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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활로 ⑤ 다라국 황금이야기길

김훤주 2012. 1. 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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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이 품은 빛나는 다라 가야 역사

1. 구슬밭에 펼쳐진 다라국의 역사

합천박물관은 빛나는 가야 역사가 합천에도 있었음을 일러 준다. 같은 경남의 김해 가락국이나 함안 안라국, 고성 소가야, 창녕 비사벌은 물론 경북 고령의 대가야에 견줘도 뒤지지 않는 문화 수준을 이룬 다라국이 있었던 것이다.


가야라 하면 많은 이들은 '대가야'나 '금관가야' 따위만 있었던 것으로 여긴다. 이런 마당에 여러 가야 세력 가운데 '다라국'이라는 존재가 여기 합천 땅에 있었음이 널리 알려졌을 리는 없다. 그러니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하다.


그러나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 합천박물관에 가면 일대 옥전(玉田:구슬밭)고분군 가야 유물들이 높은 수준에 도달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합천박물관에 그려져 있는 다라 가야 모습.


말하자면 이렇다. 어디서 출토됐는지 출신 성분이 뚜렷한 금관은 우리나라에서 여기에밖에 있지 않다. 창녕과 경주서도 금관이 나왔으나 죄다 '여기서 나왔다더라'고 전하는 정도일 뿐 여기 출(出)자형 금관처럼 '옥전고분군 M6호분에서 나왔다'고 명백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는 얘기다. M6호분서는 이밖에도 금관 하나와 은관 하나가 더 나왔다.

뿐만 아니다. 박물관 2층에 모형이 있는 M3호분의 경우 금·은으로 손잡이가 장식된 보검이 네 자루 나왔다. 이런 위세품(威勢品)이 우리나라서는 보통 한 무덤에서 한 자루 발견되는 데 견주면 엄청난 숫자다.

자루에 용과 봉 무늬가 새겨진 칼들.


게다가 새겨진 용과 봉황 무늬가 매우 정교하고 그 꿈틀거림이 매우 생생하게 표현돼 있다. 또 이런 보검이 네 자루 더 있는데 수준은 좀 처지지만 다른 박물관에는 하나도 있기 어렵다고 한다. 다라국 문화 수준이 예사롭지 않다는 증거다.


같은 M3호분에서 발견된 원통형 그릇받침도 대단하다. 제사나 행사 때 쓰였을 이 물건은 새겨진 무늬가 아름답다. 빚어낸 색깔 또한 회청색으로 고급스럽다. 이웃 성산마을 이장이기도 한 김종탁 합천박물관 문화관광해설사는 "용봉무늬 보검들과 함께 다라국의 문화가 매우 수준이 높았음을 입증하는 유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2. 동아시아 출토 말갑옷과 말투구의 절반이 다라국 출신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미늘쇠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한 녀석도 여기 있다. 미늘쇠란 커다란 쇠붙이에 작은 철판을 오려 붙이거나 가시들을 주렁주렁 달아 놓은 장식용 기구인데 이를테면 군대가 출정할 때 지위 높은 사람의 깃대에 꽂아 권위를 나타내는 데 쓴다. 미늘쇠로만 보면 여기 옥전고분군에 묻힌 인물의 존재가 아주 대단했다는 얘기가 된다.

미늘쇠와 투구 갑옷들.


다라국이 축적한 부도 작지 않다. M3호분 널 아래에는 쇠도끼가 121개 깔려 있었다. 다른 무덤에는 돌만 깔려 있기 십상인데 쇠도끼가 당시에는 화폐 구실을 했으므로 주인공이 쌓아놓고 있었던 재산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일러주는 한편으로 당대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철의 생산이 많았음을 뜻하기도 한다.


합천박물관에는 이밖에 옥전고분군에서 나온 말갑옷(馬甲)과 말투구(馬胄)가 4개와 6개 있는다. 말갑옷과 말투구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전체를 아울러도 출토 유물이 각각 12개와 14개밖에 없다니 여기 옥전고분군 유물이 엄청남을 새삼 느끼게 해 준다.

말투구.


고대 로마 제국에서 만든 유리잔(Roman Glaass)도 하나 나왔다. M1호분에서 깨어진 채 나왔는데 가야 세력 고분 출토 유물 가운데는 유일한 것이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이웃한 신라와 활발하게 교류했음을 일러주는 물건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구슬(玉)도 엄청난 분량이 나왔다. 구슬을 가는 숫돌도 함께 나왔는데 세공 기술이 요즘 눈으로 봐도 만만치 않다. 실은 구슬밭을 뜻하는 땅이름 옥전(玉田)이 여기 고분군을 비롯해 곳곳에서 구슬이 출토되거나 비바람에 자연 노출되거나 했음을 일러주는 것이다. 합천박물관에는 그런 구슬들이 특색 있게 전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귀걸이 제품이 있다. 합천의 역사와 다라국의 문화에 대해 남달리 자부하는 김종탁 해설사는 "가야권 전체에서 귀걸이가 100쌍 남짓 나왔는데 이 가운데 40쌍 가량이 합천 출신"이라고 한다. 먼저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말이다.

김종탁 해설사.


김종탁 해설사는 이어서 "다라국 귀걸이는 모양이 아주 현대적이고 세련돼 합천을 상징하는 마스코트나 캐릭터로 당장 채택해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도 한다. 전혀 투박하지 않고 또 마무리까지 깔끔한 데 더해 달린 물건들의 비례도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김종탁 해설사는 "신라는 고리가 두툼한 태환식(太環式)이지만 다라국은 고리가 가느다란 세환식(細環式)"이라 했다. 그러면서 다라국은 신라는 물론 이웃한 경북 고령의 대가야와도 뚜렷하게 구분되는 독자 세력이었다고 덧붙인다.


다라국은 6세기 후반 소멸한다. 544년 충북 옥천 관산성 전투에서 한강 하류 지배권을 두고 신라와 백제가 명운을 걸고 붙을 때 가야 세력은 백제를 도와 군사 2만 명을 파견했다. 이 전투에서 백제는 전체 5만 가운데 3만 명을 잃고 성왕마저 전사하며 참패했다.

가야 세력 또한 군사력을 잃어 쇠퇴하게 됐고 신라 진흥왕은 561년 창녕에 순수비를 세운 다음 562년 대가야를 접수했다. 김종탁 해설사는 "다라국도 이웃한 대가야와 같은 해에 운명을 다했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3. 거닐기 좋은 고즈넉한 옥전고분군


다라국은 400년 고구려군의 김해 가락국 공격을 전후해 낙동강 하류 지역 주민들이 옮겨오면서 성립됐다고 얘기된다. 여기 성산마을에서 석기 시대 돌그물추나 돌화살촉이 출토됐으니 먼저 자리잡은 사람과 새로 온 사람들이 섞여 살았을 것이다. 다라국 역사는 200년 안팎이 되는데 옥전고분군은 이 시기 신산고난과 화려찬란을 모두 안은 셈이다.


옥전고분군은 합천박물관 뒤쪽 산자락이 내려앉는 능선에 모여 있다. 평지가 아닌 산기슭 고분군 대부분이 그렇듯, 바람도 쉬어 갈 정도로 고즈넉하고 아늑하다. 듬성듬성 자기네끼리 가까이 또는 떨어져 앉은 고분 사이를 거닐면 그 느낌이 독특하다.


아이들 소풍터로도 괜찮겠고 혼자 와서 이리저리 생각하며 거닐어도 좋겠다. 물론 둘이 또는 셋이 와 얘기를 나눠도 좋을 그런 길이다. 산책로도 마련돼 있고 성산마을로 넘어가는 고갯길도 있다.


무덤들 가운데 안내판을 거느리는 것도 있다. 안타까운 사연도 있다. 로마 제국 유리잔이 나온 M1호분이 그렇다. 1989년 3차 조사 때만 해도 유물이 완벽하게 보존돼 있었는데 1991년 마지막 발굴을 앞둔 시기 도굴을 당해버렸다는 얘기가 적혀 있다. 그렇지 않은 고분도 있다. M6호분에는 금관이 출토됐음을 사뭇 자랑스러워하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그러나 거기 묻힌 당사자야 이런 일들이 하찮은 것인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무덤 주인들 성격은 어땠을까? 권한이 상당한 지배자였을 텐데, 무엇이든 이뤄야 한다며 아둥바둥 살았을까, 아니면 태어났으니까 살아지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이리 여기며 흐르는대로 살았을까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래도저래도 달라지는 것은 크게 없었을 테고 그 아래 지배받는 이들의 힘듦과 어려움도 크게 차이는 없었겠지만…….


하지만 여기 있는 가야 역사가 당대 사람들이 이룩한 빛나는 성취였음은 분명하다. 아울러 "합천을 비롯한 경남의 역사적 정체성은 (신라가 아닌) 가야에 있다"는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이런 것이 좀더 뚜렷해지고 이를 위해 경남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합천박물관과 옥전고분군을 '보석 같은 존재'로 여기며 좀 더 가까이 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아이들을 위한 체험관도 마련돼 있으니 가족 동반 나들이하기에도 딱 알맞겠다.


코스 : 주차장~합천박물관~옥전고분군


포인트 : 합천박물관 들르거든 문화관광해설사를 불러 설명을 들으면 좋다. 그냥 보는 유물과 설명과 함께 보는 유물은 엄청나게 다르다. 하루 전에 예약하면 더 좋다.


길 안내

자가용
창원·부산 방면 : 남해고속도로~군북(의령)나들목-의령읍~대의고개~삼가면~합천읍~합천박물관
또는 남해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창녕나들목~유어면~적포교~쌍책면~합천박물관
진주 방면 : 남해고속도로~군북(의령)나들목-의령읍~대의고개~삼가면~합천읍~합천박물관
대구 방면 : 88고속도로~고령나들목~합천읍~합천박물관
서울 방면 : 대전통영고속도로~88고속도로~거창나들목~합천읍~합천박물관

대중교통

마산 합성동터미널 1시간 오전 7시 50분(창원), 10시 40분(창원), 오후 12시 50분, 2시 45분, 5시 30분, 6시 40분 6차례
진주시외터미널 50분 오전 6시 50분~오후 8시 13차례
대구 서부터미널 1시간 오전 6시 10분~오후 8시 20분 22차례
부산 사상터미널 1시간40분 오전 7시~오후 7시 15차례
서울 남부터미널 5시간 : 오전 10시 8분 12시 오후 2시 3시 4시 45분
※ 합천시외버스터미널에서 쌍책면 성산리 가는 군내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군내버스 : 오전 8시 20분, 9시, 9시 40분, 10시 30분, 오후 12시 20분, 1시 10분, 3시 50분, 6시 50분

주변 여행지 : 정양늪(17km) 황강레포츠공원(17km), 함벽루(17km), 황매산(7km), 황계폭포(8km), 모산재 영암사지(10km).


요금 : 주차요금은 없다. 관람료는 어른 700원, 청소년·군인·어린이 500원.

개장 시간 : 오전 10시~오후 6시

휴관하는 날 : 월요일, 설날·추석·1월 1일

문의 : 합천박물관 055-930-3753.

김훤주
※ 합천군에서 2011년 12월 펴낸 <나를 살리는 길 합천활로>에 실려 있습니다. 합천군 관광개발사업단에 연락하시면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가야역사여행
카테고리 역사/문화 > 한국사
지은이 이영식 (지식산업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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