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촛불도 들지 못하는 이들은 심정이 어떨까?

김훤주 2008. 6. 14.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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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저녁 창원 엑스플러스 앞에 모인 촛불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면서도 정작 촛불집회에는 갈 수 없는 이들은 심정이 어떨까요? 저도 여태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하마터면 그런 생각 한 번 못하고 이번 국면을 지나칠 뻔 했습니다.

수입 반대 펼침막 보내기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저희 전국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지부가 5월 중순 경기도 과천에 처음 걸린 이 펼침막이 전국으로 퍼져나간다는 얘기를 두고 이런저런 의논을 한 끝에 ‘일단 한 번 해 보자.’ 해서 하게 된 일입니다.

<경남도민일보> 홈페이지로 신청을 받았습니다. 신청이 그리 많지는 않을 줄로 짐작하고 배송료 3000원만 받고 공짜로 나눠드린다고 알렸습니다. 그랬는데 생각과 달리 나흘째부터는 전국에서 폭주를 했습니다.

한편 신이 나면서 한편 이상하기도 했습니다. 펼침막이 단지 집에 걸어놓는 물건일 뿐인데 이렇게 수요가 많다니……, 공짜라서 그런가?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임신 육아 등 때문에 촛불 못 드는 주부들

신청 댓글에는 “감사합니다.”가 줄을 이었습니다. 처음엔 ‘공짜로 얻어갈 수 있어서’ 이렇게 적는 줄 착각했습니다만, 바로 오독(誤讀)임을 알아챘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어떻게든 반대 의사를 나타내고는 싶은데도 나타낼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다가 작으나마 그 표현 수단을 얻게 되니까 한 말씀들이었습니다.

이름이나 목소리로 볼 때 열에 아홉은 여성이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이도 있지만 대부분이 전업주부였습니다. 댓글 가운데 일부입니다. 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지와, 왜 촛불을 들고 못 나가는지와, 그 못 나가는 심정이 어떤지를 절절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라나는 큰딸과 태어날 세쌍둥이를 가진 엄마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먹을거리 걱정 없고 의료비 걱정 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시위에 직접 참여하진 못해도 모두가 작은 몸짓으로라도 하나 되어 우리 서민의 힘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다섯살, 이제 태어난 지 한달 남짓 된 아들 둘을 키우는 주부입니다. 인터넷 통해 실시간으로 보여지는 촛불 집회에 참석하진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우리 뜻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주셔서 넘 감사해요.” 이런 글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100일 막 지난 아가를 둔 초보 엄마입니다. 저도 펼침막을 받을 수 있을까요? 받아서 꼭 걸어놓고 맘으로나마 참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가 어려 촛불집회 참석을 못해요. 5장 부탁드려요. 주변에 참석하지 못하는 엄마들과 나눠 달겠습니다.”

만삭이라 이거라도 해야겠습니다. 옆집이 아파트 동대표입니다. 아파트 전체 확산을 위해 그 집에 2장 주고, 2장은 우리 하려 합니다.” “아랫집 애기 엄마랑 애기들 땜에 집회는 못 나가고 저희 하나씩 달게욤.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이 때문에 촛불을 들지 못하는 주부가 이렇게 많을 줄 생각도 못했습니다. “수입 반대에 대해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습니다.”라 하신 이나, “마음은 있지만 행동으로 적극 옮기지 못한 저를 질책합니다.”고 하신 이도 심정은 마찬가지리라 짐작됐습니다.

광우병 수입소 반대하는 심정은 똑같다

“여기다 올리면 되는지 애기가 자고 있어 여유 있게 찾아볼 수가 없네요.”라고만 하고 급히 주소를 적어 놓은 데서도 이런 딱한 사정이 읽힙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성금을 보내면서 “촛불집회 참석 못하는 사람을 위해 계속 해주세요.”라 부탁하시기도 했습니다.

신청을 하신 주소를 죽 훑어보면, 아파트 1층이나 4.5층 말고, 12층 17층 21층 심지어는 23층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심정이지요. “밑에서 보이든 보이지 않든 마음 표현이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친정이랑 우리 집이랑 같이 붙이겠습니다. 촛불집회 보면서 맘이 넘 아팠는데,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가난한 신혼 생활을 짐작하게 하는 주소도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 아니고 단독주택지인데 2층 안쪽 또는 길가쪽, 아니면 3층 좌측문 또는 오른쪽이라 적은 것들입니다. 살림 차린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주인집 눈치까지 조금은 봐야 하는 부부가 살고 있을 것입니다.

종합해 보면 상황은 이렇습니다. ① 아이가 아주 어리거나 임신 중이어서(돈이 없거나 거리가 멀거나 여러 다른 합당한 사유도 있습니다.) 촛불집회 참가는 어렵습니다. ②그래도 태어나 자랄 아이를 보면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을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③촛불집회에 나가 고생하는 사람들 보니 한편 미안하고 다른 한편 안타깝고 또 다른 한편 부럽습니다. ④그동안 집에서 어찌 할 바 모르고 가슴만 태웠는데, 작으나마 이런 심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펼침막을 보내주는 데가 눈에 띈 것입니다.

갑갑함과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씻어주는 펼침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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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들어 마산이나 창원 아파트촌을 지날라치면 이런 펼침막이 걸린 데가 있나 없나 살피는 일이 버릇이 됐습니다. 어쩌다가 10층 이상 높이에서 펄럭이는 이 녀석을 보게 되거든 공연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그 집 사는 사람 심정은 이렇겠지요. “잘 받았어요. 좋은 일 해주셔서 넘 고맙습니다. 오늘부터 우리 집 베란다에서 휘날리겠죠? ㅋㅋ 생각만 해도 넘 좋아요~~~” 저희 보내드린 펼침막을 받고 바로 적으신 이 댓글에는, 어찌 할 바 모르던 갑갑함과 함께, 크든 작든 무엇인가 할 수 있게 됐다는 뿌듯함이 동시에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마지막 부분 “ㅋㅋ 생각만 해도 넘 좋아요~~~”를 처음 읽었을 때, 잠깐 눈물을 흘릴 뻔했습니다. 자기 심정을 이토록 절실하게 표현하고 싶었지만, 걸맞은 수단이 그동안 그이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깥에서 볼 때, 제대로 눈에 띄지 않을지라도 말입니다.

만약 그이들에게 ‘우리집은 / 광우병 쇠고기 / 수입에 반대합니다’라 적힌 이 펼침막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면, 어쩌면 홧병에 걸리거나 어쩌면 속병을 앓거나 어쩌면 까닭 모를 가슴앓이를 하거나 아니면 미래의 질병을 예비하거나 했으리라 저는 믿습니다.

펼침막 보내기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 저희 한 일은 펼침막 4800장 만들어 그 대부분을 배송료 3000원만 받고 보내드린 것이 전부입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집을 1000만이라 줄여 잡아도, 0.00048%밖에 안 되는 숫자입니다. 낙동강 그 많은 물에 고작 한 방울이나 보탰을까 말까 한 수준입니다.

그래도 저희는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촛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촛불을 들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만큼, 그런 사람들에게 스스로가 품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한다는 의견 표현 수단을 제공하는 일도 중요하다…….

광우병 쇠고기는 어쩌면 미래의 문제입니다. 지금 광우병 국면은 미래의 문제를 두고 현재의 세대가 들고 일어나는 보기 드문 사태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청소년이 남 먼저 촛불을 들었고, 아이가 있는 주부들은 촛불을 못 들다 보니 애써 펼침막을 내걸려 한다고 저는 봅니다.

저희는 이런 주부들에게 펼침막을 걸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드리고 싶습니다. 심정은 거리나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이들과 똑같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제약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다고 봐야 합니다. 사회에서 어느 정도 격리 또는 차단돼 있기까지 합니다.

어쨌든, 처음에는 이리 많이 나갈 줄 몰라 500장 정도로 예상했고 그 정도면 적자라 해도 100만원 조금 넘을 테니 충분히 자력으로 조달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신청을 해주셨고, 저희는 일단 표현 수단을 제공하는 이 일을 진행한 다음 뒷감당을 해도 하자 했습니다.

5월 20일 시작한 이 일은 아쉽게도 6월 9일부터 잠정 중단돼 있습니다. 짐작하시는 대로, 돈이 받침되지 못해서입니다. 4800장을 1200여 곳에 보냈는데, 배송료와 제작비는 합해서 2200만원 남짓 들었고 들어온 관련 수입은 600만원을 웃도는 데 그쳤습니다.

계속 보내기 할 수 있게 적선 좀 하시기를

6월 2일부터는 성금도 함께 모았지만, 14일 현재 예약분까지 쳐서 500만원 정도에 머물렀습니다. 1000만원 가량이 비게 생겼습니다. 저희는 이 일을 이번 ‘광우병’ 국면이 마무리될 때까지 계속하고 싶습니다.

제작비도 나름대로 마련하려고 애쓰겠고, 신청 받고 포장 분류 배송도 죄다 책임지겠습니다. 나머지 비는 구석에 대해, ‘광우병 걸렸을지도 모르는’ 미국산 쇠고기를 자라는 세대에게 절대 먹일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주부를 비롯한 여러 분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마음이 움직이시거든, ‘기업은행 171-040009-01-014 김훤주’로 5000원 또는 10000원 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5000원 한 번이면, 주부 한 사람 가슴에 맺힌 갑갑함과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확 풀 수 있습니다.

아고라 > 청원 > 모금 청원 > 서명 진행 중에서, ‘주부와 진짜 약자들에게 표현의 자유를!!(agora.media.daum.net/petition/donation/view?id=50596) 에 서명해 주시기도 부탁드립니다. 성금 결재 수단이 다양한 장점이 있더군요. 500명 서명을 해야 모금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데, 서명 하나에 100원씩 미디어다음이 지원까지 한답니다.

저는
이렇게 서로 기대는 일이 바로 ‘적선(積善)’이 아닐까 여기고 있습니다.

김훤주(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도민일보지부 지부장)

파리코뮌(고려대학교 교양총서 4) 상세보기
가쓰라 아키오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펴냄
'파리코뮌'은 1871년 3월 18일의 혁명 이후 파리에 수립되어 5월 28까지 72일간 존속한 반란정부로, 국민군을 주축으로 한 파리 소시민ㆍ노동자들의 정부이다. 적국 프로이센의 지원을 받은 정부군의 공격으로 '피의 주간'의 투쟁 끝에 3만여 명이 사망했고, 10만여 명이 체포되었다. 동시대의 마르크스는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국가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파리의 투쟁을 통하여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고 파리코뮌을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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