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거대한 여관 - 학교가 학교폭력의 주체다?

김훤주 2012. 5. 12. 09:44
반응형

어제 11일 금요일은 제가 사는 동네가 하루종일 시끄러웠습니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내서여고에서 운동회(체육대회였는지도 모릅니다)를 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재잘거리고 고함지르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학교에서 한 50m 떨어져 있는 구멍가게에서도 또렷하게 들릴 지경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시끄럽기 시작하더니 대략 10시가 넘어서니 거의 자지라지는 수준이 됐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12층 아파트에서 현관문을 열고 바깥에 나가 내려다봤더니 아이들이 피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의 움직임과 아이들 몸놀림에 따라 터져 나오는 함성이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아이들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은데도 그랬습니다. 아이들 춤출 때도 소리가 쨍쨍 울렸고요 이어달리기를 할 때에는 함성이 단발에 그치지 않고 길게 죽 이어졌습니다.

학생들이 그다지 많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모습이 참 낯설었습니다. 제가 여기 내서여고 아이들에게서 들은 소리는 기껏해야 밤 9시 전후해서 아이들 집으로 돌아갈 때 나는 재잘거림이었습니다. 집 구석에 박혀 있을 때는 들리지 않고 문을 열고 나가야만 들리는 그런 정도 재잘거림이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놀라웠습니다. 저 아이들이 저토록 고함을 질러댈 만큼 충분히 생기발랄하다는 데 놀랐고 저렇게 고함을 질러대는 저 아이들 평소 학교에서 꼼짝없이 조용하게 지내는 시간이 열두 시간도 넘는다는 사실이 떠올라 새삼스레 한 번 더 놀랐습니다.

며칠 전 밀양에 사는 이계삼 밀성고등학교 퇴직 선생을 만났을 때 들은 얘기랑 겹쳐졌습니다. "이미 학교는,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는 '거대한 여관'이 돼 버린지 오래 됐다……." 입시와 경쟁에 짓눌려 아이들이 지칠대로 지쳤다는 말이겠지요. 지식 전달이라는 최소한 기능조차 학교가 못하고 있다는 자책도 깔려 있겠지요.

그런데 저기 내서여고 저 아이들, 오늘 운동회를 한다고 해서 어제 밤에 공부하기나 학원 가기를 쉬었을까요? 그러지는 않았을 테지요. 지쳐 있기는 다른 날과 다를 바 없이 매한가지일텐데도, 저렇게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대며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학교 정문 가까운데 걸려 있는 펼침막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뜬금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학교 폭력 이제 그만! 사소한 괴롭힘도 폭력이며, 폭력은 범죄입니다. 모두가 참여하는 학교폭력 없는 안전하고 행복한 학교".

"사소한 괴롭힘도 폭력이며, 폭력은 범죄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저렇게 자지러지도록 생기발랄한 아이들을 침묵과 수면 속으로 빠뜨리고 마는 그래서 '학교를 거대한 여관'으로 만드는 현재 교육 상태는 무엇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사소한 괴롭힘'이 아니라 '엄청난 괴롭힘'입니다. 학교 자체가 학교 폭력인 셈입니다. 학교를 비롯한 우리나라 교육 체제 자체가 학교 폭력인 셈입니다. 저 아이들이, 이렇게 오늘 하루 자지러졌던 아이들이 내일이면 또다시 얽매여 다람쥐 쳇바퀴를 돌겠지 싶었습니다.

이튿날인 12일 아침 풍경.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인 오늘 아침 문을 열고 나가보니 주5일수업제를 제대로 한다면 학교에 나오지 않는 토요일인데도 교복을 입고 가방을 맨 아이들이 학교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걸어가고 어떤 아이는 뛰어갔습니다. 조금 있다 9시가 넘으니 학교는 더욱 조용해졌습니다.

거대한 여관으로 바뀌어 버린지 이미 오래 됐다는 우리나라 학교들, 이런 여관을 전국 방방곡곡에서 운영하고 있는 여관 주인들과 주인들의 우두머리는 아이들이 자기 집에서 편하게 잠잘 수 있는 권리조차 빼앗아 버리는 폭력을 오늘도 일삼고 있습니다.

훤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