기는 사람들

 

주 :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 정부만 탓할 수 없는 까닭이, 물론 지배집단의 분할통치 전략도 크게 구실을 했지만, 5.18을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전라도나 광주에 국한된 사안으로 보려는 일반 대중의 시각도 작지 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봅니다.

 

아직도 저는 언뜻언뜻 그런 얘기를 듣는데요, 5.18을 두고 폭도들이 저지른 일이라거나 전라도 사람들이 별나서 터진 사건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상도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습니다.

 

진 : 지역감정을 악용하거나 또는 지역감정에 사로잡혀 그렇게 5.18을 우리나라 전체와 관련된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별난 지역에서 일어난 별난 사건이라고 보는 사람이 여전히 있다는 말씀이죠?

 

연합뉴스 사진.

주 :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실 관계를 꼼꼼하게 따져 보면요, 5.18민주화운동이 1980년 5월 전라도 광주에서 갑자기 뜬금없이 일어난 일이 아니거든요. 한 해 전인 1979년 10월에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부마항쟁이 없었으면 5.18 또한 생겨날 수 없었습니다.

 

부마항쟁으로 박정희 유신정권의 위기가 확실하게 드러났고, 그 와중에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당시 대통령 박정희를 살해하는 권력 균열이 생겼습니다. 바로 이런 일들 때문에 1980년 민주화의 봄도 가능했던 것이고 5월 광주 항쟁도 가능했던 것입니다.

 

진 : 그렇게 따지고 보니 마산과 광주, 경상도와 전라도가 하나로 연결이 됩니다. 독재에 대한 저항과 민주주의를 향한 추구에는 지역 구분이 없다는 말로도 들립니다.

 

주 : 그렇습니다. 인권이나 민주주의 앞에서 광주 사람과 마산 사람, 전라도 사람과 경상도 사람이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더욱이 지금 이런 정도로나마 민주화가 돼서 적어도 권력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대통령 욕을 하고 정권을 비판할 수 있는 정도로 바뀐 것은 5.18에 크게 기대고 있다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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