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본 세상

천성산, 강정 마을과 '친노'의 부활

김훤주 2012. 1. 17.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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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른바 '친노' 세력의 부활

1월 15일 통합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의 새 지도부가 뽑혔습니다. 얼굴을 낱낱이 올릴 필요도 없이 신문과 방송에서는 이른바 '친노' 세력의 부활이라고들 하더군요. 1등을 한명숙 선수가 하고 2등을 문성근 선수가 했으니 그렇게 이를 만도 합니다.

물론 문성근 선수의 주장대로 '친노'라는 구분이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문성근 선수는 17일치 4면 한겨레 인터뷰에서 "지분 갖고 통합할 때야 어떤 정파냐가 의미 있겠지만, 우리는 지분 없이 혁신만 하겠다고 통합했다. 언론에서 뭐라고 하든, 우리 내부에선 그런 용어 쓰지 말자고 제안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문성근 선수가 말하는 '우리'나 '우리 내부'가 아니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런 용어' 쓰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명숙이나 문성근 같은 선수들이 노무현을 계승하고 있고 또 노무현을 계승하겠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만은 밝혀두겠습니다.

저는 민주당의 이번 통합이 잘 된 일이라고 여깁니다. 이명박 선수와 한나라당에 맞서는 진영이 그만큼 정리가 됐고 힘이 있어졌다는 면에서 그렇게 봅니다. 그러면서 저는 이번 통합이 좀더 잘 되기 위해서는 노무현 계승에서 멈추지 말고 뛰어넘어야 한다는 얘기를 드릴 따름입니다.

2. 강정 마을에 대한 문재인의 반성

물론 그런 기미는 이미 보이고 있습니다. 노무현을 계승하는 또 다른 인물 문재인 선수의 발언입니다. 2011년 9월 29일 제주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강정 마을에 들어서는 해군 기지를 두고 한 말입니다. 이른바 참여 정부의 잘못과 책임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내용입니다.

"해군기지가 참여정부 때 결정돼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책임이 있고 이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한다. 기지를 강정마을에 두는 데 대해 당시에도 내부 논란이 있었다. 청와대 시민수석실은 반대 의견이었는데, 국방부가 안보상 필요하다고 해 그리 결정됐다."

"강정마을의 경우는 뒤에 보니까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 주민 대다수가 동의하고 참여했다는 제주도쪽 보고가 있었다. 그런데 그 뒤 동의한 주민이 아주 적었고 다수가 동의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그 후에라도 대화와 설득이 필요했는데 계속 밀어붙였으니 잘못이다."

3. 충분하지 못한 잘못 인정과 반성

<오마이뉴스>에 나온 발언을 거의 그대로 끌어왔는데, 이런 정도라면 문재인 선수(또는 문재인 선수로 대표되는, 노무현을 계승하겠다는 사람들)의 반성은 여전히 충분하지 못합니다.

다수가 동의하지 않았으면, 대화와 설득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주민 다수의 뜻을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했다는 말씀입니다.

문재인 선수의 이같은 "대화와 설득이 필요했다"는 발언의 배경에는 강정 마을 주민 대다수가 무엇을 제대로 몰라서 동의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이는 주민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관점입니다.

1월 17일치 한겨레 기사. 문재인 선수는 이명박 선수처럼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는 투로 말합니다.


또 문재인 선수는 강정 마을 해군 기지 건설을 두고 이명박 정부와 차이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 대화나 토론 없이 결정하지는 않았고, 내부에서 열나게 갑론을박을 한 끝에 그리 결정했다는 점입니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이명박 선수하고는 다르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또한 주민 관점에서 보자면 이른바 참여 정부의 토론과 논란은 그들만의 것일 뿐입니다. 통치 또는 지배하는 이들 사이에서 벌어진 토론일 따름이고 주민들이 거기 들어 있지 않고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라는 얘기입니다.

4. 천성산에서도 나타난 노무현 정부의 잘못

이런 보기를 저는 하나 더 알고 있습니다. 바로 고속철도(KTX)의 천성산 터널 관통입니다. 여기 사진이 있습니다. 지율 스님이 10년 가까이를 품고 다녔던 사진입니다. 2002년 10월 26일 부산불교회관에서 찍었습니다.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금정산·천성산 고속철도 관통반대 시민종교단체대책위 간담회'입니다. 사진에서 보면 노무현 후보가 가운데에 있고 그 왼편에 문재인 선수가 있습니다. 지율 스님은 왼편에서 두 번째에 앉아 있습니다. 여기서 노무현 후보는 '천성산 터널 백지화와 대안 노선 재검토'를 공약했습니다.

이른바 천성산 터널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는 1994년 6월에 있었고 이것이 적법하지 않고 부실하게 이뤄진 줄을 알게 된 지율 스님은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 재시행'을 요구하며 2001년 반대운동에 들어갔습니다.

천성산 골짜기마다 득시글거리는 도롱뇽이 환경영향평가에는 전혀 없다고 돼 있고, 환경영향평가를 했더라도 7년인가가 지나면 새로 환경영향평가를 했어야 하는데 그리 하지 않았다는 요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후보는 지율 스님의 요구를 받아들여 공약으로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공약 뒤집기는 잘못 축에도 들지 않습니다. 2003년 3월 7일 노무현 대통령 지시에 따라 노선재검토위원회가 꾸려졌으나(5월 12일) 겨우 한 주일만에(5월 19일) 노선은 원안대로 결정됐습니다. 그 뒤에도 우여곡절을 겪었고 지율 스님이 다섯 차례 300일이 넘게 단식했으며 공사는 중단과 강행이 되풀이됐을 뿐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당시 참여정부는 지율 스님을 비롯해 고속철도 천성산 관통을 반대하는, 그리고 환경영향평가가 적법하지 않고 부실하게 이뤄졌다는 사람들의 주장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경위야 어떻게 됐든, 자기네들 판단이 먼저 있었고 이것을 어떻게든 관철하겠다는 움직임만 있었습니다.

5. 잘못 해놓고 대화하고 설득한다고?

지금 강정 마을과 해군 기지 건설을 두고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들이 저기 천성산과 고속철도 터널 관통에서 이미 나타났었습니다. 먼저 절차상 하자입니다. 절차상 하자가 강정 마을에서는 일부 소수 주민만 동의하고 대다수 동의하지 않은 것이었다면, 천성산에서는 적법하지 않고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였습니다.(천성산의 경우 그 하자가 노무현 정부의 탓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절차상 하자를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강정 마을에서 나타난 절차상 하자도 바로잡지 않았고 천성산에서 나타난 절차상 하자도 바로잡지 않았습니다.(이런 절차상 하자는 대화와 설득의 대상이 아닙니다. 고쳐야 마땅할 따름입니다. 그런데도 문재인 선수 2011년 9월 29일 발언을 보면 이에 대한 반성은 없습니다. 다만 대화와 설득을 않고 밀어붙인 잘못만 인정했습니다.)

그러니 토론과 대화도 없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관점에서는 지율 스님이나 천성산 터널 관통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랑 대화와 토론을 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잘못(부실·불법 환경영향평가)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전제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아무리 많이 말을 주고받아도 그것이 대화나 토론은 아닙니다. 그리고 주고받은 말들조차 빈약했습니다.

1월 17일치 한겨레 만평입니다. 딱 제 심정이랑 같습니다.


저는 이런 잘못을 한명숙과 문성근 선수가 앞장서 이끄는 통합민주당이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한나라당과 이명박 선수한테서 통합민주당으로 정권이 넘어온다 해도 껍데기만 달라질 뿐 근본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훤주
구럼비의노래를들어라제주강정마을을지키는평화유배자들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이주빈 (오마이북,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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