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천연기념물에서 전깃줄 벗겨내는 재미

김훤주 2012. 9. 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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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 기자로 살다 보면 아니 놀다 보면 이런 즐거움이 있습니다. 서울에 본사가 있는 전국신문 기자들은 이런 보람이나 즐거움을 절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이들은 서울 본사의 명령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이렇습니다. 전국 신문이나 거기 소속 기자들에게는 이런 전깃줄이나 전봇대는 아무 문제도 안 되겠지요만, 사실 거기 사는 사람들에게는 작지 않은 문제가 된답니다. 8월 14일치 경남도민일보에 제가 쓴 기사입니다.
 
<<함양군 휴천면의 상징물이면서 천연기념물 제358호이기도 한 함양 목현리 구송이 전봇대와 전깃줄 사슬로부터 완전히 풀려나게 됐다. 휴천면 사무소 맞은편 서주천 옆 들판에 서 있는 목현리 구송은 둘레 4.5m 키 13m로 밑동에서부터 줄기가 아홉 갈래로 갈라져 있어 구송(九松)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목현리 구송은 300년 가량 이전에 이 마을에 진양 정씨 학산공계가 들어오면서 심은 반송(盤松)으로 아름다운 모양 때문에 생물학적 가치가 높고 마을 유래를 알 수 있는 문화적 자료도 된다는 평가를 받아 1988년 4월 30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그러나 구송 지척에 북동쪽으로 꽂혀 있는 전봇대로 전깃줄이 지나가 구송을 찾는 관광객과 주민들로부터 구송의 아름다운 모습을 해친다는 불평과 지적을 줄곧 받아왔다. 이런 여론 때문에 휴천면은 한국전력공사 함양지점에 둘러싼 전봇대 가운데 가장 가까이에 있는 둘을 옮겨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했다.

박동서 휴천면장은 13일 "관광객과 주민들이 전봇대와 전깃줄이 목현리 구송의 아름다움을 가린다는 민원을 줄곧 제기해 왔다"며 "이 구송을 휴천면 공용 봉투에 인쇄해 쓰는 등 상징물이기도 해 한전에다 옮겨달라고 지난 2월 29일 공문으로 요청했다"고 밝혔다.

한전 함양지점은 이를 검토하면서 자체 규정에 '미관 같은 이유로 옮기는 경우는 요청한 쪽에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돼 있어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전 함양지점 정영식 전력공급팀장은 "민원 대상 전봇대는 1979년 설치돼 올해로 34년 됐다"며 "휴천면에 전봇대 옮기는 예산이 있을 리 없고 그렇다고 목현 마을에 부담지울 수도 없어 난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용 문제는 한전이 전향적 자세로 몇 차례 현장을 방문한 끝에 해결책을 찾아냈다. 옮겨달라는 요청 여부와 상관없이 전봇대를 지금 자리에서 휴천면 사무소 앞을 지나는 도로 근처로 옮기는 편이 관리하기 쉽다는 점에 착안해 자체 사업으로 분류한 것이다.

김 과장은 "유지·보수하려면 굴착기 같은 장비가 가까이 갈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자리는 들어가기 어렵다"며 "늦어도 8월 안에는 공사를 마칠 계획인데 옮기는 선로가 고압이라 비용은 2500만원 안팎으로 많이 드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한전은 휴천면이 요청한 두 개만이 아니라 둘러싸고 있는 전봇대를 모두 뽑을 예정이다. 정 팀장은 "한두 개만 뽑아서는 미관 개선 효과가 적다고 판단해 지난 10일 전봇대 네 개를 전부 뽑기로 했다"며 "이로써 전봇대를 따라 설치돼 있는 고압송전선로와 일반 선로 그리고 변압기 석 대를 모두 걷어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박환채 목현리 이장은 "한전 쪽에서 몇 차례 찾아와 현장을 둘러보고 협의를 했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또 시간을 끌지 않고 8월에 마무리되고 비용도 한전이 부담하는 데 대해서는 "참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휴천면의 공식 종이상자에 새겨진 구송.


그러니까 문제는 잘 풀렸습니다. 하지만 8월 말 찾았을 때는 아직 제대로 돼 있지 않았습니다. 비가 많이 오고 태풍이 불어쳐서 그랬습니다. 지금 가면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충분히 짐작은 됩니다.

이번 일의 하이라이트는 이렇습니다. 한전이 처음에는 전봇대 몇 개만 뽑고 말려고 했습니다. 당장 문제가 되는 몇 개만 말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자 모조리 뽑겠다고 일러 왔습니다. 구송이 완전 해방된 셈입니다.

이제 여기를 지나가다가 구송의 늠름함에 눈길이 끌린 사람들이 내려서 사진이라도 한 장 찍으려다 얼기설기 얽힌 전깃줄을 나무라며 한전을 욕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전향적으로 해결되도록 하는 데에, 저나 제가 몸담고 있는 경남도민일보가 작으나마 역할을 했으니 기쁜 노릇이랍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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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훤주 (산지니,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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