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1일 연등 3만원, 1년 연등 5만원" 어쩌라고?

김훤주 2012. 5. 29.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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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간에 가서 소원을 빌었다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저는 그 빌었던 바가 성불(成佛)을 하게 해 달라거나 제대로 된 인간이 되게 해 달라거나 하는 따위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사실 그런 내용은 부처님(사실은 부처 모습을 한 돌이나 쇠나 나무) 앞에서 빈다고 이뤄지는 바가 아니고, 스스로 피나게 뼈저리게 애를 쓰고 거듭 나야 이룩할 수 있는 것들일 따름입니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인간이 되거나 견성이라도 하면 욕심에서 그만큼 멀어지기도 하고요.

대신 사람들이 절간에 가서 이뤄달라고 비는 소원은 대부분 욕심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게 해달라거나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달라거나 좋은 짝 만나 결혼하게 해달라거나 공기업·대기업에 취직하게 해달라거나.

또는 사업 번창하게 해달라거나 남편을 비롯한 가족 출세하게 해달라거나 공부 잘하게 해달라거나……. 이밖에 질병을 낫게 해달라거나 건강하게 해달라거나 하는 따위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같은 욕심이라 해도 앞에 말씀드린 욕심과는 어쩌면 조금 달라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앞에 욕심은 좀더 갖게 해달라는 것으로 탐욕이랄 수도 있고요, 뒤에 욕심은 남들만큼은 갖게 해달라는 것으로 요구의 최소한이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또한 사람이 나서서 하는 작위적·인위적 구분일 뿐 크게 보면 다르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두 건강하고 자기(또는 자기 식구)만 건강하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은 모두 질병에 걸리지 않고 자기만 질병에 걸릴까요? 치료원에 가면 차고 넘치는 것이 아픈 사람이고 공동묘지에 가면 차고 넘치는 것이 죽은 사람들의 무덤입니다.

자기 건강을 위해 할만큼 해보는 노력이 중요하고 자기 질병의 치료를 위해 하는 만큼 해보는 노력이 중요하지 건강하게 해달라 질병을 낫게 해달라 하는 기도가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른바 부처님 가피를 입고 부처님 영험이 있어서 그리 된다 해도 말씀입니다.

어쨌거나 저는 절간이 소원 성취 장사를 그만 때려치우면 좋겠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밀양 어느 절간에 갔는데 거기 담벼락 펼침막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1일 연등 3만원, 1년 연등 5만원.' 그야말로 탁월한 장삿속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당신을 장사 밑천으로 삼아라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 가르침의 핵심은 깜냥 모자라는 제가 알아듣기로는 '있는 그대로'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있는 그대로 하고 하는 것입니다.

부처와 그 가르침을 장사 밑천으로 삼는 바탕은 욕심입니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하지 못하는 것 또한 욕심이 바탕입니다. 절간 사람들의 욕심이 세상 사람들의 욕심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이번에 스님들 도박 사건이 터졌을 때 저는 그것이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옛날부터 있어온, 스님들의 그렇고 그런 행동들이 다만 세상에 드러나 보였을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조계종 총무원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스님이 이런 도박을 두고 말한 바 "세상과 떨어져 있는 스님들의 일상적인 문화"라고 한 규정은 새삼스러운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 일상적인 놀이 문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부처의 장사 밑천화(化)'라는 생각이 들기 해줬기 때문입니다.

옛날 어느 기자가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한 절간에 취재를 갔는데 주지 스님이 불전함에서 지폐를 한 움큼 쥐어서 주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기자는 당연히 그 돈을 받지 않았지만, 그와 관계없이 스님들(절간 사람들)이 이래저래 누리는 바의 근원이 바로 세상 사람들의 욕심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절간 사람들과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맞물려 돌아가나 봅니다. 절간 사람들의 욕심과 세상 사람들의 욕심도 이렇게 맞물려 돌아가나 봅니다. 버리고 버릴수록 없애고 없앨수록 좋은 욕심이 천지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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