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부러진 화살, 최소한 이것만은 인정하자

기록하는 사람 2012. 1. 3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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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봄밤 님이 제 글에 대해 재미있는 지적을 해주셨군요.

☞ 김주완 국장은 과연 책 <부러진 화살>을 읽었을까?

제가 앞서 쓴 글에서 <부러진 화살> 김경호 교수(안성기 분)의 모델이 된 김명호 전 교수에 대해 '범죄자이긴 하지만 제대로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당한 불쌍한 인물'이라고 한 데 대한 반박성 글이었는데요. 봄밤 님은 '수많은 사법피해자 중 사법권력에 맞서 끈질기게 대항한 명 안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말하자면 굳이 김명호 교수를 그리 야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죠.

봄밤 님은 또한 석궁 사건의 원인이 되었던 앞의 재판, 즉 교수 지위 확인 소송에 대해 제가 "현실에서 이들 재판 절차나 과정, 판결의 결정적 하자는 아직 드러난 게 없다"고 한 데 대해서도 비판합니다. 서형 작가의 책 <부러진 화살>을 보면 교수 지위 확인 소송의 판결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제 글에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대체도 인정합니다. 변명하자면 제가 그 글에서 사실과 허구 중 '사실' 부분을 그렇게 인색하게 정리한 이유는 그것마저 인정하지 않으려는 진중권 님같은 분들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그런 분들을 의식하다 보니 '아무리 야박하게 보더라도, 최소한 이것 정도는 인정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반영된 것입니다.


진중권 님은 명백한 사실, 즉 항소심 재판부가 피고인(김명호)과 변호사의 증거, 증인 신청을 이유없이 반복적으로 기각한 것이 사법권력의 횡포라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위에 첨부한 진중권 님의 트위터 글처럼 피고인과 변호사의 당연한 요구 자체를 '억지'라고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영화 전체를 싸잡아 '픽션을 팩트로 착각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저는 (1)영화 속 김경호 교수와 실제 김명호 교수의 캐릭터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고 (2)석궁 재판 이전의 교수 지위 확인 소송이 잘못된 것인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지만 (3)적어도 항소심 재판 속기록에 나타난 재판부의 횡포와 이로 인해 피고인이 제대로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를 본 후 석궁 사건의 실체가 궁금해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들을 찾아보다 혼란을 느낄 수 있는 관객들에게도 최소한의 사실은 이렇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말 나온 김에 진중권 님과 그의 논리에 동의하는 분들께 한 마디 더 하고 마치겠습니다. 진중권 님은 김명호 교수나 박훈 변호사가 석궁사건의 피해자인 박홍우 부장판사의 상처에 대해 자해라고 주장하면서 혈흔 감정을 요청하는 것은 '상호 모순'이라고 합니다. 즉 자해라면 당연히 피해자의 옷에서 나온 혈흔은 피해자의 것이 맞는데 왜 혈흔 감정을 요청하는 거냐는 거죠.

그러면서 재판과정에서 판사가 "그게 피해자의 피로 확인되면 공소사실을 인정하겠느냐"고 물었는데, 변호인이 아니라고 한 것도 문제삼고 있습니다. 앞뒤 사정을 모르면 진중권 님의 말처럼 모순으로 보이지만, 이건 말꼬리잡기에 불과합니다.

김명호 교수나 박훈 변호사는 무조건 자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석궁 화살이 명중하여 난 상처가 아니라 벽에 튕긴 후 몸을 스치면서 난 상처일 수도 있고, 석궁을 들고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난 상처일 수도 있으며, 자해의 가능성이나 제3자에 의한 증거조작의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는데, 무조건 검사는 김명호 교수가 발사한 석궁에 맞아서 박홍우 판사가 다쳤다고 하니 그걸 확인해보자는 요구일뿐입니다.

게다가 공소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검사가 내놓은 증거와 근거가 빈약하므로, 그런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과 감정, 증인 채택을 요구하지만, 재판장이 그걸 못하게 하니 피고인과 변호인, 그리고 영화를 본 관객들이 분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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