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국민 정신분열증과 결선 투표제

김훤주 2012. 5. 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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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총선은 지겨웠습니다. 지겨운 까닭은 단순했습니다. 누가 대표 선수로 알맞은지를 둘러싼 논란 탓이랍니다. 랄랄랄라~~ 선거구마다 새누리당 후보가 나섰고, 이에 맞설 야권 단일 후보를 고르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들였습지요.
 
이른바 시민사회단체들에 소속된 몇몇이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이들 야권 단일 후보를 만드는 과정이 정말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이들은 시민(또는 민중)들로 하여금 자기 일을 하도록 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시민사회단체들의 존재 이유인데도 말씀입니다.

대신 그이들은 시민(또는 민중)들을 대표해서 시민(또는 민중)의 권한을 대리 행사하고 싶어했습니다. 이른바 시민(또는 민중)들은 시민사회단체들에 소속된 그 몇몇에게 권한을 넘겨준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시민사회단체에 소속된 그 몇몇은 스스로를 '경남의 힘'이라 했고 기초자치단체별로는 이를테면 '창원의 힘'이라 했습니다. 게다가 시민사회단체들에 소속된 그 몇몇 또한 시민(또는 민중)들로부터 권한을 넘겨받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습니다.(사실 넘겨받을 방법도 없었지요.)

무슨 권한으로 야권 단일화를 여러 정당들에 주문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시민사회단체에 소속된 그 몇몇은 야권 단일 후보 선정을 위해 때로는 폭력적 방법까지 동원했습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경남에서는 통합진보당 중심으로 진행됐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얼굴만 시민사회단체고 몸통은 통합진보당'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제가 겪은 대통령 가운데 같잖은 대통령 1호.


야권 후보 단일화는 실제로 이렇게 재미가 없었던 데 더해 치명적 약점까지 근본으로 갖고 있습니다. 정당과 후보가 이를테면 유권자들에게는 골라잡을 수 있는 상품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선택권이 무시된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민주통합당을 지지하는데 그 사람 선거구의 민주통합당 후보는 통합진보당 후보에게 밀려 사퇴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선거구에서는 통합진보당 후보가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밀려 그만두는 일이 벌어져 통합진보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뻘쭘해지고 말았습니다.

진보신당은 상황이 더욱 좋지 않았습니다. 반새누리당 연대와 야권 후보 단일화 주장에 밀려 이 소수 정당은 찌그러들고 말았습니다. 진보신당 후보의 당선이 가능하다고 얘기됐던 거제 선거구에서는 표면으로는 진보신당 후보로 단일화가 됐지만 선거운동에서는 단일화가 되지 않았고 결과는 낙선으로 나왔습니다.

야권 후보 단일화 논란은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면 더욱 암담하답니다. 적어도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진보신당은 자기 후보를 낼 수 있을까요? 통합진보당은 자기 후보를 낼 수 있을까요? 지금 사정으로 보면 민주당통합만 자기 후보를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를 찍어야 할까요?

제가 겪은 대통령 가운데 같잖은 대통령 2호.


후보 단일화는 국민적 차원에서 정신분열증을 불러옵니다. 민주통합당의 가치와 통합진보당의 가치와 진보신당의 가치와 녹색당의 가치는 분명히 다르지요. 그런데 골라잡을 수 있는 상품(후보)은 하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현재 상태대로라면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이나 녹색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통령 선거에서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이나 녹색당의 가치를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태를 그대로 두는 것은 야만에 가깝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해결하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닌데 말씀입니다. 결선투표제만 도입하면 됩니다. 게다가 결선투표제 도입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려면 헌법을 바꿔야 한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데요, 사실 제가 알기로는 공직선거법만 바꾸면 됩니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하는 후보와 정당이 나오면 그대로 당선을 확정하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1차 투표에서 1등 한 사람과 2등 한 사람을 내세워 결선 투표를 진행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지금처럼 단박에 끝내는 선거가 갖는 약점인 소수 대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나오는 현상도 없앨 수 있습니다.

비용 문제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술 공장이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유권자들 술값만 셈해도 되는 계산입니다. 자기가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나 후보인데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유권자들이 이런 정신분열 상태를 견디기 위해 마셔대는 술값만 모아도 결선투표에 드는 비용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겪은 대통령 가운데 같잖은 대통령 3호.


이런 여론을 형성하고 의제를 설정하는 기능은 정당이나 정치인만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신문·방송·통신 등 미디어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이런 미디어들이 더욱 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여론 형성과 의제 설정입니다.

(<기자협회보> 5월 2일치에 실린 글을 조금 가다듬었습니다. 마지막 대목에서 '신문·방송·통신 등 미디어'가 제 구실을 해야 한다고 도드라지게 말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말을 저는 제1야당이 아닌 모든 정당들에게 하고 싶습니다.

진보정당들이 결선투표제 도입을 당론으로 채택해 놓았다고는 하지만 사실 현실에서 이를 중요한 사안으로 규정하고 문제로 제기고 운동에 나선 적은 없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국민 전체를 정신분열 상태로 몰아넣고 대통령 선거 때마다 자기 지지자를 제1야당에게 투표하게 하는 잘못이 스스로 자라나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데도 이러고 있습니다.)

김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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