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촛불집회, 서울과 마산·창원의 차이는?

기록하는 사람 2008. 6. 17.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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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마산·창원 촛불집회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은 뭘까? 지난 9일과 10일 서울에서 이틀밤을 지새우며 본 것과 마산 창원의 촛불집회를 비교해봤다. 서울에서 고작 이틀이라 내가 본 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양쪽의 집회를 모두 경험해본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아서 한 번 정리해본다.

우선 과거 운동권단체의 '기획된 집회' 형식에서 탈피했다는 점은 같다. 참가자 또한 딱히 어떤 조직에 소속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도 같다.

'기획'된 정치연설은 많고, 시민발언이 적다

하지만 마산·창원의 경우 아무래도 참가자 수가 적다보니 여전히 사회자의 '기획'이 많이 개입된 모습이 보인다. 이미 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운동단체의 지도자급 인물들이 "시민 아무개임니다"라며 나와 정치연설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한국사회의 본질(?)이나 신자유주의 등 근본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며 청중을 가르치려 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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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아무개님의 연설이다. /김주완


발언 신청자가 그리 많지 않다보니 시간제한도 거의 두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사람의 경우 연설이 길어지기 일쑤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길어지면 참가자들은 지겨워한다. 서울 사람들이 자기표현에 적극적인데 비해, 지역 사람들은 아무래도 앞에 나서는 걸 망설이는 탓도 있다.

서울의 경우 집회가 시작되면 발언을 하고 싶은 시민들이 그냥 알아서 연단 옆으로 길게 줄을 선다. 사회자는 줄 선 순서대로 불러내면 된다. 시간제한도 5분으로 엄격하다. 제 아무리 유명인사라 해도 이건 지켜야 한다. 지난 10일 광화문 집회에선 영화배우 문소리도 한참동안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물론 연설이 길어지더라도 재미있거나 꼭 들어야 할 내용이라면 사회자가 제지해도 청중이 "더해라" "놔둬라"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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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밤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광장토론회에서 시민들이 발언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김주완


앞서 9일 밤부터 10일 새벽까지 서울광장에서 열린 교수노조와 민교협, 학술단체협의회의 '촛불과 한국사회' 광장토론회에서는 교수들의 발제도 7분으로 제한됐다. 발제가 끝나면 앉아있는 청중들 중 발언하고 싶은 사람들이 우르르 연단 옆으로 가서 줄을 섰다. 이 때도 무조건 줄 선 순서대로 토론자가 됐다. 너무 줄 선 사람들이 많다보니, 뒤에 선 사람들은 결국 발언권을 얻지 못했다.

지역의 경우, 시민발언대에 나선 사람들의 말이 너무 논리정연하다. 택도 아닌 소리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서울은 그냥 줄 선대로 하다보니 별의별 사람들이 다 나온다. 심지어 촛불집회 나온 사람들을 나무라기 위해 나온 사람도 있다. 그러면 청중이 자연스럽게 "내려와! 내려와!"를 외친다. 그러면 사회자가 못이긴 척 연단에 있는 사람을 아래로 떠민다. 술에 취한 채 올라오는 사람도 있다. 연단에서 헛소리를 하면 역시 "내려와! 술깨고 와!" 합창이 나온다.

사회자의 이런 저런 요구가 너무 많다

서울에선 사회자가 획일적이고 일사불란한 청중의 몸짓이나 행동을 요구하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러나 마산·창원에선 종종 사회자가 청중을 얼차려시킨다. 이른바 파도타기가 그것이다. 한 시민은 지난 10일 마산 집회에서 한 연사가 무려 열 번이나 앉았다 일어섰다를 시키는 바람에 열받았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또 뜬금없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선창해 시민들이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다.

서울에선 기자들이 집회에서 특혜를 받는 일도 없다. 굳이 특혜라면 연단에 올라가 사진 찍을 기회를 가끔 주는 것 정도다.

그러나 마산이나 창원에선 "(사진)기자들이 이렇게 좀 해달랍니다. 모두 촛불을 들어주십시오"라거나 "카메라기자들이 좋아하는 동작입니다. 한 손엔 피켓을, 한 손엔 촛불을 들고 좌우로 흔들어 주십시오"라는 사회자의 요구도 있었다.

서울엔 광장이 있지만, 지역엔 도로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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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은 대개 7열 종대로 자리가 배치된다. /김주완


서울은 장소 또한 여러가지 유리한 점이 많다. 넓은 서울광장이 있고, 청계천 소라광장도 있다. 하지만 마산·창원은 좁은 도로에서 길게 줄지어 앉아야 한다. 그러다보니 전형적인 '집회 대열'이 형성된다. 8열 종대로 쭉 앉는 형식이다. 그래서 소극적인 사람은 그 대열 안으로 들어가는 게 쉽지 않다.

서울은 그냥 아무데나 자기 편한 데를 골라 앉으면 된다. 친구들끼리 동그랗게 둘러앉아 과자도 먹고 맥주도 마시며 그냥 그렇게 놀면서 집회를 즐긴다. 하지만 지역 집회 현장에선 편하게 놀고 마실 수 없다.

창원 정우상가 앞 인도나, 마산 학문당서점 앞 길은 과거의 조직적 집회에는 맞는지 몰라도 요즘의 촛불문화제에는 적합치 않은 것 같다. 옛날 관성대로 그곳을 집회장으로 정할 게 아니라, 촛불문화제의 성격에 맞는 장소를 새로 찾아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 집회도 변화하고는 있다

하지만 좀 따분했다는 마산 창원의 집회도 날이 갈수록 변하고 있다. 지난 14일 창동 사거리에서는 초등학생이 자유발언과 개사곡을 부르는가 하면 '비보이'가 등장하는 등 재미가 더해졌다. 사회자가 자유발언을 수차례 홍보하며 시민참여로 내용을 채워가려고 애를 쓰는 것이 도드라졌다.

이 때문인지 어른들 위주였던 지난 촛불문화제에 달리 이날은 초등학생의 개사곡 부르기와 자유발언으로 내용이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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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열 종대로 늘어선 집회'대열'에 들어가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주변에 선 채 창원촛불집회를 구경하고 있다. /김주완


완월초 6학년 서모군은 나비야 등 동요를 개사한 3곡을 이어 불렀고, 창원에 사는 초교 3학년생이라는 여학생은 민요를 개사해 불러 큰 반응을 얻었다.

안남초 6학년 김모 양은 자유발언을 통해 "명박이 할아버지 때문에 미친소, 민영화, 대운하 공부를 많이 해서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며 "이제는 공부 좀 그만하고 싶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또 마산청소년문화의 집에서 연습한다는 비보이 3명은 이날 촛불문화제 축하공연에 나서 창동 사거리를 오가던 젊은이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이밖에 지역에서 활동하는 가수 그린비, 김산, 하동임 씨 등이 축하공연을 펼쳤고, 전국여성노조 경남지부 노래패 콩깍지도 한몫했다.
 
 /김주완 김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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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지역신문 기자의 고민과 삶을 담은 책. 20여 년간 지역신문기자로 살아온 저자가 지역신문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자부심을 갖고 기자생활을 하면서 겪은 일들을 풀어낸다. 이를 통해 서로 비슷한 고민을 가진 지역신문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촌지, 살롱이 되어버린 기자실, 왜곡보도, 선거보도 등 대한민국 언론의 잘못된 취재관행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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