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박근혜 “지하경제 활성화”, 의도된 말실수?

김훤주 2012. 12. 1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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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해 16조2000억원이 낭비성 예산이라고?

10일 2차 텔레비전 토론회가 있었고 16일 3차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박근혜와 문재인에 더해 이정희까지 함께했던 2차와는 달리 문재인과 박근혜 두 사람이 맞붙은 3차 토론에서 박근혜 후보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대책을 얘기하며 여기에 해마다 27조원씩 5년 동안 135조원이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박근혜는 이 135조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말했습니다. 2차토론에서 말한 복지 확충 예산과 규모가 다르지 않군요. 어쨌든 60%(5년에 81조원, 한 해에 16조2000억원)는 낭비되는 예산을 아껴서 장만하고 나머지 40%는 세수 확대를 통해 장만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엉터리로 들렸습니다.

왜냐하면 2012년 중앙정부 예산안은 326조1000억원이라고 하는데, 박근혜 후보 말대로라면 16조2000억원에 해당되는 예산이 해마다 낭비되고 있습니다. 전체 예산의 5%에 해당되는 엄청난 금액이 낭비되고 있다는 말을 저는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3차 토론에서 단 둘이 만난 박근혜와 문재인. 뉴시스 사진.


2. 재벌 부자 빼고 어디서 세수 확충을 할까?

세수 확대로 5년 동안 135조원의 40%에 해당되는 54조원을 마련하겠다는 얘기 또한 믿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줄곧 재벌·부자 감세를 해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후보와 이미 사퇴한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는 부자 증세로 복지 확충 따위에 필요한 예산을 마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세수 확대를 할 수 있는 데가 거기뿐이라는 얘기로 제게는 들렸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후보는 재벌을 비롯한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겠다는 얘기는 대선 기간에 한 번도 하지 않은 줄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수 확대를 하겠다고 밝혔으므로 그 확대되는 세금 수입(稅收)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궁금해졌습니다.

3차 토론장으로 들어가는 박근혜 후보. 뉴시스 사진.


재벌이나 부자가 세수 확대의 대상이 아니라면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가 그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으로 볼 때 봉급생활자나 자영업자를 상대로 세수를 확대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심리적·실질적 저항이 엄청나게 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재벌과 부자에 대한 증세를 하지 않는 이상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3. '지하경제 활성화' 발언으로 무엇이 가려졌나?


그래서 저는 박근혜의 저출산·고령화 문제 대책이 그다지 실감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실감나지 않음은 박근혜 후보의 복지 대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박근혜의 복지 대책이 보편적이지 않고 차별적이라는 문제점은 그만두고라도 그 차별적 복지나마 제대로 되지 않으리라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박근혜 후보는 10일 열린 2차 토론에서 복지재원 마련 방안을 설명하면서 “씀씀이를 줄이고자 정부가 자의로 쓰는 재량 지출을 줄이고 비과세 감면 제도를 정비한다거나 지하경제를 활성화해 매년 27조, 5년간 135조원을 마련하겠다”고 했습니다.

뉴시스 사진.


아시는대로 ‘지하경제 활성화’는 정부 차원에서 대책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불법이든 합법이든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부문이 지하경제인데, 이 지하경제를 활성화하면 정부가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누리당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11일 KBS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지하경제를 양성화한다는 말을 ‘활성화’로 잘못 표현했다”고 했으며 박선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대변인도 “양성화라고 발음했어야 하는데 활성화라고 발음한 것”이라 했습니다.

그렇다고 지하 경제 양성화도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지하경제에서 가장 큰 부분은 고리대금업, 마약 매매, 도박, 성매매 따위이고 이것들을 합법화하는 일이 바로 양성화인데, 이런 사태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수 있다고 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4. 조롱거리가 되는 대신 재벌 증세 말은 안 했다


그러면 이런 엉터리 발언을 박근혜 후보가 왜 했을까요? 또 양성화라 해야 그나마 앞뒤로 뜻이 통하는데도 활성화라고 말실수까지 더해 얹었습니다. 저는 이런 양성화 발언 또는 활성화 말실수가 어쩌면 의도된 것일 수 있다고 미심쩍어 합니다.

앞쪽 이정희 후보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뉴시스 사진.


박근혜 후보 이 발언(또는 말실수)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켰는지를 들여다보면 제가 이렇게 미심쩍어 할 수 있는 근거가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이 발언(또는 말실수)으로 박근혜 후보는 상대 진영으로부터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조롱거리가 됨으로써 묻혀 버린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박근혜 후보한테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비롯해 복지 확충 예산 마련에 필요한 대책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지하 경제를 갖고는 아무래도 필요한 예산을 마련할 수 없으며, 대신 재벌에게서 더 많이 세금을 걷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크게 나돌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렇게 봅니다. 박근혜 후보가 스스로에게 예산 마련 대책이 없음을 뚜렷하게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고 한 때 조롱거리가 되고 말기로 결심한 것 같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재벌에게서 세금을 걷어야 한다는 얘기를 끝까지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조롱거리가 되고 만 셈이라고 저는 여깁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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