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본 곳

남해 가천도 좋지만 홍현마을이 더 좋아

김훤주 2012. 6.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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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스에서 보는 풍경도 괜찮고

생태·역사기행 나서는 걸음은 가볍고 즐겁습니다. 둘러보는 여정에서 펼쳐지는 자연 풍광과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고 느끼기만 하면 되거든요
. 우리가 누리는 둘레 환경이 우리가 해코지만 하지 않으면 이토록 좋구나, 여겨지면 그만이기도 하고요.

5월 18일 아침 9시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2동 경남도민일보 앞을 떠나 남해 가천마을과 홍현마을 그리고 두 마을을 이어주는 2km남짓한 길을 향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참가한 이들은 남해가 보물섬임을 이미 익히 아는 모양이어서 다들 기대감이 듬뿍 묻은 얼굴이었답니다.

창선·삼천포대교를 거쳐 창선섬으로 해서 가천마을로 들어갔습니다. 출발해서부터 삼천포대교 초양대교 늑도대교 창선대교 이렇게 넷으로 이뤄진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널 때까지 죽죽 내달리던 버스가 남해 바닷가를 따라 나 있는 도로에 접어들자 빠르기가 느려졌습니다.

길이 구불구불해서랍니다. 사람들은 오른편과 왼편으로 펼쳐지는 바다와 마을 풍경에 마음껏 눈길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하기는, 길게 이어지는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너면서부터 사람들 말소리가 잦아들었어요.

바깥 풍경이 사람들에게서 말을 집어삼킨 셈입니다. 이렇듯 승용차 말고 버스로 다니면, 타고 가면서도 훨씬 더 좋은 눈맛을 누리는 보람이 있습니다.


가천마을에 닿기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가천마을 여러 밥집 가운데 '시골 할매 유자잎 막걸리'를 골라잡아 들어갔습니다. 된장찌개랑 정구지전이랑 유자잎 막걸리가 맛있고 풍성한 집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밥상머리에서 내다보이는 풍경이 거침없이 트여 있어 좋았습지요.

2. 조금은 달라졌어도 여전히 좋은 가천마을 풍물들


가천마을의 삶은 이미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슬쩍 여기 땅값을 물어봤더니 평당 100만원이라고 합니다. 그나마 나와 있는 매물이 없다고 했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민박을 하고 장사를 한지는 벌써 오래 됐습니다.

가천마을 들머리 눈을 뒤집어쓴 듯한 이팝나무.


물론 지금도 바다에 나가 고기나 조개를 잡고 다랭이 논밭에 올라가 농사 짓기를 완전 그치지는 않았지만, 갈수록 관광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쨌거나 옛날 시골 마을 돌담길처럼 동네 어르신을 만나 한두 마디 나누는 즐거움은 이제 많이 사라졌습니다. 물론 남탓을 할 까닭은 없습니다. 모두가 내 탓이랍니다.

여기 명물 암수바위 앞에 갔더니 둘이 나란히 앉으면 알맞겠다 싶은 긴의자가 놓여 있었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없던 것이지요.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바다를 바라보게 돼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기 앉아 잠깐 바다 풍경을 눈에 담는 호사를 누립니다.

가천 마을과 그와 함께 놓여 있는 바다와 논밭과 바위와 산기슭을 둘러보려면 적어도 한 시간은 잡아야 하겠습니다. 어쨌거나 오늘 주어진 시간은 오후 3시 30분까지랍니다. 그동안에 사람들은 가천 마을과 이웃 홍현 마을을 돌아보고 그리고 두 마을을 이어주는 길을 걸으면 됩니다.

가천 마을에서 홍현 마을 넘어가는 아스팔트길은 언제나 눈맛이 시원하답니다. 걷는 내내 오른쪽으로 바다가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떠나온 가천 마을이 저쪽 비탈 너머로 숨어들어가고 있습니다.

곳곳에 널린 마늘밭에는 이제 들어가 손길을 놀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신 다 자란 마늘 뿌리를 뽑아 나란히 눕혀 갈무리해 놓은 데가 군데군데 보였습니다.

3. 홍현마을이 더 좋다고 여기는 몇 가지 까닭들


사람마다 취향 따라 다르겠지만 가천 마을보다 홍현마을을 더 멋지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먼저 가천마을보다 홍현마을이 더 크답니다. 그런데도 바깥에서 찾아오는 사람들 숫자는 덜하니까 이것이 바로 장점이 됩니다.

홍현마을 전경. 조그만 어항은 오른쪽 앞 수풀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독살은 한가운데에 나타나 보입니다.


가천마을에는 없지만 홍현마을에는 있는 것도 여럿이지요. 먼저 어항입니다. 가천마을은 붙어 있는 바다가 조그맣고 갯바위가 험해서 고기잡이배조차 닿게 할 데가 없습니다. 하지만 홍현에는 작지만 그런 데가 있습니다.

다음은 석방렴입니다. '독살'이라고도 하는데 바위를 둘레보다 한 1~2m 가량 높게 쌓아 밀물을 타고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 때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만든 전통 고기잡이 시설입니다. 물론 지금 여기 독살은 지난해 포클레인을 동원해 만들었지만 그래도 일부러 없던 것을 억지로 꾸며 붙인 것은 아니랍니다.

방조림도 멋지게 남아 있습니다. 소나무를 비롯해 참나무 따위 여러 가지 나무가 뒤섞여 있습니다. 바람과 파도를 막아 마을과 마을 앞 농지를 지켜주는 구실을 합니다. 여기 마을숲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한여름에도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얼마 안가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고 조금만 더 있으면 팔이랑 목에 닭살이 돋습니다. 바다는 평안하고 마을은 따뜻합니다.

담쟁이덩굴이 무성한 홍현마을 골목길.


재수 좋으면 쇳소리를 내며 물질을 하는 해녀도 눈에 담을 수 있습니다. 갯벌이 발달한 데는 해녀가 없습니다. 여기처럼 갯벌 대신 갯바위가 바로 이어지는 바닷가 마을에만 있습니다. 갯벌이 있으면 거기서 갖은 해산물을 캐면 되기 때문입니다.

해녀는 그러니까 척박함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같은 남해에서도 갯벌이 '매애 빠지는' 창선섬 쪽에는 해녀가 없습니다. 이번에 함께한 사람들은 홍현 마을이 아닌 가천 마을에서 해녀를 봤다고 했습니다.

커다란 바위가 그대로 들어와 있는 홍현마을의 한 마굿간.


4. 이순신 장군 떨어진 이락사


이렇게 가천 마을과 바닷가 도로와 홍현 마을을 차례대로 누린 다음 돌아올 때는 갈 때와는 달리 이락사(李落祠)를 거쳐 남해대교를 탔습니다. 이락사는 1598년 임진왜란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과 관련돼 있습니다.

이 해전에서 이기고도 도중에 전사한 이순신 장군의 주검이 뭍에 가장 먼저 오른 데가 여기입니다. 이순신 장군(李)이 떨어진(落) 곳에 세운 사당(祠)입니다.

핏빛 역사는 저녁 노을로 붉게 다가오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여기서도 바람은 시원하기만 했습니다. 이렇듯 남해 가천 마을에서 홍현 마을로 이어지는 길은 5월 아니라 6월이나 7월에도 충분히 걷기 좋은 길이랍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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