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10~50대 모두 보는 연극 '철수와 영희'

김훤주 2012. 3. 2.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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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산 사람에게 축복인 극단 새벽

저는 부산에 있는 극단 새벽을 알고나서부터 이런 극단이 부산에 있다는 사실은 부산 사람들한테는 축복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극단이 창원에 없다는 점이 정말 아쉽기도 합니다.

극단 새벽은 1984년 만들어진 뒤로 여태껏 자치단체의 지원은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독립 극단입니다. 그리고 "창작 정신과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공동 생산과 공동 소유로 꾸려가는 동인제 시스템을 지켜왔다고 합니다.

이런 극단 새벽이 부산 광복로 지금 공간에서는 마지막 공연을 3월 31일(토)까지 펼치고 있습니다. 무대에 오르는 작품은 이성민 연출가가 만든 '노래가 있는 연극-철수와 영희를 위한 콘서트(철영콘)'입니다.


수목금요일은 저녁 8시에, 토요일은 오후 5시에 시작하는데요, 저는 이 연극을 앞서 올해 1월 26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는 그 소감을 "쉰 살 먹은 '철수'한테 비친 '철수와 영희'"(
http://2kim.idomin.com/2141)라는 제목으로 올리기도 했습니다.

2. 세대를 아울러 한 자리에 모으는 연극

1월 16일은 첫 공연이었습니다. 첫 공연이다 보니 허술한 구석이 없지 않았나 봅니다. 이성민 연출가는 내내 아쉬워했습니다. 영희가 도중에 대사를 까먹은 것이라든지, 중간중간 배우들끼리 호흡이 맞지 않았던 대목을 짚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를 보고는 나중에 다시 한 번 보러 오라고 했습니다. 같은 연극이라도 그 때마다 보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노라고, 하면 할수록 아무래도 완성도가 높아지게 돼 있노라고 하면서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는 3월 31일 마지막 공연을 한 번 더 보러 가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출연진 일부. /극단 새벽

저는 사실 연극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른바 작품성 예술성 따위를 제대로 따져 말씀드리지는 못합니다. 다만 제가 보고 느낀 소감을 올릴 뿐이고, 나아가 이것이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 정도 얘기는 제가 할 수 있지 싶습니다.


먼저 '철수와 영희를 위한 콘서트'가 10대와 20대, 그리고 40대와 50대를 한 자리에 불러 앉히는 연극이라는 점에 눈길을 주고 싶습니다. 사실 제가 연극을 봤던 1월 26일 객석도 그렇게 짜여 있었습니다. 젊은 친구들도 많았고 1963년생인 저랑 비슷하게 60년대와 50년대와 70년대에 태어난 이들도 많았습니다.


사실 아시는대로 10대 20대와 40대 50대가 한 자리에서 같은 연극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영화도 더욱 그런 줄 알지만 연극도 그 못지 않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렇게 서로 다른 세대를 끌어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여야 서로를 알고 손을 맞잡는 길이 열리겠지요. ^^

철수와 철수 엄마. /극단 새벽.


그날 제가 만난 20대 한 명은 철수의 대사를 듣고 몸짓을 보다가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저도 눈물이 나기는 했지만, 그것은 지난날 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20대의 비애와 절박함 또는 그들이 매달려 있는 집착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20대는 철영콘이 자기네 흘러가는 일상을 동정적으로 그려내 주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흘릴만큼 감동을 받고 위로를 얻었나 봅니다.


저는 나름대로 20대 청년들을 힘들고 외롭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조금은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여겨왔습니다. 그런 생각이 전혀 틀리지는 않았는지 연극에 나오는 철수의 대사와 몸짓이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3. 20대의 어려움을 그들 관점에서 들여다보게 하는 연극

그런데 제가 놓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이들 관점에서 그런 어려움과 외로움을 보지 못하고 바깥에서 제3자 관점에서 '냉정하게' 바라보기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 그것은 누가 뭐라 해도 너희들 몫이고 너희들 책임이다."


물론 20대가 지금 감당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가 만들어진 책임이 저한테 전혀 없다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제 아들이 서울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 이태 전에 그 녀석 묵고 있는 '원룸'에 찾아갔다가 눈물이 쏟아진 적이 있었습니다.


눈물이 쏟아진 까닭은, 아들이 그렇게 조그만 방에 묵고 있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제가 스무 살 시절 머물렀던 자취방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1983년에 저도 서울에 있었는데, 제가 친구 한 명이랑 썼던 자취방은 아주 넓었습니다.

철수. 29살로 나옵니다. /극단 새벽.


이태 전 아들 녀석이 머물고 있던 '원룸'은 침대 하나에 샤워실을 겸한 화장실 하나 그리고 텔레비전 놓여 있는 자리를 빼면 책상이 들어앉을 자리도 제대로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비롯한 앞선 세대가 지난 세월 스무 해 넘게 운동을 한답시고 꼼지락거렸건만, '청년 주거'로 한정해 보면 세상이 나아지기는커녕 매우 나빠지고 말았음을 실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제 아들에게도 조금은 냉정한 편입니다. 자기 인생은 누가 뭐라 해도 자기 몫이다, 이렇게 여기기 때문입니다.(이런 생각이 그다지 오래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래서 저는 제 자식이 아닌 다른 20대에게도 그렇게 여겼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극을 보고나서는 제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10대와 20대를 어렵게 하는 세상 모든 요소에 대해 좀더 생각하게 됐습니다. 구체적으로 뾰족한 방안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그이들의 어려움과 외로움을 줄이는 일이 있다면 스스로도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4. 철수와 영희가 그려보이는 새로운 삶의 방식

그리고 철영콘에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어렴풋하게나마 그려져 있습니다. 10대 영희 식구들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대사로도 나오지만,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한 달 100만원으로도 네 식구가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이 되겠습니다.

영희와 바둑이. /국단 새벽.


네 식구가 한 달 100만원으로 살아가려면 욕심을 끊고 버려야 합니다. 무한 경쟁과 무한 소비를 당연하게 여기게 만드는 자본주의 블랙홀에서 빠져나와 여유를 즐기고 남과 달라도 불안해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해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나중에 들었는데, 극단 새벽 단원들이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영희는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습니다. 자기가 필요한 공부를 찾아서 할 뿐, 당연히 사교육 따위는 받지 않습니다. 같이 사는 이모와 삼촌과 엄마는 옷 수선, 쓰레기(폐기물) 재활용센터 따위를 하며 살아갑니다. 필요한 소비만 합니다. 그럴 듯하지 않습니까? 멋지지 않습니까?


커다란 아파트를 장만하고 커다란 냉장고를 장만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김치냉장고를 따로 장만하고 세탁기를 비롯해 집안 살림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전기·전자기구로 장만하고 자가용 자동차 덩치를 키우고 하면 당연히 이렇게 살아가지 못합니다.


이렇게 살지 못하면 당연히 자본주의 블랙홀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빠져나오지 못하다 보니 많은 소득이 있어야 하고 많은 소득을 얻으려면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직하거나 의사·변호사·세무사·회계사 같은 전문직이 돼야 합니다. 아니면 공무원이나 교사처럼 소득이 그다지 적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어야 합니다.

영희와 철수. 영희는 18살입니다. /극단 새벽.


영희 식구가 살아가는 방식은 보는 사람들에게 정해진 트랙을 정해진 방식으로 돌지 말고 벗어나 보면 어떻겠느냐고 말해줍니다. 10대와 20대와 40대와 50대 모두에게 말해줍니다. 이는 자본주의 블랙홀에 빠져 있는 관객에게 성찰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성찰이 실천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4. 어려운 처지를 뒤집어 기회로 삼으려는 극단 새벽

어쨌거나 철영콘은 극단 새벽이 부산 광복로에서 벌이는 마지막 공연이라고 합니다. 상권이 활성화되니까 건물 주인이 임대료를 올려달라 했는데 그 정도가 너무 높아서 극단 새벽 살림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극단 새벽은 이를 계기로 대안 문화 공간 만들기에 나서겠다고 했습니다. 지역 여러 뜻있는 단체들이 한 데 모여 지낼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장만하겠다는 얘기입니다. 저도 거기 작으나마 힘을 보탤 생각입니다.(이런 '뒤집기'는 진정으로 힘있는 존재만이 할 수 있다고 저는 압니다.^^) 


그러나 이번 3월 31일 철영콘을 다시 보러 가는 뜻은 여기에 있지 않습니다. 제가 봤던 1월 26일 연극보다 얼마나 완성도가 높아졌는지가 먼저입니다. 그를 통해 철영콘이 지금 여기에 보내는 메시지가 좀더 깔끔하고 분명하게 표현돼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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